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기업, KBR에서 배우는 안전 경영의 본질
안전 관리를 단순한 규정 준수의 문제로 바라보는 기업이 여전히 많다. 하지만 세계에는 안전을 조직의 DNA로 내재화하여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기업들이 존재한다. 오늘은 그러한 성공 스토리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미국의 권위 있는 산업 안전 전문 미디어 EHS Today가 선정한 '2025년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기업', 바로 KBR의 이야기다.
KBR의 안전 경영, 무엇이 다른가
KBR의 안전 철학은 한 마디로 "Zero Harm(제로 하름)", 즉 어떠한 사고도, 어떠한 피해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절대적 원칙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 원칙이 단순한 슬로건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이를 실제 행동과 시스템으로 구현하는 촘촘한 구조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1. Zero Harm Absolutes — 타협 없는 절대 기준
KBR은 전 세계 모든 프로젝트와 사업장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비타협적 안전 기준을 운영한다. 직원은 물론 하청업체까지 예외 없이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며, 안전 행동의 범위는 업무 현장을 넘어 가정과 여가 생활로까지 확장된다. 안전을 '지켜야 할 규칙'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의 정체성'으로 내재화하는 것, 이것이 KBR 안전 문화의 출발점이다.
2. MyKey — 누구나 행사할 수 있는 작업 중지 권한
KBR의 MyKey 프로그램은 직급이나 역할에 관계없이 모든 구성원에게 **작업 중지 권한(Stop Work Authority, SWA)**을 부여한다. 현장에서 위험이 충분히 통제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는 순간, 누구든 즉시 작업을 멈출 수 있다. 안전의 책임이 관리자에게 집중되지 않고 조직 전체에 분산되는 구조다.
3. Courage to Care — 돌봄 기반의 피드백 문화
동료의 위험한 행동을 목격했을 때, 이를 처벌이나 신고의 문제가 아닌 돌봄과 대화로 해결하는 문화가 KBR에는 자리 잡고 있다. Courage to Care 프로그램은 구성원 간 안전 피드백을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으로 만들어, 안전 행동이 사회적으로 강화되는 메커니즘을 제공한다.
4. 모든 사고·근접사고의 필수 조사
KBR은 크고 작은 모든 사고와 아차사고(Near Miss)에 대해 예외 없이 근본 원인 분석을 실시한다. 작은 징후도 학습의 기회로 삼는 이 선제적 접근은 사고 예방 문화를 조직 깊숙이 뿌리내리게 한다.
5. Safety Energy Program — 선도 지표 기반의 안전관리
KBR은 단순히 사고율(후행 지표)을 관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Safety Energy Program을 통해 모든 프로젝트의 안전 활동을 정량화하고, 행동·참여·리스크 관리 수준을 반영한 안전 에너지 지수를 선도 지표로 활용한다. 지수가 높을수록 실제 사고 감소와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것이 데이터로 검증되었다.
6. TSTI — 전 직군을 아우르는 사전 위험 분석
**Total Safe Task Instruction(TSTI)**은 비일상적 작업이나 현장 업무 수행 전 반드시 실시하는 사전 위험 분석 절차다. 주목할 점은 현장직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무직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안전의 일관성을 조직 전체에 관철시키는 KBR의 철학이 여기에 담겨 있다.
7. Keys 프로그램 — 삶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안전 가이드
사무실, 현장, 재택근무, 정신건강에 이르기까지 직원이 마주하는 다양한 위험 상황에 대한 통합 안전 가이드를 Keys 프로그램으로 제공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안전이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포괄적 접근이다.
8. All In — 직원이 주도하는 안전·사회공헌 커뮤니티
All In 프로그램은 직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이끄는 안전 및 지역사회 활동 플랫폼이다. 참여 기반의 안전 문화는 조직 내 자발적 동기를 높이고, 안전을 '위에서 강요받는 것'이 아닌 '스스로 선택하는 가치'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9. ESG와 통합된 안전 전략
KBR은 안전을 단독 영역으로 분리하지 않는다. People, Planet, Governance의 세 축으로 구성된 지속가능성 전략 안에 안전을 통합하고,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연계한 10대 Zero Harm Pillars로 장기 목표를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안전이 곧 ESG의 핵심 가치임을 조직 전략으로 선명하게 천명하는 것이다.
한국 기업에 던지는 메시지
KBR의 사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 조직에서 안전은 무엇인가?"
여전히 많은 한국 기업에서 안전은 감독기관의 점검을 앞두고 점검표를 채우는 행위, 혹은 사고 발생 후 재발 방지 대책을 보고하는 행위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KBR의 성공은 명확하게 보여준다. 안전은 규정 준수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문화의 문제이며, 관리자만의 책임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공유하는 가치여야 한다는 것을.
특히 주목해야 할 세 가지 전환점이 있다.
첫째, 후행 지표에서 선행 지표로의 전환이다. 사고율 집계에 머무르지 않고, 안전 행동과 참여 수준을 선제적으로 측정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둘째, 관리자 중심에서 전 구성원 중심으로의 전환이다. 작업 중지 권한이 모든 직원에게 실질적으로 보장될 때, 현장의 위험은 훨씬 빠르게 차단된다.
셋째, 안전과 ESG의 통합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ESG 경영이 기업 신뢰도와 직결되는 시대, 안전을 ESG 전략의 핵심 축으로 통합하는 시각의 전환이 요구된다.
KBR의 2025년 수상은 단지 한 기업의 성취가 아니다. 이는 안전을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조직이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기준점이다. 한국의 기업들이 이 기준점을 참조하여, 진정한 의미의 안전 경영을 구현해나가기를 기대한다.
참고: EHS Today, "America's Safest Companies 2025: KBR", Dave Blanch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