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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7일 화요일

품질은 협상의 대상이 아닌 ‘존립의 임계점’이다

 

무너진 바벨탑: OEM 시스템의 실존적 위기와 자본의 윤리

우리는 지금 '효율성'이라는 신화가 설계한 정교한 미로 속에서, 가장 원초적인 가치인 '안전'을 미로의 제물로 바친 시대의 목격자가 되었다. 2026년 초 발생한 OEM 수입 생활용품의 대규모 리콜 사태는 단순히 불량 제품의 회수라는 물리적 사건을 넘어, 현대 제조 자본주의가 신봉해온 글로벌 분업화의 윤리적 파산을 선언하고 있다.

재무제표의 숫자는 지울 수 있으나, 소비자의 각인된 불신은 회수 불가능한 부채다.

1. 국경을 넘는 그림자: OEM이라는 이름의 책임 전가

현대 기업 경영에서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은 마법의 지팡이와 같았다. 자산 경량화(Asset-light)를 통해 고정비 리스크를 줄이고,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국경을 넘나들며 이윤을 극대화하는 전략은 '스마트한 경영'의 전형으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그 지팡이가 사실은 양날의 검이었음을 증명한다.

  • 감시받지 않는 연금술: 설계도는 서울의 고층 빌딩에서 그려지지만, 실제 제품이 빚어지는 곳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타국의 공장이다. 본사의 품질관리(QC) 시스템이 현지의 물리적 공정을 실시간으로 장악하지 못할 때, 그 간극은 '금지 성분 혼입'이라는 치명적인 균열로 화한다.

  • 공급망의 소외: 제조 공정의 핵심인 '세척과 소독'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를 수년간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본사가 제조 현장을 '살아있는 유기체'가 아닌 '숫자로 치환된 데이터'로만 대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관리의 소외이자, 브랜드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감수성의 결여다.

2. 자본의 연대기: M&A의 신기루와 지배구조의 공동화(空洞化)

특히 이번 사태가 기업의 매각(M&A)이라는 자본의 축제 직전에 발생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을 가장 높은 가격에 넘기기 위해 외형 성장에 치중하는 동안, 내면의 근간인 품질 보증 체계는 서서히 부식되고 있었다.

  • 숫자에 가려진 우발 채무: 재무제표상의 영업이익률은 매력적이었을지 모르나, 그 이면에는 '신뢰 자산의 부채'가 쌓이고 있었다. 리콜로 인한 직접적 환불 비용은 장부상 수치에 불과하다. 진정한 손실은 인수 후보자들이 목격한 '통제 불가능한 리스크' 그 자체다.

  • 거버넌스의 형해화: 이사회는 비용 절감의 성과에는 박수를 보냈으나, 그 절감의 과정에서 희생된 안전 장치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지배구조(Governance)가 단기적 엑시트(Exit)의 도구로 전락할 때, 기업은 사회적 흉기로 돌변할 수 있음을 이번 사례는 극명하게 보여준다.

3. 사유의 확장: 신뢰라는 이름의 무거운 닻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건네는 가장 고귀한 서약이다. 매일 아침 우리 가족의 신체에 닿는 생활용품은 단순한 상업적 교환의 대상이 아니라, 기업의 인격과 소비자의 신뢰가 만나는 지점이다.

모든 견고한 것은 대기 속으로 녹아 사라진다. (Karl Marx)

마르크스의 통찰처럼, 수십 년간 쌓아 올린 브랜드의 견고한 명성은 단 몇 마이크로그램의 금지 성분과 함께 대기 속으로 흩어졌다. 소비자가 느낀 배신감은 제품의 효능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지탱하던 '당연한 안전'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유린당했다는 실존적 경악에 가깝다.

4. 에필로그: 다시, 인간의 얼굴을 한 제조로

이제 기업들은 선택해야 한다. 국경 너머의 공장을 단순한 하청 기지로 볼 것인가, 아니면 브랜드의 운명을 공유하는 혈맹으로 관리할 것인가.

  1. 디지털 파놉티콘의 구축: 이제 '서류상 확인'은 무의미하다. IoT와 블록체인을 결합하여 해외 공정의 사소한 화학적 변화까지 본사 대시보드에 실시간으로 기록되는 **'투명한 공급망'**만이 무너진 신뢰를 재건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적 대안이다.

  2. 가치 평가의 패러다임 전환: M&A 시장은 이제 영업이익 너머의 '리스크 내성'을 측정해야 한다. 제조 공정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기업은 '잠재적 폐업 후보'로 분류되는 냉혹한 시장 논리가 정착되어야 한다.

  3. 지배구조의 성찰: 이사회 내에 제품 안전만을 전담하는 독립적 기구를 두고, 사고 발생 시 경영진에게 무거운 책임을 묻는 지배구조의 혁신이 필요하다.

결국, 기업의 가치는 매각 대금의 숫자가 아니라 그들이 만든 제품이 소비자의 삶을 얼마나 안전하게 수호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번 OEM 리콜 사태는 자본이 잊고 지냈던 이 자명한 진리를 가혹한 방식으로 일깨워주고 있다.


2026년 2월 7일 토요일

유럽 분유 명가 60개국에서 리콜: 왜 세레울라이드인가

 

세레울라이드의 역설: 완벽이라는 성성(聖城)에 뚫린 미세한 균열, 그 심연의 기록

2026년 1월, 인류가 쌓아 올린 가장 견고한 바벨탑 중 하나인 '글로벌 식품 안전 시스템'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네슬레, 다논, 락탈리스. 이름만으로도 자본의 신뢰와 과학적 권위를 상징하는 이 거대 기업들이 전 세계 60개국에서 영유아용 분유를 거두어들였다. 발단은 '세레울라이드(Cereulide)'라 불리는 보이지 않는 독소였다. 이 작은 분자 화합물은 현대 과학이 자부해온 '통제된 완벽'이 얼마나 허약한 유리 성벽이었는지를 단숨에 폭로하며, 문명의 오만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들었다.

파편화된 전문성은 각자의 성벽을 쌓을 뿐, 그 성벽 사이의 '어두운 틈새'에서 자라나는 재앙을 보지 못한다.


1. 기술적 오만과 미생물의 처절한 응전 (The Hubris of Tech)

우리는 세계 최고의 석학들과 초정밀 센서, 그리고 실시간 데이터를 처리하는 AI 알고리즘이 우리 아이들의 식탁을 지키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시스템의 고도화가 곧 안전의 극대화'**라는 근대적 믿음이 치명적인 착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세레울라이드는 바실러스 세레우스(Bacillus cereus)균이 생존을 위해 내뱉는 독성 화합물이다.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도구적 이성의 역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간이 100°C 이상의 고온 살균과 강한 산성 처리를 통해 미생물을 박멸하려 할수록, 자연은 그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욱 견고한 내열성과 내산성을 갖춘 독소를 진화시킨다. 우리가 설계한 '완벽한 살균 공정'은 역설적으로 평범한 균들을 걸러내고, 오직 최강의 변종만이 살아남아 독소를 뿜어내도록 '선택적 압력'을 가한 셈이다. 인간의 통제가 강해질수록 자연의 반작용은 더욱 정교하고 치명적인 방식으로 변모한다.

2. 효율성이라는 신화, 그리고 파편화된 책임의 심리학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면, 이 사고는 현대 기업이 숭상하는 **'효율성'**이라는 집단적 최면의 비극적 결과물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린(Lean) 생산 방식'과 '공급망의 극단적 분절화'를 선택했다. 원료는 전 세계 수천 개의 목장에서 수집되어 수십 단계의 하청 구조를 거치며 농축되고 배합된다.

이 거대한 메커니즘 안에서 인간의 책임은 입자처럼 파편화된다. 미생물학자는 현미경 너머의 균을 보고, 엔지니어는 계기판의 수치를 읽으며, 경영자는 분기별 그래프의 곡선을 본다. 각자의 영역에서 석학들은 최선을 다했으나, **'전체로서의 생명'**을 조망하는 통합적 시선은 상실되었다. 누구도 악의를 품지 않았으나, 시스템 전체가 악한 결과를 초래하는 '평범성 속의 재앙'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벽 뒤에 숨어 있을 때, 세레울라이드는 그 전문가들 사이의 '연결 고리'라는 어두운 틈새에서 조용히 증식했다.

3. 리콜의 경제학: 상실을 통한 신뢰의 속죄

네슬레와 다논이 수조 원의 직접 손실을 감수하며 리콜을 결정한 것은 단순한 인도주의적 결단이 아니다. 그것은 **'신뢰라는 무형 자산'**을 보존하기 위한 처절한 경제적 생존 투쟁이다. 분유 시장은 단순한 소비 시장이 아니라 '생명 연장의 위탁'이 이루어지는 성소(Sanctuary)와 같다. 소비자, 특히 부모의 심리는 작은 오염에도 극도의 공포와 배신감을 느낀다.

전 세계 60개국에 배치된 '워룸(War Room)'과 24시간 가동되는 공장은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으려는 시지프스의 형벌을 연상케 한다. 기업들은 리콜을 통해 당장의 이익을 제물로 바치고, "우리는 오류를 범했으나 이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낸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이 막대한 리콜 비용은 신뢰를 다시 구매하기 위해 지불하는 가장 비싼 가격이자, 문명 사회와의 계약을 갱신하기 위한 '속죄의 제물'이다.

4. 확장된 사유: 시스템은 과연 완벽할 수 있는가?

우리는 더 강력한 검사 장비와 더 복잡한 매뉴얼을 도입하면 다음 재앙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역사는 증명한다. 시스템이 복잡해질수록 그 내부의 상호작용은 예측 불가능한 '정상 사고(Normal Accident)'의 확률을 높인다. 세레울라이드 사태는 단순히 유제품 업계의 불운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거대 기술 시스템이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취약성에 대한 경고다.

프랑스 검찰의 수사와 기업의 사후 조치는 현상적인 치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진정한 해결은 우리가 '완벽'이라는 오만을 내려놓고,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인정하는 겸손에서 시작된다. 과학적 데이터가 안전을 보장한다고 맹신하기보다, 데이터 너머의 불확실성을 상시로 응시하는 '비판적 감각'이 회복되어야 한다.


맺음말: 성성(聖城)의 균열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세레울라이드라는 작은 독소가 전 세계를 뒤흔든 이 사건은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기술로 모든 공포를 지울 수 있는가? 아니면 완벽을 향한 갈망 자체가 새로운 공포를 잉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에세이는 단순한 리콜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이 쌓아 올린 견고한 시스템 속에 가려진 '생명의 가치'와 '윤리적 책임'을 다시금 일깨우는 비망록이다. 가장 정교한 알고리즘조차 한 줌의 독소 앞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기계적 안전'을 넘어선 '인간적 신뢰'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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