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9일 일요일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사업 승계에 던지는 질문

2026년 설 연휴, 1600만 관객을 넘기며 역대 흥행 2위에 오른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조선 6대 왕 단종의 이야기를 다룬다.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강원도 청령포로 유배된 열일곱의 어린 왕 이홍위. 마을의 부흥을 꿈꾸며 유배지를 자청한 촌장 엄흥도(유해진). 두 사람이 밥상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교감이 이 영화의 전부이자 핵심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단종은 왜 왕위를 지키지 못했는가. 그것이 정통성의 문제였는가, 아니면 다른 무엇의 문제였는가.

역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답은 오늘날 기업 승계의 현장에서도 섬뜩할 만큼 반복되고 있다.


정통성은 충분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단종은 조선 왕들 중에서도 드물게 원손, 왕세손, 왕세자의 절차를 모두 밟아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명분이라는 측면에서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러나 정통성이란 그것을 지켜줄 구조가 없으면 한낱 종이 위의 문자에 불과하다.

수렴청정을 맡을 대왕대비와 대비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외척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아버지 문종이 남긴 고명대신들 사이에서는 권력이 한 사람에게 기울어 있었다. 김종서. 그에게 쏠린 과도한 권력은 내부의 반발을 키웠고, 수양대군이 그 한 사람을 제거하는 순간 단종을 둘러싼 보호막은 흔적도 없이 무너졌다.

승계는 사건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후계자를 지명하는 것과 후계자가 안정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도록 구조를 갖추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세종과 문종은 후계자 교육에는 성공했지만, 그 후계자를 보호할 인재풀 육성, 잠재적 위협 관리, 세대교체 준비라는 과제를 완수하지 못했다. 결과는 역사가 말해준다.

엄흥도가 존재했다는 것의 의미

영화의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왕을 모시는'이 아니라 '왕과 사는' 남자. 수직적 충성이 아닌 인간적 교감. 엄흥도는 단종의 일상을 감시해야 하는 보수주인으로 유배지에 들어섰지만, 밥상을 함께 하고 계절을 함께 견디면서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그러나 영화가 끝내 슬픈 것은, 엄흥도의 존재가 시스템을 대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헌신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난다. 조직이 특정 개인의 충성심에 의존하는 순간, 그 개인이 사라질 때 조직 전체가 위험에 빠진다. 역사 속 단종의 비극은 바로 그 지점에서 완성된다.

기업의 역사는 얼마나 다른가

단종의 이야기가 500년 전의 궁중사로 끝났다면, 이 영화는 그저 아름다운 사극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거의 동일한 구조의 실패가 현대의 기업 세계에서도 반복되어왔다는 사실이 이 이야기를 현재형으로 만든다.

왕안석(Wang An-shih) 실패의 21세기 버전 — 리만 브라더스의 승계 공백

2008년 금융위기의 진원지 중 하나였던 리만 브라더스는 CEO 리처드 펄드가 사실상 1인 지배 체제로 회사를 운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의사결정 권한은 위기 상황에서 이사회의 견제 기능을 무력화했고, 후계 구조에 대한 어떠한 공식적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회사는 파산 신청을 맞이했다. 김종서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었던 고명대신 체제와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다.

정통성은 있었으나 보호받지 못한 후계자 —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논란

이재용 회장으로의 삼성 승계 과정은 오랜 기간 법적,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경영권 승계의 정통성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 과정을 둘러싼 구조적 투명성과 주주 보호 장치, 즉 승계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의 부재가 핵심 쟁점이었다. 지명 그 자체보다 지명을 정당화하는 절차와 구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례다.

세대교체 준비 실패 — 코닥의 몰락

이스트먼 코닥은 1975년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회사다. 그러나 필름 사업의 수익에 의존하는 경영진은 내부에서 새로운 세대의 기술 인재가 성장하는 것을 구조적으로 억제했다. 세종 말기 고령의 원로 대신들에 의존하느라 중진급 인재가 성장하지 못한 상황과 닮아 있다. 결과는 2012년 파산 보호 신청이었다.

키맨 리스크의 교과서 — 애플의 잡스 이후

스티브 잡스 사후 애플이 살아남은 것은 단순한 행운이 아니었다. 잡스 자신이 생전에 팀 쿡을 수년에 걸쳐 COO로 훈련시켰고, 제품 개발 파이프라인과 기업 문화를 시스템화하는 작업을 병행했다. 단일 인물에게 집중된 비전을 조직의 역량으로 분산시키는 데 성공했기에 승계는 재앙이 아닌 전환점이 될 수 있었다. 엄흥도 한 사람의 헌신이 아니라, 시스템이 왕을 지킨 드문 사례다.

승계를 설계한다는 것

〈왕과 사는 남자〉에서 유해진이 연기한 엄흥도는 처음에는 속물적인 촌장이었다. 유배지를 자청한 것도 마을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어린 왕과 밥상을 나누고 계절을 함께 견디면서 그는 변해간다. 충성이 의무에서 선택으로 바뀌는 순간, 그것은 이미 시스템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

바로 그것이 비극의 씨앗이다.

진정한 승계 설계는 엄흥도 같은 사람을 찾는 일이 아니다. 엄흥도가 없어도 왕이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후계자를 지명하는 것, 후계자를 교육하는 것, 그리고 후계자가 안정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위협을 관리하고 인재를 육성하고 다층적 보호 장치를 갖추는 것.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차원의 과제다.

단종은 정통성이 부족해서 왕위를 잃은 것이 아니다. 정통성을 지켜줄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잃었다.

1457년 청령포의 이야기는 그래서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참고: 단종 승계 실패의 구조적 분석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기사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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