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9일 일요일

돌봄은 복지가 아니라 경영 - 정명은·임가영이 던진 질문

하버드경영대학원이 발표한 보고서 한 줄이 묵직하게 남는다. 고용주의 52%는 직원의 돌봄 부담을 측정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직원의 73%는 지금 이 순간 누군가를 돌보고 있다. 이 간극이 조직에 무엇을 남기는지를 사회적가치연구원 정명은 실장과 임가영 선임연구원이 DBR 438호에서 정면으로 다뤘다.


보이지 않는 부담이 조직을 잠식한다

생산성 연구는 오랫동안 '결근(absenteeism)'에 집중해 왔다. 자리를 비우는 사람이 문제라는 시각이었다. 그러나 연구의 무게중심은 점차 '프리젠티즘(presenteeism)'으로 옮겨갔다. 몸은 있지만 마음이 없는 상태, 출근은 했으나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다. 그리고 이제 그 프리젠티즘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돌봄 부담'이 지목되고 있다.

미국 직장인의 80%가 돌봄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를 경험한다고 응답했다. 부모를 모시거나, 아이를 키우거나, 아픈 가족 곁을 지키는 일은 더 이상 특정 계층만의 사정이 아니다. 정명은·임가영은 이 문제를 '여성 문제' 혹은 '육아 문제'라는 좁은 틀로 바라보는 기존 시각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한다. 돌봄은 성별도, 연령도, 직급도 가리지 않는 구조적 리스크라는 것이다.


숨기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되는 조직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직원들이 돌봄 사실을 숨긴다는 점이다. 경력 불이익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돌봄 부담을 털어놓으면 '업무 몰입도가 낮다'거나 '승진 준비가 안 됐다'는 시선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작동한다. 그 결과 조직은 직원의 실제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직원은 고립된 채 소진된다.

돌봄으로 인해 자발적 퇴사를 고려한 직원이 32%에 달하며, 흥미롭게도 고위 관리자일수록 이탈 가능성이 더 높다는 데이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직이 가장 놓치지 말아야 할 인재가 가장 조용히 떠나고 있다는 뜻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마이크로소프트가 먼저 움직인 이유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이미 이 문제를 '복지'가 아닌 '경영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노인 돌봄 전문가와 돌봄 매니저를 직원에게 연결하고, 연간 50일의 돌봄 보조 서비스를 제공하며, 직원과 가족을 위한 상담 세션을 운영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간병 컨시어지 서비스를 도입했고, 치매·알츠하이머 환자를 위한 맞춤형 돌봄 옵션과 가족 간병인 휴가 제도를 정비했다.

이 기업들이 이런 제도를 도입한 것은 인도주의적 동기에서만은 아니다. 계산이 맞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돌봄 경제 규모는 약 6조 달러, 전체 GDP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돌봄 인력 부족이 지속될 경우 2030년까지 GDP가 최대 5000억 달러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돌봄은 이미 거시경제의 변수가 됐다.


한국 기업이 받아야 할 세 가지 처방

정명은·임가영은 한국 기업을 향해 세 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첫째, 돌봄을 '안전(safety)' 이슈로 재정의해야 한다. 1인 가구, 딩크, 딩펫 등 가족 구성의 형태가 다양해진 지금, 돌봄의 범위도 신체·심리·환경적 안전 전반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둘째, 직원의 실제 돌봄 수요를 파악해야 한다. 제도가 있어도 모르거나, 알아도 쓰지 못하는 환경이라면 제도는 숫자에 불과하다. 리더가 먼저 돌봄 지원 제도를 사용해 심리적 안전감을 만드는 것이 선행 조건이다.

셋째, 돌봄 시장을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바라볼 수 있다. 기업이 기획과 설계를 맡고 전문 돌봄 기업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은 공급망 확장과 사회적 가치 실현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


결국, 어떤 회사가 살아남는가

정명은·임가영이 이 글을 통해 말하려는 것은 단순하다. 돌봄은 개인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경영 의제로 끌어들이는 조직이 인재를 지키고, 생산성을 유지하며, 결국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돌봄 회사(Caring Company)'라는 개념은 감성적 슬로건이 아니다. 인구 구조와 가족 형태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이것은 생존의 언어다.


정명은·임가영, 〈조직 생산성 가르는 직원 돌봄 부담〉, DBR 438호, 2026년 4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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