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6일 월요일

경영의 실존, '시간'이라는 파도 위에서 중심을 잡는 법


경영은 흔히 효율과 성과의 숫자로 치환되지만, 그 심연에는 지독한 철학적 질문이 숨어 있다. 비즈니스 연속성 계획(BCP)을 도입한다는 것은 단순한 재해 복구 시스템의 구축을 넘어, 기업이라는 유기체가 **'유한함(Finitude)'**과 **'불확실성(Uncertainty)'**이라는 존재론적 불안을 어떻게 대면하느냐에 대한 응답이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위기는 잠식당하는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이지만, 준비된 자에게 위기는 도약의 기회를 포착하는 '카이로스(Kairos)'의 찰나이다.

1. 카이로스(Kairos)와 크로노스(Chronos): 시간의 주인이 되는 법

헬라어에서 시간은 두 가지 층위로 나뉜다. 속절없이 흐르는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와, 운명적인 결정과 의미가 발생하는 찰나의 시간인 **'카이로스'**다.

BCP가 부재한 기업의 위기는 '크로노스'에 잠식당한다. 수습되지 않는 사고 현장에서 시계바늘이 한 칸씩 이동할 때마다 기업의 자산과 신뢰는 증발하며, 이는 곧 파멸로 향하는 잔인한 카운트다운이 된다. 반면, BCP를 갖춘 기업은 위기의 순간을 '카이로스'로 전환한다. 준비된 시나리오가 작동하는 그 찰나, 혼돈은 질서로 치환되며 기업은 비로소 자신의 생존 의지를 시장에 증명한다. 시간에 쫓기는 자와 시간을 다스리는 자의 차이는 바로 이 '준비된 찰나'에서 갈린다.

2. 하이데거의 '염려(Sorge)'와 경영의 책임론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의 존재 양식을 **'염려(Care)'**라고 정의했다. 이는 단순한 심리적 불안이 아니라, 미래를 현재로 끌어와 미리 내다보고 준비하는 실존적 태도다.

경영에서의 BCP는 바로 이 '염려'의 제도적 구현이다. 리스크를 외면하는 기업은 '비본래적 실존'에 머물며 타성이 주는 가짜 안도감에 속는다. "우리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오만은 실존적 방기다. 그러나 BCP를 도입한 기업은 최악의 상황(기업의 죽음 또는 파산)을 **'선취(Anticipation)'**함으로써, 역설적으로 현재의 운영을 더욱 단단하고 자유롭게 만든다. 죽음을 기억하는 자(Memento Mori)가 삶에 충실하듯, 위기를 기억하는 기업만이 지속 가능하다.

3. 구조가 자유를 만든다 (Structure as Freedom)

아이러니하게도 엄격하게 짜인 대응 매뉴얼(BCP)은 극도의 혼란 속에서 조직에게 가장 큰 **'자유'**를 선사한다. 이는 칸트가 말한 '법칙을 따름으로써 얻는 자유'와 맥을 같이 한다.

  • 매뉴얼이 없는 조직: 재난이 닥치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느라 공포에 속박된다. 모든 의사결정이 마비되고 에너지는 내부 갈등과 책임 전가에 소모된다.

  • 매뉴얼이 있는 조직: '무엇(What)'을 할지 이미 알고 있기에, 현장의 가변적인 상황에 맞춰 '어떻게(How)' 더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돌파할지에 모든 지적·물적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

결국 BCP는 창의성을 억압하는 딱딱한 규칙이 아니라, 거친 풍랑 속에서도 배가 전복되지 않도록 깊은 곳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평형수(Ballast)'**와 같다. 규격화된 시스템이 존재할 때 비로소 인간의 판단력은 가장 고차원적인 곳에 쓰일 수 있다.

4. 니체의 '아모르 파티(Amor Fati)'와 회복 탄력성

니체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고 말했다. 기업에 있어 운명이란 통제할 수 없는 시장의 변화와 예기치 못한 재난을 포함한다. BCP는 리스크를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오만이 아니라,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다시 일어서겠다는 **'운명에 대한 긍정'**이다.

회복력(Resilience)은 충격을 전혀 받지 않는 강철 같은 단단함이 아니다. 그것은 거센 압력에 잠시 휘어질지언정, 다시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오는 유연하고 강인한 복원력이다. BCP를 도입하지 못한 기업은 충격에 깨지는 유리잔과 같으나, 도입한 기업은 충격을 흡수하고 다시 튀어 오르는 고무공과 같은 생명력을 얻는다.

결론: 회복력은 기술이 아닌 '철학'의 문제다

BCP 도입 기업과 미도입 기업의 차이는 단순히 자본의 크기나 IT 기술력의 격차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겸손한 인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다시 연결되어 계속하겠다'**는 숭고한 책임 의지의 차이다.

기업은 사회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일부다. 따라서 비즈니스의 연속성을 지키는 것은 주주의 이익을 넘어, 그 기업에 기대를 걸고 있는 수많은 생계와 가치를 지키는 도덕적 의무이기도 하다. 당신의 기업은 지금 어떤 철학 위에 서 있는가?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에 몸을 맡긴 채 요행을 바라고 있는가, 아니면 다가올 카이로스를 맞이할 실존적 무장을 마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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