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7일 수요일

아틀라스의 직립, 노동의 '사건'에서 '현상'으로

 

강철의 골격이 묻는 존재의 의미: 아틀라스와 울산의 겨울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2세대 아틀라스가 관절을 꺾으며 일어설 때, 그것은 단순한 기계적 기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수만 년간 점유해 온 '직립(直立)'과 '보행'이라는 신성한 영토에 대한 무기질의 선전포고였다.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의 박동 소리에 생을 의탁해 온 이들의 80%가 느끼는 불안은 단순한 생계의 위협을 넘어선다. 그것은 **'기계가 나를 닮아갈 때, 나는 무엇으로 남는가'**에 대한 존재론적 공포다.

망치가 손의 연장이기를 그치고 스스로 휘둘러지기 시작할 때, 주인은 도구를 잃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할'을 잃는다. 울산의 불안은 일자리의 상실이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던 주체로서의 감각이 거세되는 데서 오는 실존적 진통이다.

1. 차가운 유연함, 뜨거운 소외

새로운 아틀라스는 인간의 가동 범위를 비웃듯 회전한다.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그 움직임 속에는 피로도, 망설임도, 숙련을 위한 눈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울산의 노동자들이 응시하는 것은 단순히 일자리를 뺏는 기계가 아니라, **'완벽하게 효율적인 타자(他者)'**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노동(Labor)을 생존을 위한 고통스러운 필연성이라 정의했다. 그러나 현대의 공장에서 노동은 곧 사회적 실존의 증명이었다. 기름때 묻은 작업복은 한 가정의 자부심이었고, 거친 손마디는 산업화의 훈장이었다. 이제 아틀라스의 매끄러운 티타늄 외피는 그 훈장들을 '비효율의 흔적'으로 치환한다. 인간이 기계를 닮으려 애썼던 테일러리즘의 시대가 가고, 기계가 인간을 초월하는 포스트-휴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2. 효율이라는 이름의 신성모독

울산 공장 근로자들의 불안은 경제적 지표로 환산할 수 없는 심연을 품고 있다. 80%라는 숫자는 곧 '대체 가능성'에 대한 자각이다. 자본의 논리는 명쾌하다. 로봇은 파업하지 않으며, 잠들지 않고,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물어야 한다. 효율이 지고의 가치가 된 공장에서, 인간의 '서툼'과 '변수'는 제거되어야 할 불순물인가? 아틀라스가 백플립을 성공시킬 때 우리가 느끼는 경탄의 이면에는, 정작 그 기술을 만든 인간이 소외되는 역설이 자리한다. 인간은 자신의 형상을 본뜬 피조물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며, 스스로를 '비싼 부품'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3. 직립(直立)의 재해석: 도구에서 목적으로

결국 아틀라스는 우리에게 실직의 위협을 넘어, 노동의 해방인가 혹은 인간의 폐기인가라는 양날의 질문을 던진다. 만약 인간이 오직 '생산하는 도구'로서만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면, 우리는 결코 강철의 아틀라스를 이길 수 없다.

그러나 노동의 본질이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동료와의 유대, 가족을 부양하는 숭고한 책임, 그리고 무언가를 완성했을 때 느끼는 자아의 확장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울산의 노동자들이 지켜내야 할 것은 단순한 공정 라인이 아니라, 기계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삶을 향한 의지' 그 자체여야 한다.

결론: 아틀라스의 어깨 위에 놓인 것들

그리스 신화 속 아틀라스는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았다. 현대의 아틀라스는 인간의 고단한 노동을 대신 짊어지겠노라 유혹한다. 그 어깨 위에는 유토피아적 안식과 디스토피아적 소외가 동시에 놓여 있다.

인간은 실직할 것인가? 육체적 기능으로서의 노동은 사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계가 목적이 되고 인간이 수단이 되는 전도된 세계를 거부하는 한, 인간의 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틀라스가 아무리 유연하게 움직인들, 그 동작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고 고뇌하는 것은 오직 울산의 찬 바람을 견디며 퇴근길을 서두르는 인간의 몫이기 때문이다.

기계의 시대,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로봇보다 빠른 손놀림이 아니라, **기계가 가질 수 없는 '결함 있는 고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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