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7일 토요일

유럽 분유 명가 60개국에서 리콜: 왜 세레울라이드인가

 

세레울라이드의 역설: 완벽이라는 성성(聖城)에 뚫린 미세한 균열, 그 심연의 기록

2026년 1월, 인류가 쌓아 올린 가장 견고한 바벨탑 중 하나인 '글로벌 식품 안전 시스템'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네슬레, 다논, 락탈리스. 이름만으로도 자본의 신뢰와 과학적 권위를 상징하는 이 거대 기업들이 전 세계 60개국에서 영유아용 분유를 거두어들였다. 발단은 '세레울라이드(Cereulide)'라 불리는 보이지 않는 독소였다. 이 작은 분자 화합물은 현대 과학이 자부해온 '통제된 완벽'이 얼마나 허약한 유리 성벽이었는지를 단숨에 폭로하며, 문명의 오만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들었다.

파편화된 전문성은 각자의 성벽을 쌓을 뿐, 그 성벽 사이의 '어두운 틈새'에서 자라나는 재앙을 보지 못한다.


1. 기술적 오만과 미생물의 처절한 응전 (The Hubris of Tech)

우리는 세계 최고의 석학들과 초정밀 센서, 그리고 실시간 데이터를 처리하는 AI 알고리즘이 우리 아이들의 식탁을 지키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시스템의 고도화가 곧 안전의 극대화'**라는 근대적 믿음이 치명적인 착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세레울라이드는 바실러스 세레우스(Bacillus cereus)균이 생존을 위해 내뱉는 독성 화합물이다.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도구적 이성의 역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간이 100°C 이상의 고온 살균과 강한 산성 처리를 통해 미생물을 박멸하려 할수록, 자연은 그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욱 견고한 내열성과 내산성을 갖춘 독소를 진화시킨다. 우리가 설계한 '완벽한 살균 공정'은 역설적으로 평범한 균들을 걸러내고, 오직 최강의 변종만이 살아남아 독소를 뿜어내도록 '선택적 압력'을 가한 셈이다. 인간의 통제가 강해질수록 자연의 반작용은 더욱 정교하고 치명적인 방식으로 변모한다.

2. 효율성이라는 신화, 그리고 파편화된 책임의 심리학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면, 이 사고는 현대 기업이 숭상하는 **'효율성'**이라는 집단적 최면의 비극적 결과물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린(Lean) 생산 방식'과 '공급망의 극단적 분절화'를 선택했다. 원료는 전 세계 수천 개의 목장에서 수집되어 수십 단계의 하청 구조를 거치며 농축되고 배합된다.

이 거대한 메커니즘 안에서 인간의 책임은 입자처럼 파편화된다. 미생물학자는 현미경 너머의 균을 보고, 엔지니어는 계기판의 수치를 읽으며, 경영자는 분기별 그래프의 곡선을 본다. 각자의 영역에서 석학들은 최선을 다했으나, **'전체로서의 생명'**을 조망하는 통합적 시선은 상실되었다. 누구도 악의를 품지 않았으나, 시스템 전체가 악한 결과를 초래하는 '평범성 속의 재앙'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벽 뒤에 숨어 있을 때, 세레울라이드는 그 전문가들 사이의 '연결 고리'라는 어두운 틈새에서 조용히 증식했다.

3. 리콜의 경제학: 상실을 통한 신뢰의 속죄

네슬레와 다논이 수조 원의 직접 손실을 감수하며 리콜을 결정한 것은 단순한 인도주의적 결단이 아니다. 그것은 **'신뢰라는 무형 자산'**을 보존하기 위한 처절한 경제적 생존 투쟁이다. 분유 시장은 단순한 소비 시장이 아니라 '생명 연장의 위탁'이 이루어지는 성소(Sanctuary)와 같다. 소비자, 특히 부모의 심리는 작은 오염에도 극도의 공포와 배신감을 느낀다.

전 세계 60개국에 배치된 '워룸(War Room)'과 24시간 가동되는 공장은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으려는 시지프스의 형벌을 연상케 한다. 기업들은 리콜을 통해 당장의 이익을 제물로 바치고, "우리는 오류를 범했으나 이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낸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이 막대한 리콜 비용은 신뢰를 다시 구매하기 위해 지불하는 가장 비싼 가격이자, 문명 사회와의 계약을 갱신하기 위한 '속죄의 제물'이다.

4. 확장된 사유: 시스템은 과연 완벽할 수 있는가?

우리는 더 강력한 검사 장비와 더 복잡한 매뉴얼을 도입하면 다음 재앙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역사는 증명한다. 시스템이 복잡해질수록 그 내부의 상호작용은 예측 불가능한 '정상 사고(Normal Accident)'의 확률을 높인다. 세레울라이드 사태는 단순히 유제품 업계의 불운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거대 기술 시스템이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취약성에 대한 경고다.

프랑스 검찰의 수사와 기업의 사후 조치는 현상적인 치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진정한 해결은 우리가 '완벽'이라는 오만을 내려놓고,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인정하는 겸손에서 시작된다. 과학적 데이터가 안전을 보장한다고 맹신하기보다, 데이터 너머의 불확실성을 상시로 응시하는 '비판적 감각'이 회복되어야 한다.


맺음말: 성성(聖城)의 균열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세레울라이드라는 작은 독소가 전 세계를 뒤흔든 이 사건은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기술로 모든 공포를 지울 수 있는가? 아니면 완벽을 향한 갈망 자체가 새로운 공포를 잉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에세이는 단순한 리콜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이 쌓아 올린 견고한 시스템 속에 가려진 '생명의 가치'와 '윤리적 책임'을 다시금 일깨우는 비망록이다. 가장 정교한 알고리즘조차 한 줌의 독소 앞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기계적 안전'을 넘어선 '인간적 신뢰'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추천 게시물

처벌의 공포를 넘어, '안전 경영'이라는 실존적 선택

  쇳물과 서류 사이, 경영자라는 이름의 형벌과 책임 제조업의 현장은 거대한 기계음과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생존의 최전선이다. 그곳에서 경영자는 자본의 흐름을 조율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설계자이자, 동시에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한 거대한 안전망의 ...

가장 많이 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