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2일 금요일

악마는 잠들지 않는다 — 줄리엣 카이엠의 위기관리 철학



완벽한 예방의 환상을 버리고, 복원력의 현실을 선택하는 것 — 그것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경영하는 자의 진짜 책임이다.


줄리엣 카이엠은 누구인가

줄리엣 카이엠(Juliette Kayyem)은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이자 미국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토안보부 차관보를 역임한 위기관리 전문가다. 테러리즘, 재난 대응, 국가 안보 분야에서 실무와 학문을 동시에 경험한 몇 안 되는 인물로, CNN 안보 분석가로도 활동하며 대중과 소통해왔다.

그녀의 이력에서 눈여겨볼 점은 단순한 이론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2010년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 9·11 이후 미국 본토 안보 재편 등 실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의사결정의 최전선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 경험이 이 책의 밑바탕을 이룬다.


"언제"의 문제로 재난을 바라보라

《악마는 잠들지 않는다(The Devil Never Sleeps)》의 핵심 명제는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재난은 막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회복하느냐다.

카이엠은 우리가 오랫동안 재난을 "만약(if) 발생한다면"의 문제로 인식해왔다고 지적한다. 예방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예방에 실패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는 취약한 구조다. 그녀는 이 인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재난은 "언제(when) 발생하는가"의 문제다.

이 전환은 단순한 표현의 차이가 아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예방 중심 사고는 완벽한 방어를 전제로 한다. 한 곳이 뚫리면 전체가 붕괴한다. 반면 복원력(Resilience) 중심 사고는 불완전한 현실을 전제로 한다. 일부가 무너져도 전체는 살아남고, 빠르게 재건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한다.

책은 이를 위한 구체적 원칙들을 제시한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사전 설계, 위기 발생 시 신속한 대응 체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 회복의 속도와 방향을 결정하는 리더십의 역할.


사유하기

1. 완벽한 예방이라는 환상을 버려라

많은 기업이 위기관리를 "위기가 오지 않도록 막는 것"으로 정의한다.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고, 컴플라이언스를 강화하고, 리스크 매트릭스를 정교하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이 가치 있는 활동이지만, 여기에만 집중하는 조직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현실의 위기는 예측의 바깥에서 온다.

코로나19는 팬데믹 매뉴얼이 있던 조직도, 없던 조직도 동시에 덮쳤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 핵심 인재의 갑작스러운 이탈, 주력 시장의 규제 변화 — 이것들은 예방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경영자가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이 위기가 왔을 때, 우리 조직은 얼마나 빨리 일어설 수 있는가?"

2. 복원력은 전략이 아니라 구조다

카이엠이 강조하는 복원력(Resilience)은 단순한 위기 대응 매뉴얼이 아니다. 조직의 DNA에 내재된 구조적 특성이다.

경영적으로 번역하면 이렇다.

복원력 있는 조직은 의사결정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는다. 핵심 프로세스가 특정 개인이나 단일 채널에 의존하지 않는다. 위기 상황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최소 기능 단위가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패를 빠르게 인정하고 방향을 전환하는 문화가 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 발화 사태 때 신속하게 전 세계 리콜을 결정한 것, 존슨앤드존슨이 1982년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에서 즉각 제품을 수거한 것 — 이 사례들이 오래도록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히 "잘 대응해서"가 아니다. 그 조직들이 복원력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그 결정이 가능했다.

3. "언제"를 상정한 경영 시나리오를 설계하라

카이엠의 논리를 경영 현장에 직접 적용하면, 시나리오 플래닝의 방식이 달라진다.

기존의 시나리오 플래닝은 종종 낙관, 중립, 비관의 세 가지 미래를 그린다. 그런데 이 방식의 함정은 "비관 시나리오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는 점이다.

카이엠의 방식은 다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반드시 온다는 전제 아래, 그때 우리는 무엇을 어떤 순서로 해야 하는가를 미리 결정해두는 것이다. 위기가 닥쳤을 때 처음으로 논의를 시작하는 조직과, 이미 답을 가지고 실행만 하면 되는 조직의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전환 훨씬 이전부터 DVD 사업의 소멸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그때 우리는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를 준비했다. 이것이 "언제"를 상정한 경영이다.

4. 리더는 완벽한 정보를 기다리지 않는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통찰 중 하나는 위기 상황에서의 리더십에 관한 것이다. 카이엠은 위기 대응의 최대 적은 "더 많은 정보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재난 현장에서, 그리고 경영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정보는 오지 않는다. 정보가 완벽해질 때쯤이면 이미 골든타임이 지나있다.

훌륭한 위기 리더는 70%의 정보로 결정을 내린다.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정하고, 피드백을 받아 빠르게 수정한다. 이것이 카이엠이 말하는 "복원력 있는 의사결정"이다.

이는 실리콘밸리의 "Move fast and break things"와 비슷해 보이지만 본질이 다르다. 무모하게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인정한 위에서 책임 있게 행동하는 것이다.

5. 위기 이후의 서사를 준비하라

카이엠이 책의 후반부에서 강조하는 것이 있다. 위기 이후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즉 회복의 서사(Narrative of Recovery)다.

경영적으로 이것은 단순한 홍보(PR) 전략이 아니다. 조직 내부 구성원에게, 고객에게, 투자자에게 — "우리는 이 위기를 통해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를 겪은 조직이 오히려 더 강해지는 경우가 있다. 반드시 기술적 우위나 자본력 때문만은 아니다. 위기 이후의 서사를 잘 설계하고, 그것을 실제 행동으로 뒷받침한 조직들이다.


마치며

《악마는 잠들지 않는다》는 재난 전문가가 쓴 책이지만, 그 메시지는 경영자에게 더 절실하게 읽힌다.

악마는 잠들지 않는다. 위기는 반드시 온다. 그렇다면 경영자가 해야 할 일은 위기를 막는 것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 아니라, 위기가 왔을 때 흔들리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완벽한 예방의 환상을 버리고, 복원력의 현실을 선택하는 것 — 그것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경영하는 자의 진짜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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