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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8일 수요일

이나모리 가즈오, 영혼의 도정(道程)으로서의 경영

 

경영은 단순히 재화를 창출하는 기술적 공정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내면적 성찰이 외부 세계와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거대한 파동이자, 자기 수양의 결정체다.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가 걸어온 길은 자본주의의 정글 속에서 '인간의 선함'이라는 가장 연약해 보이는 가치가 어떻게 가장 강력한 생존 기제가 되는지를 증명한 성소(聖所)와 같다. 그가 남긴 철학적 유산을 더 깊은 시선으로 해체하고 사유해 본다.


1. 존재의 근원적 질문: "인간으로서 무엇이 올바른가"

이나모리 경영학의 시발점은 거창한 시장 분석이나 재무 지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무엇이 올바른가(人間として何が正しいのか)"**라는 지극히 소박하고도 준엄한 윤리적 질문이다.

현대의 경영학이 '어떻게(How)'에 매몰되어 효율을 쫓을 때, 그는 '왜(Why)'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졌다. 이는 복잡한 비즈니스 생태계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원칙, 즉 **'백투더 베이직(Back to the Basic)'**의 정수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타인을 속이지 않는다, 정직하게 땀 흘린다와 같은 초등학교 수준의 도덕률이 거대 기업의 의사결정 기준이 되는 순간, 경영은 '돈벌이'에서 '구도(求道)'의 영역으로 격상된다.

2. 이타(利他)의 형이상학: 욕망의 승화

그는 이기심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이기심의 에너지를 **이타(利他)**라는 더 높은 차원의 에너지로 승화시켰다.

"나를 돕고자 한다면 먼저 남을 도와라."

이 역설적인 명제는 우주의 인과율과 맞닿아 있다. 그는 경영자의 마음이 옹졸하면 기업 또한 그 크기를 넘어서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고객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직원의 삶을 내 몸처럼 아끼는 마음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다. 그것은 타자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緣起)'의 자각이며, 그 연결망이 견고해질 때 기업이라는 유기체는 비로소 무너지지 않는 요새가 된다. 이것이 바로 그가 주창한 **'마음의 경영'**이며, 경영자의 인격이 곧 기업의 운명임을 시사한다.

3. 아메바 경영: 파편화된 주체를 생명으로 환치하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가장 구체적인 유산인 아메바 경영은 철학을 시스템으로 치환한 위대한 설계다. 그는 거대 조직이 관료주의의 늪에 빠져 개별 인간의 존엄을 지워버리는 현상을 경계했다.

  • 소집단 채산제: 조직을 아메바처럼 작은 단위로 쪼개는 것은 통제를 위함이 아니다. 개별 구성원에게 '경영자'라는 주체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 투명성의 윤리: 모든 지표를 전 사원에게 공개하는 것은 단순한 정보 공유가 아니라, 신뢰라는 영적 토대를 구축하는 행위다.

자신의 노동이 어떻게 가치를 창출하는지 눈으로 확인할 때, 사원은 부속품에서 주역으로 거듭난다. 아메바 경영은 자본주의가 잃어버린 '노동의 기쁨'을 되찾아주는 인본주의적 장치이며, 전 직원이 한마음으로 움직이는 **'전원 참가 경영'**의 실천적 모델이다.

4. 인생 방정식의 변주: '사고방식'이라는 절댓값

이나모리 가즈오가 설파한 인생의 방정식은 가히 수학적 계시와 같다.

인생·일의 결과 = 능력*열의*사고방식

여기서 **'사고방식'**은 유일하게 음수(-)를 가질 수 있는 변수다. 아무리 천재적인 능력과 뜨거운 열정을 지녔더라도, 그 지향점이 파괴적이라면 결과는 참담한 파국($-10,000$)으로 귀결된다.

그가 강조한 '올바른 사고방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긍정, 감사, 겸손, 그리고 타인을 향한 자애다. 능력이 부족한 자는 열의로 보완할 수 있고, 열의가 부족한 자는 시스템으로 독려할 수 있으나, 사고방식이 비뚤어진 자는 조직을 뿌리째 썩게 한다. 이 방정식은 현대의 성과주의가 놓치고 있는 '방향성'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5. 카르마(Karma)와 JAL의 기적: 보이지 않는 손

2010년, 파산 직전의 일본항공(JAL)을 1년 만에 흑자로 돌려세운 사건은 전 세계 경영학계의 미스터리였다. 하지만 이나모리에게 그것은 당연한 **카르마(업)**의 결과였다.

그는 기술적 구조조정보다 사원들의 '마음 개혁'에 집중했다. "JAL을 살리는 것은 일본 경제를 위함이며, 사원들의 고용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대의(大義)를 세우자, 죽어있던 조직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선한 의지가 모여 거대한 에너지를 형성할 때, 시장의 논리를 초월하는 기적이 일어남을 그는 입증했다. 이것이 바로 카르마 경영, 즉 뿌린 대로 거둔다는 우주의 섭리를 경영에 이식한 결과다.


결론: 경영의 끝에서 만난 '사람'

이나모리 가즈오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경영의 종착지에는 결국 '사람'이 서 있음을 깨닫게 된다. 돈은 수단일 뿐이며, 진정한 목적은 전 직원의 물심양면(物心兩面)의 행복에 있다. 경제적 풍요(物)와 마음의 보람(心)이 조화를 이룰 때, 기업은 비로소 영속성을 얻는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당신의 경영은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는가? 당신의 비즈니스는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한 곳으로 만들고 있는가? 이나모리 가즈오라는 거대한 거울 앞에 서서, 우리 각자의 경영과 삶을 비추어 보아야 할 때다.


2026년 2월 17일 화요일

뱅시(VINCI)가 증명한 ‘안전의 역설’ : 비용이 아닌 존엄의 설계

 

중력의 비극을 거스르는 인본주의적 성채: 뱅시(VINCI)의 안전 형이상학

인류의 역사는 곧 중력과의 투쟁사다. 수직으로 솟구치려는 욕망과 이를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물리적 법칙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그것이 곧 건설의 본질이다. 프랑스의 건설 거인 **뱅시(VINCI)**는 이 거대한 역학적 갈등의 중심에서 가장 연약하면서도 가장 고귀한 단위인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일종의 철학적 요새를 구축했다. 뱅시에게 안전은 단순한 현장 관리 지침이 아니라, 존재의 파멸을 막기 위한 실존적 결단이다.

우리가 짓는 것은 마천루가 아니라, 그 안에서 누군가가 무사히 삶을 영속할 수 있다는 견고한 신뢰다.


1. '제로(Zero)'라는 수치에 투영된 절대적 윤리

현대 산업 사회에서 통계는 대개 '허용 가능한 범위'를 설정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사고율 0.1%라는 수치는 경영진에게는 승리일지 모르나, 그 0.1%에 해당하는 개인과 가족에게는 세상의 종말과 같다. 뱅시가 천명한 **'제로 사고(Zero Accident)'**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뱅시는 사고를 확률론적 희생양으로 치부하는 비겁한 합리주의를 거부한다. 그들이 상정한 '제로'는 도달 불가능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단 한 명의 생명도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겠다는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다. 이는 효율성을 최고의 선으로 삼는 자본주의적 논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태도다. 뱅시의 경영진 성과 평가에 안전 지표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제로'의 가치가 수사가 아닌 실천적 물리력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2. '멈춤'의 미학: 가속도의 시대에 던지는 성찰적 제동

건설 현장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거대한 유기체와 같다. 타워크레인의 회전, 레미콘의 진동, 노동자의 망치질은 거대한 오케스트라처럼 맞물려 돌아가며 '공기 단축'이라는 지휘봉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여기서 '멈춤'은 금기다. 그러나 뱅시는 이 가속도의 미학에 균열을 낸다.

'Look, Warn, Share' 캠페인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현장 노동자에게 부여된 **'성찰적 거부권'**이다.

  • Look(관찰): 현상을 넘어 본질을 꿰뚫는 시선이다. 기계적 반복 노동 중에 놓치기 쉬운 불길한 징후를 포착하는 주체적인 시각을 회복시킨다.

  • Warn(경고): 이는 타자에 대한 극진한 예의다. 동료의 위험을 알리는 행위는 개인주의적 경쟁 사회에서 붕괴된 '공동체 의식'의 복원을 의미한다.

  • Share(공유): 고통과 위험의 기억을 공적 자산으로 변모시키는 연금술이다. 한 사람의 깨달음이 집단의 지혜로 전이될 때, 현장은 비로소 안전이라는 무형의 성벽을 얻게 된다.

뱅시는 노동자를 명령을 수행하는 육체가 아니라, 현장의 위험을 감지하고 판단하는 '사유하는 주체'로 격상시켰다. 2018년 대비 2023년의 산업재해 빈도율 개선($6.10 \rightarrow 5.66$)은 이러한 인본주의적 통찰이 거둔 필연적 결과물이다.

3. 경계를 지우는 연대: '우리'라는 이름의 안전 공동체

현대 건설 산업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는 위험의 외주화다. 원청과 하청, 본사와 지사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은 책임의 공백을 만들고, 그 틈새로 죽음이 스며든다. 뱅시는 이 비극적 구도를 깨뜨리기 위해 **'안전의 보편성'**을 들고 나왔다.

그들의 안전 정책은 자사 직원과 하청 업체 직원, 심지어 일용직 파견 인력 사이의 경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청 업체 관계 헌장'**은 단순한 계약 문구가 아니다. 그것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흙을 밟고 서 있는 모든 노동자의 생명권이 동등하다는 인류학적 선언이다. 협력사를 선정할 때 기술력만큼이나 안전 역량을 엄격히 따지는 행위는, 비윤리적인 파트너와는 문명의 토대를 함께 쌓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4. 기술의 끝에서 만나는 '인본주의적 문화'

100개국 이상에서 전개되는 뱅시의 거대한 사업 포트폴리오는 토목, 에너지, 양보 산업을 망라한다. 이 거대한 제국을 지탱하는 것은 최첨단 공법이나 막대한 자본만이 아니다. 그 기저에는 노동자의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까지 염려하는 **'인본주의적 문화'**가 흐르고 있다.

건설업은 거칠고 투박한 세계다. 그러나 뱅시는 그 투박함 속에 섬세한 인간에 대한 예우를 심었다. 작업 전 의무화된 안전 브리핑은 일종의 경건한 의례와 같으며, 투명한 정보 공유는 불신이 낳는 사고의 틈을 메운다. 뱅시에게 안전은 '지켜야 할 규칙'이 아니라 '지켜내야 할 인간의 존엄' 그 자체인 것이다.


결론: 시간의 풍화를 견디는 안전의 기념비

건축물은 시간이 지나면 풍화되고, 교량은 수명을 다하면 철거된다. 그러나 뱅시가 정립한 안전의 가치는 형이하학적 구조물을 넘어 형이상학적 유산으로 남는다. 뱅시의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진정한 선진국, 진정한 일류 기업의 기준은 그들이 얼마나 높은 마천루를 올렸느냐가 아니라, 그 마천루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평온하게 집으로 돌아갔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뱅시는 오늘도 중력의 위협에 맞서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무기는 강철과 콘크리트만이 아니다. 인간을 향한 깊은 신뢰와 생명에 대한 경외심, 그것이 바로 뱅시가 세상에 공표한 가장 견고한 설계도다.


2026년 2월 7일 토요일

리오 틴토(Rio Tinto) CRM의 철학을 관통하는 경영 인사이트

 

붉은 대지의 성찰: 리오 틴토(Rio Tinto) CRM이 그려낸 사투와 구원의 에세이

철광석의 붉은 먼지가 내려앉은 호주의 필바라(Pilbara)에서부터 기니의 시만두(Simandou) 숲에 이르기까지, 리오 틴토의 채굴 현장은 인류 문명의 골격을 형성하는 거대한 자궁이자, 동시에 생명을 위협하는 가혹한 심연이다. 이곳에서 운용되는 **치명적 위험 관리(Critical Risk Management, CRM)**는 단순히 사고율을 낮추기 위한 통계적 기법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자본과 기계의 함성 속에서 '인간'이라는 유약한 존재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 응답이자, 현대 경영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치열한 인문주의적 고찰의 산물이다.


1. 나비넥타이(Bow-tie)의 형이상학: 혼돈의 입구에서 질서의 파수꾼이 되다

CRM의 상징과도 같은 '나비넥타이' 모델을 가만히 응시해 보라. 그것은 시간의 흐름을 기하학적으로 박제한 형상이다. 왼쪽의 날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비극의 전조들이 모여드는 **'가능성의 공간'**이며, 오른쪽의 날개는 통제를 벗어난 힘이 파멸로 흩어지는 **'결과의 공간'**이다. 그리고 그 정중앙, 잘록한 매듭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절체절명의 순간(Top Event)이다.

경영 철학적 관점에서 이 모델은 인간의 '예지력'에 대한 도전이다. 리오 틴토는 우연이라는 이름의 오만을 허용하지 않는다.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균열이 모여 만들어낸 필연적 귀결임을 직시한다. 나비넥타이의 왼쪽 날개에 배치된 **'예방적 제어(Preventative Controls)'**는 인과율의 사슬을 끊어내려는 지성적 저항이다. 이는 스피노자가 말한 "원인을 인식함으로써 슬픔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명제의 산업적 실천이다. 위험을 정교하게 분해하고 그 길목마다 통제라는 파수꾼을 세우는 행위는, 자연의 거대한 혼돈(Chaos) 앞에 인간이 세울 수 있는 가장 정교한 질서(Cosmos)의 성벽이다.

2. 계층적 검증(Layered Verification):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연대의 체계

리오 틴토의 CRM이 지닌 진정한 위대함은 기술적 정교함이 아니라 그 '수직적 연대'에 있다. 작업자, 관리자, 그리고 현장을 방문하는 최고 경영진에 이르기까지 중첩적으로 이루어지는 **'계층적 검증'**은 조직의 위계를 권위의 상징이 아닌 **'책임의 무게'**로 재편한다.

"나는 내 형제를 지키는 자인가?"라는 카인의 질문에 대해, 리오 틴토의 구성원들은 매일 아침 CRM 체크리스트를 손에 쥐고 답한다.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검증은 숫자로 치환된 행정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기계 장치 속에서 동료의 숨소리를 확인하고, 느슨해진 볼트 하나에 담긴 타인의 생명을 응시하는 실존적 조우다. 2024년 수행된 150만 건의 검증 데이터는 단순한 빅데이터가 아니다. 그것은 150만 번의 '살핌'과 '돌봄'이 실천되었음을 증명하는 연대의 기록이며, 자본의 논리가 생명의 가치를 압도하지 못하도록 막아 세운 150만 개의 방파제다.

3. 시만두의 비극과 시시포스의 윤리: 실패를 껴안는 불굴의 의지

그러나 2026년 2월, 기니 시만두 프로젝트에서 들려온 비보는 우리에게 차가운 진실을 일깨운다. 아무리 완벽한 시스템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결국 유한하며 대지는 때로 예측 불가능한 분노를 터뜨린다는 사실이다. 비극은 시스템의 무용함을 증명하는가?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비극 이후 리오 틴토가 보여준 즉각적인 작업 중단과 데이터 로그의 처절한 분석은, 실패를 은폐하는 비겁함 대신 실패를 통해 시스템을 단련하는 **'회복 탄력성(Resilience)'**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는 알베르 카뮈가 묘사한 시시포스의 신화와 맞닿아 있다. 바위가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다시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행위 자체에 인간의 존엄이 있듯, CRM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완벽한 안전'이라는 이상향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고귀한 반복이다. 2026년의 슬픔은 시스템의 종말이 아니라, 더 견고한 생명의 그물을 짜기 위한 뼈아픈 주석(註釋)이 되어 리오 틴토의 역사에 기록된다.

4. 디지털과 심장: 기술이라는 외골격 속에 흐르는 인본주의

오늘날 리오 틴토의 광산에는 웨어러블 센서와 실시간 지오펜싱(Geofencing) 기술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하지만 이 차가운 디지털 외골격(Exoskeleton) 속에 흐르는 것은 결국 인간의 뜨거운 심장이다. 기술은 위험의 좌표를 찍어줄 뿐, 그 위험을 온몸으로 막아 세우는 것은 "오늘 내 동료가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현장 작업자의 자각이다.

리오 틴토의 CRM은 우리에게 묻는다. 효율과 이윤의 광풍 속에서 당신의 경영은 '인간'이라는 북극성을 잃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인간을 지키기 위해 당신은 어떤 구체적인 밧줄을 매일 아침 단단히 조이고 있는가? 경영은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일이어야 한다는 그 지당하고도 어려운 진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붉은 대지 위에서 CRM이라는 처절한 문장으로 쓰여 내려가고 있다.


에필로그: 심연을 건너는 모든 경영자에게 

비극은 시스템의 종말이 아니라, 더 견고한 생명의 그물을 짜기 위한 가장 뼈아픈 주석(註釋)이다.

리오 틴토의 사례는 단순한 안전 지침을 넘어선다. 그것은 불확실성이라는 심연을 건너야 하는 모든 경영자에게 던지는 경종이다. 위험은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며, 관리는 기술이 아니라 철학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들은 증명하고 있다. 붉은 먼지 속에 새겨진 CRM의 궤적은, 인류가 기술적 성취를 넘어 어떻게 서로의 생명을 보듬으며 진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장 장엄한 에세이다.


2026년 1월 22일 목요일

CJ Drilling의 10년 무결점 철학이 던지는 엄중한 메시지

 

"가장 큰 이익은 안전하지 않은 현장을 거절하는 결단에서 나온다."

국내 건설업계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은 여전히 '피해야 할 규제' 혹은 '비용적 부담'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짙다. 사고가 발생하면 하청에 책임을 전가하거나, 서류상의 안전 점검표를 채우기에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시점에 미국 일리노이 기반의 송전·유통 분야 건설업체 **CJ Drilling Inc.**가 보여준 10년간의 행보는 단순한 우수 사례를 넘어, 한국 건설 경영자들이 직면해야 할 거대한 거울과 같다.


1. 경영의 본질: '이익'이 아닌 '생존의 토대'로서의 안전

CJ Drilling의 경영 철학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안전이 수익 논리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구호로 외치지만, 실제 공기 단축이나 고액의 계약 건 앞에서는 타협한다.

  • 계약 파기의 용기: 경영진이 직접 현장을 확인하고 위험 요소가 제거되지 않을 경우, 수백만 달러 규모의 계약조차 해지하는 결단력은 한국적 정서에서 '무모함'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무모함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을 위한 가장 정교한 계산이다. 사고 한 건이 기업의 평판과 존립을 송두리째 흔드는 시대에, 위험한 작업에 뛰어들지 않는 것은 가장 고도화된 리스크 관리 전략이다.

  • 자산으로서의 인간: "직원은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명제를 수사적 표현이 아닌 '실제 자산 보호'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숙련된 노동자가 부상을 입거나 사망하는 것은 단순한 손실을 넘어 기업의 기술력과 현장 장악력이 붕괴됨을 의미한다.

2. 시스템의 고도화: '운'에 맡기지 않는 과학적 안전

안전은 결코 작업자의 주의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CJ Drilling은 인간의 실수를 전제하고, 이를 시스템으로 보완하는 데 집중했다.

  • OSHA 기준을 상회하는 교육: 법적 최소 기준인 OSHA 10시간 과정을 전 직원의 절반 이상이 이수하고, 관리자에게는 30시간의 심화 과정을 강제한다. 이는 단순히 자격증 취득을 위한 요식행위가 아니다.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안전 지능'을 상향 평준화시킨 것이다.

  • 자체 표준과 훈련 시설: 드릴링 작업은 지하 매설물과의 충돌 등 고도의 위험을 수반한다. 이들은 기존의 매뉴얼에 만족하지 않고, 자체 훈련 시설을 건립해 현장 맞춤형 안전 기준을 직접 설계했다. **'표준을 따르는 자'가 아닌 '표준을 만드는 자'**로서의 전문성이 사고율 제로의 비결이다.

  • 811 시스템과 선제적 탐지: 굴착 전 지하 매설물을 확인하는 절차를 강화하고, 작업 착수 최소 일주일 전 현장을 방문해 잠재적 위험을 데이터화한다. 이는 '사고 후 수습'이 아닌 '발생 가능성의 원천 차단'을 목적으로 한다.

3. 문화의 전이: 감시자에서 파트너로

사고의 징후를 찾아낸 직원을 영웅으로 대접할 때, 현장의 숨겨진 위험은 비로소 자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 건설 현장의 고질적인 문제는 '안전 관리자'와 '현장 노동자' 사이의 적대적 관계다. 관리자는 적발하려 하고, 노동자는 숨기려 한다. CJ Drilling은 이 구도를 **'굿 캐치(Good Catch) 프로그램'**을 통해 완전히 뒤집었다.

  • 위험의 공론화: 위험 요소를 발견하고 보고하는 행위를 '고발'이 아닌 '기여'로 정의한다. 이에 따른 보상 체계는 현장 구성원 모두를 안전 감시자로 변모시킨다.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1번의 대형 사고 뒤에는 300번의 사소한 징후가 존재한다. CJ Drilling은 이 300번의 징후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대형 사고의 뿌리를 뽑아버린 것이다.

  • 협력업체와의 동행: 최근 국내 중대재해의 80% 이상이 하청 업체에서 발생한다. CJ Drilling은 원청의 안전 체계가 아무리 견고해도 협력업체의 역량이 낮으면 무용지물임을 간파했다. 이들은 협력업체의 안전 역량 강화를 시혜적인 태도가 아닌, 공동의 생존 전략으로 채택했다.


왜 우리는 이렇게 경영하지 못했는가?

이제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한국의 경영자들은 CJ Drilling과 같은 길을 걷지 못하는가?

  1. 단기 성과주의의 함정: 분기별 실적과 가시적인 매출 성장에 매몰되어, 사고가 나지 않았을 때 얻는 '기회비용의 절감'을 과소평가한다.

  2. 안전의 외주화: 위험한 작업은 하청에 넘기면 그만이라는 후진적 인식이 법적 처벌보다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3. 전문성 결여: 안전 관리를 단순히 안전모 착용 여부를 확인하는 수준으로 격하시킨다. 안전은 공학적, 심리학적, 경영학적 전문 지식의 집약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CJ Drilling의 10년은 운이 좋아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철저한 계산과 고집스러운 원칙,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존중이 빚어낸 **'경영의 예술'**이다. "안전하게 일할 수 없다면, 그 일은 할 가치가 없다"는 이들의 명제는 대한민국 건설 경영자들이 책상 앞에 붙여놓아야 할 엄중한 경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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