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7일 금요일

2025 에델만 트러스트 바로미터: 브랜드 신뢰의 새로운 지형

브랜드 신뢰, '우리'에서 '나'로 — 대한민국 에디션


에델만(Edelman)이 매년 발표하는 트러스트 바로미터는 단순한 여론조사가 아니다. 기업, 정부, 미디어, 시민사회 전반에 걸쳐 신뢰라는 개념이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지를 추적하는 일종의 사회적 청진기다. 2025년판 스페셜 리포트는 특히 브랜드 신뢰에 집중하며, 그 부제가 선명하다. '우리(We)에서 나(Me)로.' 집단적 공감에서 개인적 연결로, 신뢰의 축이 이동하고 있다는 선언이다.

올해 조사는 2025년 4월 24일부터 5월 5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전 세계 15개국 총 15,000명이 응답했다. 한국에서는 1,002명이 참여했고, 오차 범위는 99% 신뢰 수준 기준 ±4.1%포인트다. 수치는 꼼꼼하고, 함의는 묵직하다.


브랜드만이 신뢰 영역에 진입했다

보고서가 한국 사회에 대해 가장 먼저 말하는 것은 신뢰의 구조적 불균형이다. 조사에서 신뢰 영역(60점 이상)에 진입한 대상은 단 하나, '내가 사용하는 브랜드'뿐이다. 신뢰 점수 64점. 나머지는 모두 불신 또는 중간 구간에 머문다. 고용주 48점, NGO 46점, 기업 43점, 정부 39점, 미디어 36점. 정부와 미디어는 나란히 최하위권이다.

전문직군을 살펴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과학자가 68점으로 유일하게 신뢰 영역에 들어서고, 교육자는 59점으로 경계선에 걸쳐 있다. 기자는 31점, 정부 관계자는 32점. 이 수치들을 나란히 놓고 보면, 한국 사회의 신뢰 지형이 얼마나 협소해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브랜드가 신뢰를 독식한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대상이 무너진 자리에 브랜드가 남겨진 것에 가깝다.

이 구도는 2022년 이후 지속된 추세이기도 하다. 기관 신뢰 지수(기업·정부·미디어·NGO 평균)는 2022년 41점에서 2025년 41점으로 제자리를 맴돌았고, 브랜드 신뢰는 같은 기간 49점에서 50점으로 소폭 상승했다. 수치 자체의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기관에 대한 불신이 고착화되는 동안, 브랜드는 상대적으로 가장 믿을 만한 존재로 남게 되었다.


청년의 경제적 고통이 신뢰의 문법을 바꾼다

신뢰 이동의 배경에는 경제적 불안이 짙게 깔려 있다. 한국 18~34세 응답자 중 39%가 지난 1년간 공과금 납부 지연, 신용카드 부채 증가, 식사를 거름, 의료비 감당 불가, 직업 상실, 주거비 부담으로 인한 이사 등 경제적 어려움을 하나 이상 경험했다고 답했다. 35~54세는 32%, 55세 이상은 27%다. 가장 활동적인 세대가 가장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이 맥락 안에서 브랜드에 대한 기대도 달라졌다. 소비자들은 브랜드에게 기능적 효용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를 기분 좋게 해주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답한 한국 응답자는 65%, '희망을 주는' 역할이 중요하다는 응답은 49%다. 이 수치들은 글로벌 평균(각각 68%, 62%)보다 낮지만, 방향성은 같다. 불안정한 시대일수록 소비자는 브랜드에게 감정적 안정감을 원한다.

관세와 무역전쟁이 일상 물가를 올릴 것이라 걱정한다는 항목에서 한국 응답자의 75%가 동의했다. 글로벌 평균은 76%로 거의 동일하다. 경제적 불안은 이제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감각으로 공유되고 있으며, 그 감각이 브랜드를 바라보는 시선을 빚어내고 있다.


신뢰는 구매 결정의 본질적 변수다

브랜드 선택 기준을 묻는 질문에서도 신뢰의 위상은 분명하다. 한국 소비자가 구매 시 중요하거나 절대적이라고 응답한 항목 상위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최고 품질 제공(88%), 가격 대비 가치(87%), 내가 신뢰하는 브랜드(84%),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84%), 고품질 고객 서비스(83%). 신뢰는 품질, 가격과 함께 3위권 안에 든다. 이미지나 감정이 아니라 실질적 구매 결정을 좌우하는 변수라는 의미다.

자국 브랜드와 해외 브랜드의 신뢰도 격차도 흥미롭다. 한국은 자국 브랜드 57점, 해외 브랜드 46점으로 11점 차이를 보인다. 글로벌 평균 격차 15점보다는 좁지만, 자국 브랜드에 대한 선호는 분명히 존재한다. 인도네시아(신뢰 격차 4점), 사우디아라비아(4점)처럼 거의 차이가 없는 나라들과 비교하면, 한국은 아직 자국 브랜드에 상당한 심리적 우선권을 부여하고 있다.


침묵은 전략이 아니라 리스크다

브랜드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을 때 소비자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한국 응답자의 58%는 "그 브랜드는 아무것도 안 하거나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가정한다고 답했다. 글로벌 평균 53%보다 높다. 반면 "좋은 일을 하고 있지만 말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한 응답은 26%에 그쳤다.

사회적 의무를 무시한 브랜드에 대한 행동 변화도 구체적이다. 해당 브랜드를 구매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는 응답이 52%,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는 응답이 50%다. 특히 55세 이상에서는 두 항목 모두 59%로 더 높게 나타난다. 시니어 소비자일수록 브랜드의 침묵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은, 마케팅이 청년 세대에만 집중해온 관행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브랜드가 어떤 사회적 이슈에 대응할 의무가 있는지에 대한 인식도 세분화되어 있다. 한국 소비자들은 브랜드가 그 이슈를 야기했거나 악화시킨 경우(36%),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35%), 개입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경우(35%)에 의무가 있다고 본다. 단순히 '사회적 책임'이라는 추상적 논리가 아니라, 브랜드와 이슈 사이의 구체적 연결성을 기준으로 책임을 판단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문화를 통해 신뢰를 얻는 브랜드

신뢰를 높이는 데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가라는 질문, 즉 "오늘날의 문화를 진정성 있게 반영하는 브랜드"와 "문화를 무시하고 제품에만 집중하는 브랜드" 중 한국 응답자의 85%가 전자를 선택했다. 글로벌 평균 73%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특히 55세 이상에서 90%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는 점은 예상 밖의 결과다. 문화적 민감성에 대한 요구는 젊은 세대만의 감수성이 아니다.

브랜드에 대한 정보를 어디서 얻느냐는 질문에서도 맥락은 이어진다. 한국 소비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정보원은 친구와 가족(77%), 나와 같은 소비자(64%)다. 소비자 리뷰는 50점으로 중간 구간에, 브랜드 CEO(43점), 브랜드 임직원(41점), 인플루언서(36점), 기자(34점)는 불신 구간에 위치한다. 브랜드가 공식 채널을 통해 아무리 정교한 메시지를 내보내도, 소비자의 실제 신뢰는 주변 사람의 경험과 목소리로부터 형성된다는 뜻이다.

생성형 AI의 부상도 주목할 만한 변수다. 한국 응답자의 49%가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사용자 중 83%가 쇼핑에 어떤 방식으로든 AI를 활용한다고 답했다. 제품 비교, 리뷰 요약, 브랜드 탐색이 이제 AI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브랜드가 AI 플랫폼에서 어떻게 발견되느냐가 새로운 마케팅 과제로 부상했음을 의미한다.


보고서가 브랜드에게 요구하는 것

보고서는 마지막에 네 가지 명제를 제시한다. 첫째, 브랜드의 목적은 개인적이어야 한다. 모호한 사회적 선언이 아니라, 소비자 개인의 삶에 안정감과 낙관을 실제로 제공해야 한다. 둘째, 브랜드는 신뢰의 공백을 채우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신뢰는 강력한 차별화 요소이지만, 동시에 더 무거운 책임을 수반한다. 셋째, 침묵은 안전하지 않다. 행동하지 않으면 브랜드는 평범한 상품으로 전락한다. 넷째, 적극적인 브랜드는 소비자의 세계 안에서 함께 행동한다. 현지의 목소리, 획득 미디어, AI에 반영되는 콘텐츠가 그 출발점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정부도, 미디어도, 대기업도 쉽게 믿지 못하는 구조 속에 있다. 그 구조 안에서 브랜드는 예상치 못한 위치를 부여받았다. 소비자의 일상에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많은 것을 기대받는 존재. 그 기대에 부응하느냐 침묵으로 외면하느냐가, 앞으로의 브랜드 신뢰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본 글은 에델만(Edelman)이 2025년 8월 발표한 '2025 에델만 트러스트 바로미터 스페셜 리포트: 브랜드 신뢰, 우리에서 나로 — 대한민국 에디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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