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워싱 규제, 이제는 전 지구적 '법적 전쟁'
"친환경", "에코", "탄소중립", "지속 가능한 소재." 오늘날 수많은 제품과 광고에 넘쳐나는 이 단어들이 과연 모두 진실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미 세계 각국의 규제당국이 증명하고 있다. 그린워싱(Greenwashing)은 이제 단순한 마케팅 과장의 문제가 아니다. 수백억 원대의 벌금, 광고 금지 처분, 형사 소추까지 이어지는 엄연한 법적 리스크가 되었다.
앞서 살펴보았듯, 영국의 경쟁시장청(CMA)이 그린 클레임에 대한 책임을 공급망 전체로 확대한 것은 이 흐름의 일단을 보여줄 뿐이다. EU, 미국, 호주, 싱가포르, 한국 등 주요국들이 이미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각국의 규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며, 실제로 어떤 기업들이 어떤 방식으로 제재를 받았을까.
EU: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그린워싱 규제의 탄생
EU는 2023년 5월, 기업이 친환경 주장을 할 경우 반드시 검증 가능한 증거를 제시하도록 의무화한 '그린 클레임 지침(Green Claims Directive)'을 채택했다. 이 지침의 핵심은 '입증 책임의 역전'이다. 기업이 먼저 과학적 근거와 제3자 인증을 확보하지 않으면 "친환경"이라는 표현 자체를 사용할 수 없다. '친환경', '기후 중립', '지속 가능' 등 일반적인 표현은 명확한 근거 없이는 사용이 금지되며, 위반 시 연 매출의 최대 4~16%에 달하는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나아가 친환경 주장을 하는 기업은 전과정평가(LCA, Life Cycle Assessment)를 통해 이를 입증해야 하며, EU 역외 기업도 동일한 규제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한국 기업들이 결코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 제재 사례도 나왔다. 이탈리아 법원은 패스트패션 브랜드 쉐인(Shein)의 유럽 법인에 그린워싱을 이유로 100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했다. 당국은 지속가능성 관련 홍보 내용이 모호하고 일반적이며 일부 경우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허위였다고 판단했으며, 2023년과 2024년에 오히려 실제 탄소 배출량이 증가했음에도 감축 목표를 홍보한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금융권도 예외가 없었다. 도이치뱅크의 자산운용 부문인 DWS는 ESG 자격 기준을 투자자에게 허위로 알린 혐의로 독일 검찰로부터 2,500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받았으며, 이는 미국 SEC의 유사한 제재에 이은 조치였다.
미국: 규제기관과 법원 모두가 움직인다
미국의 그린워싱 규제는 연방거래위원회(FTC)의 '그린 가이드(Green Guides)'를 축으로 작동한다. 2012년 이후 개정되지 않았던 그린 가이드는 2023년 재검토 작업에 들어갔으며, 7,000여 건에 달하는 의견을 수렴하는 등 업데이트를 추진해 왔다.
SEC 역시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미국 SEC는 글로벌 자산운용사가 ESG 관련 투자에 대해 잘못된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1,750만 달러의 민사 벌금을 부과했다. 해당 운용사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마케팅 자료에서 자사 자산의 70~94%가 'ESG 통합' 자산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ESG 요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패시브 ETF 자산이 포함되어 있었다.
소비재 분야에서는 월마트가 대표적인 제재 사례로 꼽힌다. 월마트는 합성 레이온으로 만든 제품을 친환경 대나무로 제작했다는 허위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300만 달러(약 41억 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패션업계에서는 H&M이 여러 건의 소송에 시달렸다. 미국 법원에서 일부 소송은 기각되었지만, 집합적으로 보면 H&M은 미국에서 그린워싱 관련 합의금으로 300만 달러를 지급했다. 특히 H&M의 'Conscious Choice' 컬렉션이 지속가능한 소재 사용 비율을 부풀렸다는 의혹이 소송의 핵심이었다.
호주: 위반 시 최대 5,000만 호주달러 벌금
호주는 그린워싱 제재 수위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 중 하나다. 호주 경쟁소비자위원회(ACCC)는 '그린워싱 방지를 위한 환경성 주장' 최종 지침을 발표하며 그린워싱 단속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위반 시에는 5,000만 호주달러(약 450억 원) 또는 위반으로 얻은 이익의 3배에 달하는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실제 사례도 등장했다. 호주의 한 기업은 해양 플라스틱을 50% 사용했다고 광고했으나 실제로는 해안가 인근 플라스틱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825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이는 "어디서 온 플라스틱인가"라는 세부 사항까지 광고가 정직해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영국: 광고 금지부터 매출의 10%까지
영국의 광고표준국(ASA)은 그간 그린워싱 광고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행정 제재 기관으로 활동해왔다. 영국의 Shell,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스페인의 정유사 렙솔의 광고가 ASA에 의해 광고 금지 처분을 받았다. 렙솔의 경우, 아직 재생가능 수소를 실제로 생산하지 않는 상황임에도 이를 주력인 것처럼 홍보했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제재가 이어졌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하이브리드 차량에 대해 '무배출(zero emissions)'이라고 광고했으나, ASA는 전기 모터로 주행하지 않을 때에도 배기가스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동일 광고의 반복을 금지하는 시정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2025년부터는 차원이 달라졌다. 영국은 디지털시장·경쟁·소비자법(DMCC)에 따라 2025년 4월부터 그린워싱에 대해 글로벌 연간 매출의 최대 10%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 CMA는 2025년 가을부터 그린 클레임 코드(GCC)에 대한 대규모 공개 집행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는 규제기관이 지침 제시에서 실제 행동으로 전환하는 전환점을 의미한다.
싱가포르와 캐나다: 금융과 제도 측면에서의 접근
싱가포르는 금융 분야 그린워싱 규제에 특히 집중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일본, 홍콩, EU 등과 함께 ESG 평가 규제 표준을 도입하는 국제적 흐름에 동참하고 있으며, ESG 평가의 품질 보증과 방법론의 투명성 확보를 핵심 원칙으로 삼고 있다. 자산운용 및 녹색 금융 허브를 지향하는 싱가포르로서는 ESG 신뢰성이 국가 금융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입법을 통한 접근법을 택했다. 캐나다는 2024년 경쟁법을 개정해 허위 마케팅 조항에 반그린워싱 조항을 포함시키고, '환경 청구 지침서'를 발행했다. 이는 그린워싱을 소비자 기만 행위의 하나로 명확히 규정하고 처벌 근거를 법률 차원에서 확고히 다진 조치다.
한국: 규제 기반은 갖춰졌지만, 실효성 강화가 과제
한국도 그린워싱 규제 체계를 갖추는 중이다. 국내 그린워싱 관련 규제는 환경부 소관의 환경기술산업법과 공정거래위원회 소관의 표시광고법에 의해 이원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규제당국들은 기존 법들을 개정하고 가이드라인을 발간하는 등 점차 그린워싱에 특화된 규제체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실제 적발 건수도 가파르게 늘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그린워싱 적발 건수는 2021년 272건에서 2023년 4,940건으로 3년 새 약 18배 증가했다. 2024년에는 자라(ZARA), 스파오, 탑텐 등 패션 기업들이 '에코·지속가능' 표기의 근거 부족을 이유로 공정위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EU, 미국, 호주와 달리 한국은 실제 규제 위반 발생 시 행정지도 또는 시정 명령 등의 처분을 받은 것이 대부분으로, 제재 수위가 상대적으로 낮다. 2024년 국정감사에서도 모호한 그린워싱 판단 기준과 미약한 처벌 수위가 지적되었으며, 향후 규제당국이 보다 구체적인 기준과 강화된 제재 수위를 갖출 것으로 전망된다.
'평판 리스크'에서 '법적 리스크'로
이제 그린워싱은 단순한 소비자 비판이나 SNS 여론의 문제가 아니다. 초기에는 소비자 및 환경단체의 움직임에 기초하여 기업들에게 '평판 리스크', '시장 리스크'를 가져다 주었던 그린워싱은, 관련 법규제 도입 및 규제기관의 적극적 개입에 힘입어 '법적 리스크(Legal Risk)'로 심화되고 있는 추세다.
그린워싱 관련 글로벌 기후소송 건수는 2022년 기준 2017년보다 약 2배 이상 늘어났으며, 예전에는 전통적인 화석연료 기업 위주였던 소송 대상이 이제는 금융기관 및 소비재 기업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결국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이라면, 공급망의 어느 단계에 있든 가장 엄격한 기준을 기준점으로 삼는 수밖에 없다. 친환경 주장을 하려면 제3자 검증을 확보하고, 전 생애주기(LCA)에 걸친 데이터를 갖추며, 모호한 표현보다 측정 가능한 수치로 소비자에게 정직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것이 규제를 피하는 최선인 동시에, 진짜 지속가능한 경영을 향한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