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3일, SPC삼립의 심장부라 불리는 시화공장이 불길에 휩싸였다. 생산량의 70%를 담당하는 핵심 기지의 가동 중단은 단순한 사고를 넘어 공급망의 마비를 초래했다. 식빵 하나, 햄버거 번 하나가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사건이다. 그러나 자욱한 연기가 걷힌 뒤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질문은 피해 규모가 아니라, 기업이 재난을 대하는 '철학적 태도'와 '복원력(Resilience)'의 실체다.
비용 절감을 위해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는 경영은 성장이 아니라 도박이다. 진정한 효율은 생산량의 수치가 아니라,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증명되는 **복원력(Resilience)**의 깊이에서 완성된다.
1. 550명의 자력 대피: 훈련의 결실인가, 요행의 결과인가
이번 화재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550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원이 단 한 명의 사망자 없이 전원 대피했다는 사실이다. 3층이 전소되고 천장이 붕괴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이 정도의 인명 보호는 결코 우연으로 치부될 수 없다.
만약 이것이 평소의 반복적인 대피 훈련과 매뉴얼화된 **BCP(Business Continuity Planning, 업무연속성계획)**의 결과라면, 이는 SPC삼립이 비록 공정 안전 관리에는 실패했을지언정 인명 존중의 최소한의 시스템은 작동했음을 의미한다. 반면, 만약 이것이 현장 근로자들의 개별적 생존 본능에 의존한 천운이었다면, 경영진은 더 깊은 자기반성에 직면해야 한다. 진정한 경영 철학은 서류상의 매뉴얼이 아니라,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종업원들의 발걸음을 출구로 인도하는 '체화된 안전 본능'에서 증명되기 때문이다.
2. BCP의 허상과 실재: 서류인가, 문화인가
기업들은 위기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며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양산한다. 하지만 시화공장의 사례처럼 핵심 생산 거점이 무너졌을 때, 그 계획이 실제 공급망의 붕괴를 막아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시화공장은 전체 양산빵 생산의 70%를 점유하고 있었다. 특정 거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효율성 측면에서는 최적일지 모르나,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는 치명적인 독이다. 진정한 BCP는 사고 후 대체 생산지를 찾는 '사후 약방문'이 아니다. '한 곳이 무너져도 시스템은 멈추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생산 설비를 분산하거나, 즉각적인 전환이 가능한 유연한 공급망(Agile Supply Chain)을 구축하는 경영적 결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SPC삼립이 겪고 있는 물류 차질은 이 '효율'과 '안전' 사이의 저울질에서 효율의 손을 들어준 과거 결정의 대가일 수 있다.
3. 반복되는 사고와 훼손된 신뢰의 가치
지난해 발생한 근로자 끼임 사고에 이어 발생한 이번 화재는 SPC삼립의 안전 경영 진정성에 의문을 던진다. 기계적 결함이나 가스 누출 가능성이 제기되는 현 상황에서, 기업이 설비 유지보수와 안전 점검에 쏟은 비용을 '매몰 비용'으로 보았는지 '미래 투자'로 보았는지가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경영에서 가장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은 소실된 공장 건물이 아니라 훼손된 브랜드 신뢰도다. 소비자들은 이제 단순히 제품의 질만을 소비하지 않는다. 그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윤리와 안전을 함께 구매한다. 반복되는 중대 사고는 기업이 사람과 안전을 비용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는 인식을 심어줄 위험이 크다.
4. 회복력을 위한 제언: 보이지 않는 손실을 직시하라
공급망 중단에 따른 금전적 손실과 점유율 하락은 눈에 보이는 수치다. 그러나 숙련된 인력의 심리적 트라우마, 지역 사회의 불안감, 그리고 '사고 공장'이라는 오명은 장부상에 나타나지 않는 치명적 손실이다.
SPC삼립이 이번 사태를 수습하며 보여줘야 할 태도는 신속한 설비 복구 그 이상이어야 한다. 단순히 불탄 오븐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 현장의 안전 철학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우리는 왜 또다시 실패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경영진이 뼈를 깎는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면, 다음 화재는 잿더미에서 다시 피어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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