리스크란 본래 미래의 불확실성을 담보로 하는 개념이지만, 2026년 우리가 마주한 리스크의 양상은 과거의 그것과는 궤를 달리한다. 100개국 3,338명의 전문가가 참여한 '2026 알리안츠 리스크 바로미터'는 단순히 위험의 순위를 매긴 나열이 아니다. 이는 기술의 진보와 지정학적 균열이 결합하여 기업 경영의 근간을 어떻게 흔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서사다.
혁신의 속도가 통제의 인내를 앞지를 때, 기술은 도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포식자가 된다. AI의 시대, 진정한 경쟁력은 '얼마나 빨리 달리는가'가 아니라 '어떤 책임의 닻을 내렸는가'에 있다.
사이버 사고, 항구적인 위협의 상수가 되다
5년 연속 세계 최고 위험 요소로 꼽힌 '사이버 사고'는 이제 기업 경영에서 피할 수 없는 상수가 되었다. 응답자의 42%가 이를 1위로 지목했다는 사실보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2위와의 격차가 10% 이상 벌어졌다는 점이다. 이는 디지털 전환이 완료된 시점에서 사이버 보안이 단순한 IT 부서의 과제가 아니라, 기업의 생존권과 직결된 경영 철학의 영역으로 전이되었음을 시사한다.
특히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거대 범죄 조직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냉혹한 현실을 투영한다. 대기업이 막대한 투자를 통해 방어벽을 높이는 동안, 상대적으로 취약한 공급망 하단의 기업들이 무너지며 생태계 전체의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이제 리스크 관리는 자사의 방어력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내가 의존하는 제3자 공급업체와 파트너사의 복원력까지 책임져야 하는 '연대적 방어'의 단계로 진입했다.
인공지능(AI), 양날의 검이 흔드는 거버넌스의 토대
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AI 리스크의 폭발적인 상승이다. 2025년 10위에서 2026년 2위로 수직 상승한 배경에는 기술 도입의 속도가 인간의 거버넌스와 규제 속도를 압도했다는 위기감이 자리 잡고 있다. 응답자의 절반이 AI의 이점을 신뢰하면서도, 5분의 1은 그 이면의 파멸적 가능성을 경계한다는 사실은 현재 경영자들이 겪는 심리적 불협화음을 대변한다.
생성형 AI를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에이전트형 AI'의 확산은 법적 책임의 주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AI가 내린 의사결정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 편향된 모델에 의한 차별, 지적 재산권 침해 등의 문제는 이제 이론적 논의를 넘어 실제적인 법적 분쟁과 평판의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 루도빅 수브란 알리안츠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지적처럼, 시스템의 신뢰성과 데이터 품질, 그리고 숙련된 인력의 부재는 2026년 기업들이 직면한 가장 거대한 '역량의 병목 현상'이다.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속도에만 매몰된 기업은 머지않아 AI가 만든 부메랑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사업 중단의 탈바꿈: 지정학적 변동성과 공급망의 균열
흥미로운 변화는 '사업 중단'이 상위 2개 리스크에서 처음으로 제외되어 3위로 내려앉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를 안도할 신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는 사업 중단 자체가 줄어들어서가 아니라, 사이버 공격과 AI 리스크가 사업 중단을 일으키는 상위 개념으로서 더욱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업 중단의 원인으로서 지정학적 위험(7위)과 법률/규제 변화(4위)의 영향력은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해졌다. 2025년을 관통한 보호무역주의와 관세 전쟁, 그리고 2026년 미국의 베네수엘라 개입 등 이어지는 국제적 분쟁은 글로벌 공급망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무역 제한이 세 배로 증가하고 전 세계 수입의 20%가 타격을 입는 상황에서, 자신의 공급망을 "매우 탄력적"이라고 평가한 응답자가 단 3%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뼈아픈 현실이다.
이제 기업들은 효율성 중심의 글로벌 분업 구조를 포기하고, '프렌드쇼어링(협력국 이전)'과 '지역화'라는 생존 전략을 택하고 있다. 비용 절감이 미덕이었던 시대는 가고, 이제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리스크를 분산하고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최고의 경영 가치가 되었다. 5년 내 글로벌 공급망 마비라는 '블랙 스완' 시나리오를 현실로 상정하고 대비하는 51%의 응답자들은 이미 이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고 있는 셈이다.
맺으며: 리스크 관리의 본질적 전환
2026 알리안츠 리스크 바로미터가 주는 궁극적인 교훈은 '연결성'이다. 사이버 위협은 AI를 통해 증폭되고, AI의 오류는 사업 중단을 야기하며, 지정학적 갈등은 이 모든 과정을 가속화한다. 위험은 더 이상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거대한 그물망처럼 서로를 옭아매고 있다.
경영자들에게 요구되는 철학적 사유는 명확하다. 기술적 우위를 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을 통제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며, 성장을 쫓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어떠한 충격에도 무너지지 않는 '복원력(Resilience)'을 확보하는 것이다. 2026년은 불확실성의 파도를 잠재우려 애쓰기보다, 그 파도 위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체질 개선에 성공한 기업만이 살아남는 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