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3일 금요일

CEO의 말이 조직을 움직이는 알고리즘이 될 때

기업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5년을 일해온 더심플렉시티 김지은 대표가 DBR(동아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글이 주목할 만한 시각을 제시한다. 제목은 「CEO 메시지, 목표 상충하거나 모호해선 안 돼」. 글의 핵심 주장은 단순하지만 날카롭다. CEO의 언어는 구호가 아니라 의사결정의 알고리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 알고리즘이 된다는 것의 의미

우리는 흔히 리더십을 비전과 방향성의 문제로 이해한다. 그러나 김지은 대표는 그 비전이 구성원에게 어떤 언어로 전달되는가에 주목한다. 구성원이 매 순간 CEO에게 확인을 요청하지 않고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 조직은 CEO의 메시지를 내재화한 것이다. 반대로 구성원이 같은 상황에서 제각각 다른 판단을 내린다면, 리더의 메시지가 '구호'에 머물고 있다는 신호다.

조직의 실행력은 결국 해석의 일관성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해석의 일관성은 언어의 명확성에서 온다.

상충하는 목표가 조직을 마비시킨다

이 글에서 가장 실용적인 통찰 중 하나는 목표 충돌의 위험성에 관한 것이다. 많은 CEO들이 "성장을 추구하되 수익성도 지켜라"는 식의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한다. 언뜻 균형 잡혀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 이 두 기준이 충돌하는 순간—예산 배분, 신사업 투자, 인력 결정—구성원은 선택 기준이 없어 결정을 미루거나 책임을 회피하게 된다.

GE가 FastWorks 방법론을 도입할 당시, 기존의 품질 기준과 새로운 속도 중심 기준이 현장에서 충돌했다. 이때 어떤 기준이 우선하는지 명시되지 않으면 조직은 갈등하다 멈춘다. 우선순위의 명시는 선택이 아니라 리더의 책임이다.

'고해상도 언어'라는 개념

김지은 대표가 제안하는 핵심 개념은 '고해상도 언어'다. "강화하겠습니다", "혁신을 추진하겠습니다", "적극 검토하겠습니다"—이 단어들은 서로 다른 사람이 읽으면 서로 다른 행동을 유발한다. 그것은 언어가 아니라 소음이다.

반면 "이 항목은 다음 분기 예산에서 제외한다", "24시간 내 초안을 제출한다", "A안을 중단하고 B안으로 전환한다"는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구체성은 마이크로매니징이 아니다. 결과의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아마존이 파워포인트 대신 6페이지 분량의 서술형 내러티브 메모를 회의 문화로 채택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 있다. 불릿 포인트는 생략을 허용하지만, 완전한 문장은 사고의 허점을 드러낸다. 언어의 해상도를 조직 문화로 제도화한 사례다.

3문장으로 설계하는 위기 메시지

기고문은 위기 상황에서 즉각 활용 가능한 메시지 구조도 제안한다. 이른바 '3문장 원칙'이다.

첫째, 현재 판단—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무엇인가. 둘째, 선택 기준—가치가 충돌할 때 무엇을 우선하고 무엇을 내려놓는가. 셋째, 다음 행동—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하는가.

버진애틀랜틱은 코로나19 초기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이 구조에 가까운 방식으로 직원들과 소통했다. 감정적 호소보다 판단 근거와 다음 행동을 명확히 전달한 커뮤니케이션이 신뢰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CEO 메시지를 점검하는 5가지 질문

김지은 대표는 자신의 메시지가 기준인지 슬로건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점검 항목도 제시한다.

이 메시지는 무엇을 하지 않을지 명시하는가. 충돌 상황에서 선택 기준이 있는가. 측정 가능한 동사와 기한이 포함되어 있는가. 책임 주체가 분명한가. 대상, 주체, 기한이 한 문장으로 압축되는가.

이 다섯 질문에 명확히 답할 수 없다면, 그 메시지는 실행의 도구가 아닌 장식에 가깝다.

에델만, 케첨, 월트디즈니, SC제일은행을 거쳐 현재 더심플렉시티를 운영하며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커뮤니케이션을 설계해온 김지은 대표의 이번 기고는, 리더십을 언어의 문제로 환원하는 드문 시도다. 전략이 아무리 정교해도 그것이 구성원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으면 실행은 일어나지 않는다. CEO의 말이 조직의 알고리즘이 되는 순간, 리더는 비로소 자리를 비워도 되는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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