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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1일 수요일

신뢰의 장부, 그 가벼움에 대하여: 빗썸 오지급 사태가 던진 화두

 

2026년 2월 6일, 대한민국 가상자산 시장은 초현실적인 숫자를 목도했다. 2,000원이 2,000 BTC로 변모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60조 원 상당의 자산이 전산망을 유령처럼 떠돌았다. 이른바 '빗썸 오지급 사고'는 단순한 기술적 결함이나 개인의 실수를 넘어, 현대 금융 시스템이 기반하고 있는 '장부(Ledger)의 신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실수는 예외가 아니라 상수(Constant)다. 그 상수가 재앙이 되지 않도록 결괏값을 제어하는 것, 그것이 리스크 관리의 본질이다.

단위의 혼돈: 인간의 실수인가, 시스템의 방조인가

사건의 발단은 지극히 고전적이다. '원(KRW)'과 '개(BTC)'를 구분하지 못한 이른바 **'팻 핑거(Fat Finger)'**다. 하지만 전문가적 관점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담당자의 손가락이 아니라, 그 손가락이 누른 버튼이 아무런 저항 없이 실행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리적 시스템의 결함이라기보다, 이는 전형적인 거버넌스의 붕괴다. 금융 플랫폼에서 자산의 단위는 생존과 직결되는 절대적 가치다. 2,000원과 2,000억 원을 변별하지 못하는 시스템은 이미 리스크 관리 체계가 작동 불능 상태임을 의미한다. 실수는 인간이 할 수 있지만, 그 실수가 재앙으로 번지지 않게 막는 것이 시스템의 존재 이유다. 이번 사태에서 빗썸의 위험관리 시스템은 사실상 부재했다.

가상의 숫자와 실재의 괴리: 장부 거래의 함정

가장 뼈아픈 비판은 **'장부 거래(Paper Trading)'**의 허점에서 발생한다. 빗썸이 보유한 실제 비트코인보다 13배나 많은 물량이 지급될 수 있었던 것은, 거래소의 숫자가 블록체인상의 실물 자산과 동기화되지 않은 채 내부 데이터베이스의 텍스트로만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경영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신용의 과잉 발행'**과 같다. 고객은 화면상의 숫자를 실물 자산이라 믿고 거래하지만, 거래소는 그 믿음의 무게를 감당할 실질적 담보를 갖추지 못한 채 숫자를 놀렸다. 8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비트코인 가격이 15% 급락한 현상은, 허상으로 쌓아 올린 장부가 실재하는 시장을 얼마나 쉽게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서늘한 증거다.

교훈: 기술적 진보보다 앞서야 할 윤리적 통제

사고 직후 99.7%의 자산을 회수했다는 사실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회수되지 못한 130억 원은 단순한 금전적 손실이 아니라, 시장이 거래소에 부여했던 신뢰의 '부도' 처리된 잔액이다.

이번 사태가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 통제의 자동화: 인간의 도덕성이나 주의력에 기대는 리스크 관리는 반드시 실패한다. 보유 자산을 초과하는 인출이나 지급을 원천 차단하는 하드웨어적 제어(Hard-coded Control)가 필수적이다.
  • 투명성의 재정립: 거래소 내부 장부와 온체인(On-chain) 데이터 간의 실시간 대조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 가상자산의 핵심 가치인 '투명성'을 거래소 스스로 외면하는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
  • 책임의 무게: 금융은 결국 숫자를 다루는 사업이 아니라 '신뢰'를 설계하는 사업이다. 단위 하나에 수십 조 원이 움직이는 환경에서 경영진의 철학은 기술적 완성도보다 엄격한 내부 통제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결국, 빗썸 사태는 가상자산 업계가 '덩치'에 걸맞은 '내실'을 갖추었는지 묻는 최후통첩과 같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숫자를 다루는 시스템은 언제든 탐욕과 나태에 오염될 수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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