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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8일 수요일

경영자의 펜은 가족의 운명을 쓴다

 

잉크의 고해(苦解) : 시장의 심연에서 가족의 성소까지, 경영자라는 실존적 항해

경영자의 집무실은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폭풍의 눈이다. 통유리창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불빛은 저마다의 생존을 위해 명멸하는 개별적 단독자들의 군집이다. 그 불빛들을 응시하며 경영자는 매일 밤 자문한다. "나의 결단은 저 불빛들을 선하게 비추는 등대인가, 아니면 그들의 기름을 앗아가는 차가운 약탈인가." 설탕 3사의 담합이라는 세속적 몰락은 단순한 법적 위반을 넘어, 경영이라는 숭고한 소명이 탐욕의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궤도를 이탈할 때 어떤 파국이 도래하는지를 보여주는 시대적 비극이다.


1. 존재의 수직적 고독과 횡적 연대

경영자는 조직의 정점에서 '수직적 고독'을 감내하는 자다. 모든 정보는 그에게로 수렴되지만, 책임의 무게는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 이 고독의 하중을 견디지 못할 때, 인간은 비겁한 '횡적 연대'의 유혹에 빠진다. 그것이 바로 카르텔이다. 경쟁자라는 타자(Other)를 동반자로 위장하여 시장의 불확실성을 거세하고, 인위적인 낙원을 구축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카르텔의 골방에서 오가는 악수에는 체온이 없다. 그것은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눈 채 맺는 불안한 계약이며, 언젠가 리니언시(Leniency)라는 배신의 문을 통해 가장 먼저 빠져나가려는 자들의 비루한 공모일 뿐이다. 진정한 경영자는 시장의 파도를 회피하기 위해 담을 쌓는 자가 아니라, 그 파도 위에서 도덕이라는 키를 쥐고 정면으로 맞서는 자다. 도덕적 고립은 일시적이나, 비윤리적 연대는 영구적인 파멸의 서막이다.

2. 시장이라는 거대한 생명체와 경영자의 사제적 소명

시장은 단순한 거래의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수억 명의 욕망과 필요가 얽혀 돌아가는 거대한 생명체이자, 보이지 않는 정의의 원리가 작동하는 현대의 성전(聖殿)이다. 경영자는 그 성전의 질서를 관리하도록 위임받은 '경제적 사제'와 같다. 설탕과 같은 기초 식품의 가격을 담합하는 행위는 이 성전의 성배에 오물을 던지는 행위다.

경영자의 사유는 '이윤'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가치'라는 광활한 대지로 뻗어 나가야 한다. 내가 올린 10원의 이익이 누군가에게는 아이의 생일 케이크를 포기하게 하는 눈물이 될 수 있음을 직시할 때, 경영자의 펜은 비로소 겸허해진다. 타자의 얼굴을 지운 숫자는 폭력이다. 경영자의 진정한 업적은 재무제표의 흑자가 아니라, 그 기업이 존재함으로 인해 세상의 결핍이 얼마나 메워졌는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3. 영겁회귀(永劫回歸)의 형벌 : 반복되는 죄와 명예의 소멸

설탕 3사의 담합이 더욱 비극적인 이유는 그것이 과거의 잘못을 반복한 '습관적 죄악'이라는 데 있다. 니체가 말한 영겁회귀처럼, 인간이 자신의 과오에서 배우지 못하고 동일한 비극을 반복한다면 그것은 존재론적 사형 선고와 다름없다. 명예는 쌓기는 어려우나 무너지는 것은 찰나다. 2007년의 얼룩을 닦아내지 못하고 2026년에 다시금 오명을 남긴 경영자들에게 남은 것은 '탐욕의 화신'이라는 차가운 박명(薄銘)뿐이다.

역사는 경영자의 이름을 기억할 때 그의 연봉이나 점유율을 묻지 않는다. 그가 위기의 순간에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버렸는지를 묻는다. 사후(死後)의 명예를 사유하지 않는 경영자는 현재를 도둑질하는 자다. 미래 세대가 당신의 기업 이름을 들었을 때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없다면, 당신은 그들에게 부(富)가 아닌 빚을 물려주는 셈이다.

4. 마지막 보루 : 가족의 이름으로 행하는 속죄

이제 경영자의 사유는 가장 낮고 깊은 곳, '가족'이라는 근원적 제단으로 향한다. 우리는 왜 일하는가? 왜 그토록 치열하게 정상을 향해 오르는가? 결국 내 삶의 가장 소중한 목격자인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담합의 손길은 기업을 구원하는 악수처럼 다가오나, 결국 내 가족의 평화를 앗아가는 수갑으로 돌아온다.

임원이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 숨겨진 '가장'이라는 직함의 무게를 복기하라. 당신이 담합의 서류에 서명하는 그 순간, 당신은 가족의 평화를 담보로 악마와 계약하는 것이다. 검찰의 조사실 차가운 의자에 앉아 배우자의 눈물과 자녀의 상처 입은 등 뒤를 떠올리는 것은 너무 늦은 후회다. "나의 성공이 내 아이의 고개를 숙이게 한다면, 그 성공은 가장 처참한 실패다." 이 단순한 진리가 경영자가 마주해야 할 최후의 윤리적 거울이다.


결어 : 인간의 얼굴을 한 경영을 위하여

경영자의 길은 결국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다. 숫자의 안개 속에서 인간의 얼굴을 찾아내고, 이윤의 갈증 속에서 도덕의 샘물을 길어 올리는 고귀한 노동이다.

깊고 넓은 사유를 가진 경영자여, 그대의 책상 위에 놓인 것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삶과 그대 가족의 영혼임을 잊지 마라. 서명하는 손이 떨린다면, 그것은 당신의 양심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 떨림을 믿고 유혹의 심연을 건너라. 시장의 정의를 지키고 가족의 성소를 수호하는 것, 그것이 이 시대가 경영자라는 단독자에게 부여한 가장 준엄한 명령이자, 당신이 남길 수 있는 유일하고도 영원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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