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0일 금요일

효율의 배신: 다논 리콜 사태가 던지는 공급망의 실존적 질문

 

경영의 역사는 '최적화'라는 미명 아래 진행된 비용 절감의 연대기다. 그러나 최근 유럽을 뒤흔든 다논(Danone)의 대규모 분유 리콜 사태는, 우리가 신봉해온 글로벌 분유 공급망의 효율성이 사실은 얼마나 위태로운 모래성 위에 서 있었는지를 냉혹하게 증명한다. 영유아의 생명과 직결된 산업에서 발생한 이 균열은 단순한 공정 오류가 아닌, 현대 경영 철학이 직면한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효율성(Efficiency)이라는 이름으로 안전의 여백을 제거할 때, 기업은 '단일 실패 지점'이라는 거대한 도박판에 서게 된다.

1. 사태의 전말: 보이지 않는 독소의 침투

이번 사태의 발단은 '세레울라이드(Cereulide)' 독소 오염 우려였다. 앱타밀(Aptamil), 뉴트릴론(Nutrilon) 등 다논의 간판 브랜드들이 줄줄이 리콜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그 파동은 영국과 네덜란드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사태의 핵심은 분유의 필수 성분인 '아라키돈산 오일'에 있었다. 이 원료의 공급처가 중국의 **차비오 바이오텍(Chabio Biotech)**으로 밝혀지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비용 효율을 위해 선택한 특정 국가·업체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단일 실패 지점(Single Point of Failure)'으로 작용했음이 드러났다. 가장 연약한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제품이 가장 불투명한 공급망의 끝단에서 오염되었다는 사실은 비극적 역설이다.

2. 규제 기관의 조치: 방어선의 재구축

사태가 확산되자 각국 보건 당국은 즉각적인 전시 체제에 돌입했다. 영국 보건 당국은 의심 사례 36건을 추적 중이며, 프랑스 당국은 네슬레 제품과 연관된 영아 사망 사건의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사법 조사에 착수했다.

미국 FDA를 포함한 글로벌 규제 기구들은 이제 사후 약방문식 대응을 넘어, 원료 성분에 대한 전수 조사와 검사 기준 강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절차의 강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기업에 부여했던 '자율적 품질 관리'에 대한 신뢰가 파산했음을 선언하는 것이며, 향후 식품 산업 전반에 걸쳐 유례없는 수준의 규제 비용이 발생할 것임을 시사한다.

3. 향후 손실: 재무적 타격을 넘어선 브랜드의 해체

다논이 감당해야 할 재무적 손실은 가시적인 수치만으로도 압도적이다. 회수 및 폐기 비용, 소송 비용 등을 합산하면 최대 3억 5,0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더 치명적인 것은 비재무적 자산인 '신뢰'의 붕괴다. 분유 시장은 브랜드 충성도가 매우 높지만, 한 번 무너진 신뢰는 결코 회복되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부모들에게 '다논'이라는 이름이 '안전'이 아닌 '불안'과 연결되는 순간, 기업의 시장 가치는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영구적 손상을 입게 된다. 이는 경쟁사인 네슬레와 락탈리스가 동시에 위기에 직면하며 산업 전체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뼈아프다.

4. 경영자의 책임: 무지(Ignorance)는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현대 경영자들은 복잡한 공급망 뒤에 숨어 "몰랐다"는 변명을 내놓곤 한다. 그러나 2022년 미국 분유 대란 이후에도 공급망 다변화와 투명성 확보에 실패한 것은 경영진의 전략적 태만이다.

다국적 기업의 CEO는 이제 재무제표의 숫자만큼이나 공급망 하단의 미생물 수치에 민감해야 한다. 원가 절감을 위해 안전 검증이 불투명한 원료선을 방치한 결정은 '경영적 판단'이 아니라 '윤리적 도박'에 가깝다. 이번 사태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은 단순히 리콜 비용을 처리하는 것에 그쳐선 안 되며, 거버넌스(Governance) 차원에서의 근본적인 쇄신과 인적 쇄신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인사이트] 효율의 역설: 보이지 않는 공급망이 기업의 급소가 될 때

다논의 리콜 사태는 현대 경영이 추구해온 ‘비용 최적화’가 ‘안전’이라는 절대 가치와 충돌했을 때 발생하는 파멸적 비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중국산 원료 오염에서 시작된 이번 위기는 특정 국가와 업체에 편중된 공급망이 기업의 생존을 뒤흔드는 **'단일 실패 지점(Single Point of Failure)'**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분유와 같은 고도의 신뢰 산업에서 공급망의 불투명성은 단순한 운영 리스크가 아닌 윤리적 해이에 가깝다. 경영진이 재무제표상의 원가 절감에 매몰되어 공급망 하단의 가시성을 놓치는 순간, 기업이 쌓아온 수십 년의 브랜드 자산은 단 며칠 만에 증발한다.

이제 경영자의 책무는 효율성을 넘어 **'회복 탄력성(Resilience)'**으로 옮겨가야 한다. 공급망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통제하는 엔드투엔드(End-to-End) 가시성 확보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인프라다. 결국, 가장 싼 원료를 찾는 기술보다, 가장 안전한 경로를 보장하는 철학이 기업의 진정한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추천 게시물

처벌의 공포를 넘어, '안전 경영'이라는 실존적 선택

  쇳물과 서류 사이, 경영자라는 이름의 형벌과 책임 제조업의 현장은 거대한 기계음과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생존의 최전선이다. 그곳에서 경영자는 자본의 흐름을 조율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설계자이자, 동시에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한 거대한 안전망의 ...

가장 많이 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