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0일 월요일

윤영미 하이랜드푸드그룹 회장: 한국 식탁 주권을 지키는 여성 창업가

그는 누구인가

한국인의 밥상이 바뀌었다. 쌀 소비량이 줄고 육류 소비가 그 자리를 대신한 지 오래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먹는 고기가 어디서 오는지, 어떤 경로로 식탁에 오르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윤영미 하이랜드푸드그룹 회장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공급망'을 20년 넘게 직접 설계하고 운영해온 인물이다.

1999년 창업 이후 하이랜드푸드그룹은 국내 수입육 시장 점유율 약 13%로 업계 1위에 오른 기업이다. 연 매출 1조 2000억 원, 글로벌 20여 개국에서 연 15만 톤의 육류를 수입해 국내 1,700여 개 고객사에 공급한다. 숫자만 보면 대형 유통 기업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이 기업의 시작은 단돈 20만 달러를 빌려 문을 연 작은 무역회사였다.

2024년에는 한국수입협회 첫 여성 회장으로 취임하며 업계 전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까지 맡게 됐다. 57세의 나이에 그녀가 여전히 현장을 뛰는 이유는 단순하다. 공급망은 서류 위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목장과 도축장과 물류창고 현장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창업의 동기와 배경, 그리고 도전 스토리

윤영미 회장은 1990년대 초 무역학을 전공했다. 당시 여성이 무역 실무에 뛰어드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입사 후 매달 해외 출장을 다니며 글로벌 거래의 실전 감각을 쌓았다. 숫자와 계약서보다 사람과 현장을 먼저 보는 습관이 이 시절에 만들어졌다.

전환점은 IMF 외환위기 이후 찾아왔다. 함께 일하던 캐나다 파트너사로부터 독립을 제안받았고,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20만 달러를 차입해 1999년 하이랜드푸드를 설립했다. 막막한 출발이었지만, 그녀에게는 하나의 무기가 있었다. 해외 공급업체와 직접 신뢰를 쌓아온 네트워크였다.

그러나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2002년 임신으로 인한 공백과 관리 부재로 회사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이때 그녀가 선택한 해법은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거나 투자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 핵심 사업을 가족이 직접 관리하는 체제로 전환하며 조직을 다시 다졌다. 위기를 외부에서 돌파하지 않고, 내부의 밀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넘긴 것이다.

이후 하이랜드푸드는 단순 수입 중개를 넘어 가공·물류·온라인몰·수출을 아우르는 통합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2023년 부산에 수입부터 통관, 보관, 가공, 배송까지 한 곳에서 처리하는 대형 센터를 완공했고, 2028년에는 이천 메트로센터 완공을 앞두고 있다. 해외에서 들여온 원료육을 한국에서 가공해 다시 해외로 보내는 역수출 모델도 추진 중이다. 공급망의 방향이 단방향이 아니라 양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2023년부터 2024년에는 마진율 하락과 적자라는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그녀는 2025년을 '리셋의 해'로 선언했다. 새로운 전략을 추가하는 대신, 업무 원칙 '하이파이브(Hi Five)'를 재정비하고 일의 질과 집중도를 다시 세웠다. 위기 때마다 반복되는 그녀의 선택은 언제나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경영 철학

그녀의 경영 철학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기본으로 돌아가고, 사람을 먼저 읽어라."

협상 테이블에서 그녀는 먼저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요즘 어떤 상품을 팔고 싶으세요?" 상대의 필요를 파악하는 것이 협상의 시작이라는 생각에서다. 공급자가 팔고 싶은 것과 한국 시장이 필요로 하는 것을 연결하면, 가격 흥정보다 훨씬 강한 협력 구조가 만들어진다. 샤부샤부용 소고기의 가공 방식을 해외 공급사에 직접 제안해 비용을 함께 절감한 사례는 이 철학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기술과 시스템에 대한 시각도 독특하다. 그녀는 IT를 효율 극대화의 수단이 아니라 직원의 불행 요소를 제거하는 도구로 본다. 반복적인 업무, 비효율적인 공정을 기술로 없애고, 사람이 사람다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회사는 직원이 꿈을 이루는 도구가 돼야 한다"는 말에 그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장 큰 그림에서 그녀는 하이랜드푸드를 브라질의 JBS처럼 글로벌 단백질 공급망을 책임지는 기업으로 키우고자 한다. 육류 공급망은 환율, 운임, 기후 같은 외부 변수에 끊임없이 흔들린다. 이 변동성을 흡수하는 '완충지대'를 민간 기업이 구축하는 것이 곧 국민 식탁 물가를 지키는 사회적 방어기제라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공급망 주권을 국가 정책에만 맡기지 않고, 민간 네트워크로 보완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울림

수십 년간 위기를 반복하며 그녀가 얻은 결론은 복잡하지 않다. 특별한 전략보다 기본이 먼저라는 것이다.

성장기에 조직이 방향을 잃을 때, 새로운 무언가를 추가하는 것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되묻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녀가 위기마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를 반복하는 이유다. 원칙 없는 확장은 결국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다.

협상과 관계에서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상대보다 먼저 말하고 싶은 욕구를 내려놓는 것,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먼저 듣는 것. 이것이 장기적인 신뢰 관계의 출발점이다. 가격으로 맺어진 관계는 더 좋은 가격이 나오면 끊어지지만, 신뢰로 맺어진 관계는 위기에서도 유지된다.

마지막으로, 규모나 자본보다 현장에서 얻는 감각이 더 오래가는 자산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20년이 지나도 목장과 도축장을 직접 방문하는 이유는 그 현장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는 과거를 보여주지만, 현장은 미래의 변화를 먼저 감지한다.

윤영미 회장은 지금도 현장에 있다. 그것이 그녀의 가장 큰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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