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일 금요일

300달러로 시작해 3만 5천 명을 품다 — 송창근 회장의 35년

300달러의 사람 — 송창근 회장과 휴먼터치 경영의 35년

KMK글로벌스포츠그룹 · 성장 스토리 에세이


들어가며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진짜 글로벌 기업이 된다." — 송창근, KMK글로벌스포츠그룹 회장

198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한 청년이 손에 쥔 것이라곤 300달러뿐이었다. 언어도 낯설고, 연줄도 없고, 보장된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른 종류의 자본이 있었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기꺼이 걷는 용기, 그리고 사람을 향한 진심이었다.

35년이 지난 지금, 그 청년은 6개 계열사, 직원 3만 5천 명의 글로벌 그룹 KMK의 회장이 되었다. 나이키·컨버스·헌터 등 세계 최정상 브랜드들이 인정한 파트너. 인도네시아에서 '신발왕'으로 불리는 사람. 바로 송창근 회장의 이야기다.


1. 300달러, 그리고 용기라는 자본

300달러는 돈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걸겠다는 선언이었다.

송창근 회장은 신발 부자재 영업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아무도 선뜻 맡으려 하지 않던 베이비화 생산을 자청하며, 작고 어려운 일부터 성실하게 해냈다. 스스로를 "Crazy Korean"이라 부를 만큼 그의 선택은 늘 비주류였다.

그러나 바로 그 비주류의 길이 KMK의 초석이 되었다.

역사상 위대한 창업 스토리들은 대개 결핍에서 시작된다. 결핍이 창의성을 낳고, 절박함이 진정성을 만들기 때문이다. 남들이 기피하는 일을 자청한다는 것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다. 그것은 신뢰를 쌓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2. KMK의 성장 요인 — 위기마다 증명된 신뢰

기업의 진짜 가치는 호황이 아니라 위기에서 드러난다. KMK는 여러 번의 절체절명의 순간을 겪었다. 그때마다 송창근 회장의 선택은 한결같았다. 도망가지 않는 것이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 인도네시아 폭동 한국 기업들이 철수를 서두르던 그 순간, 송 회장은 공장 문을 닫지 않았다. 직원들과 함께 버텼고, 그 선택이 훗날 돌아올 수 없는 신뢰의 자산이 되었다.

나이키 주문 중단의 위기 거래가 끊길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미국 본사를 직접 찾아갔다. 숫자와 논리가 아니라, 3만 명 직원들의 진심을 전했다. 결국 나이키는 거래를 재개했다. 사람의 이야기가 계약서보다 강했다.

이 두 사건은 KMK 성장의 핵심 비결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위기 앞에서 함께한다는 것, 그것이 어떤 마케팅보다 강력한 브랜딩이었다.


3. 경영 철학 — 휴먼터치 매니지먼트

송창근 회장의 경영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직원이 기뻐하는 일을 해주는 사람이 CEO다."

그는 이것을 말로만 하지 않았다. 25년 넘게 직원 가정을 직접 방문하는 '캄풍 비짓(Kampung Visit)'을 이어왔다. 사내 병원, 이발소, 복지관, 대규모 구내식당을 갖추었고, 직원 가족에게도 무료 의료를 제공했다.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이 투자들이 3만 5천 명의 마음을 붙들었다. 직원들이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다.

악수 한 번, 눈맞춤 한 번, 웃음 한 번. 그 작은 행동의 축적이 조직 문화를 바꾼다고 그는 믿는다. 그리고 35년의 역사가 그 믿음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4. 리더십의 특징 — 착한 CEO가 성공한다

송창근 회장의 리더십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권위를 버린 자리에 진정성을 채웠다는 점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말한다. "회사에 충성하지 말고, 자신에게 충성하라." 직원의 성장과 행복이 결국 회사의 성장이라는 믿음에서 나온 말이다.

그가 강조하는 리더십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현장에 있을 것. 위기일수록 리더가 보여야 한다. 인도네시아 폭동 당시 공장을 지킨 것이 그 상징이다.

둘째, 진심으로 말할 것. 나이키 본사에 숫자 대신 사람의 이야기를 가져간 것처럼, 진심은 어떤 논리보다 강하다.

셋째, 작은 것을 귀히 여길 것. 악수, 눈맞춤, 가정 방문. 거창한 복지제도보다 이 소소한 관심이 조직의 심장을 뛰게 한다.


5. 다른 경영자들에게 주는 인사이트

송창근 회장의 이야기는 단지 한 사람의 성공 신화가 아니다. 오늘날 경영자들이 마주한 가장 본질적인 질문에 답을 건넨다.

"효율과 사람,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가?"

KMK의 35년은 이 질문에 단호하게 답한다. 아니다. 사람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경영이다.

글로벌 브랜드들이 KMK를 선택하는 이유는 단가가 아니었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생산 안정성, 그리고 그 안정성을 만드는 직원들의 헌신이었다. 그 헌신은 급여가 아니라 신뢰에서 나왔다.

스타트업이든 대기업이든, 국내 기업이든 글로벌 기업이든, 이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리더가 시장을 얻는다.


나가며 — 300달러가 남긴 것

300달러로 시작한 청년은 이제 차세대 경영 승계를 준비하며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내 길을 따르지 말고, 너의 길을 가라."

이 한 마디가 그의 경영 철학의 완성이다. 자신의 성공 방정식을 강요하지 않는 것. 사람마다 고유한 길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 그것이 35년간 3만 5천 명의 다양한 삶을 품어온 리더의 마지막 가르침이다.

착한 CEO가 성공한다. 송창근 회장의 이야기는 그 명제가 이상이 아닌 현실임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증거다.



2025년 12월 19일 금요일

안나 카레니나가 가르쳐 준 것들 — 리스크 관리의 철학


위험을 감수하는 것과 위험에 무너지는 것, 그 경계에 관하여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처음 집어 든 것은 순전히 문학적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서, 나는 뜻밖의 자문을 받은 기분이었다 — 리스크 관리에 관한 자문. 1,000페이지가 넘는 이 대하소설은 단순한 불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선택하고, 어떻게 위험을 받아들이거나 외면하고, 결국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가에 관한 촘촘한 탐구다.

소설은 이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각이다." 이 첫 문장은 리스크의 속성을 꿰뚫는다. 성공(행복)의 경로는 수렴하지만, 실패(불행)의 경로는 발산한다. 리스크 관리론에서 말하는 '꼬리 위험(tail risk)'이 여기에 있다. 잘못될 수 있는 방식은 무한히 다양하고, 각각은 완전히 고유한 이유를 가진다. 톨스토이는 이 진실을 소설의 첫 줄에서 이미 선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 안나의 비극 — 리스크를 '계산'하지 않은 결정

안나 카레니나는 지성적이고 아름다우며, 사회적으로도 높은 위치에 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브론스키와의 사랑을 선택할 때 무엇을 잃게 되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는 것과 '충분히 평가했다'는 것은 다르다. 여기에 리스크 관리의 핵심 개념이 등장한다. 바로 리스크 인지(risk perception)와 리스크 평가(risk assessment)의 괴리다.

안나는 아들과의 이별, 사회적 추방, 법적 이혼 불가능이라는 구체적인 손실을 '이해'했지만, 그 손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의 심리를 어떻게 갉아먹을지는 충분히 '시뮬레이션'하지 못했다. 리스크 관리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위험의 존재를 모를 때가 아니라, 그 위험의 장기적 복리 효과(compounding effect)를 과소평가할 때다. 안나는 사랑이라는 강렬한 현재의 감각 앞에서 미래의 비용을 할인했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현재 편향(present bias)'의 교과서적 사례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네 인물, 네 가지 리스크 전략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은 각각 전혀 다른 리스크 태도를 보여주며, 마치 조직 내 서로 다른 의사결정자처럼 기능한다.

안나는 고위험 감수형이다. 감정에 이끌려 리스크를 전면 수용했고, 출구 전략이 없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단일 포지션에 집중 투자한 셈이었고, 그 포지션 — 브론스키의 사랑 — 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전체 시스템이 무너졌다. 포트폴리오를 분산하지 않은 투자자의 최후와 닮아 있다.

브론스키는 리스크 과신형이다. 그는 자신의 매력과 사회적 지위를 지나치게 믿었다. 안나와의 관계가 자신에게 미치는 장기적 비용을 계속해서 과소평가했고, '나는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하는 오버컨피던스(overconfidence)는 리스크 관리의 고전적 함정이다.

카레닌은 리스크 회피형이다. 그는 감정적 위험을 철저히 억압하고, 제도와 절차 뒤에 숨어 실질적 위험과의 직면을 계속 미뤘다. 그 결과 위험이 외부에서 강제로 터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이했다. 리스크를 회피하는 것이 리스크를 없애는 것이 아님을 카레닌은 몸소 증명한다.

레빈은 점진적 리스크 관리형이다. 그는 의심과 불안을 품으면서도 단계적으로 검증하며 나아갔다. 키티에게 구혼했다가 거절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재시도했으며, 농업 개혁에 실패해도 방향을 수정했다. 불확실성을 제거하려 하지 않고 분산하며 함께 걸어간 인물이다. 그리고 소설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의미를 찾는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 시스템 리스크 — 개인이 아닌 구조의 문제

현대 리스크 관리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이 '시스템 리스크(systemic risk)'다. 개별 주체의 결함이 아니라, 구조 자체가 특정 위험을 내재화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19세기 러시아 귀족 사회는 바로 그런 구조였다. 여성에게 불균형적으로 가혹한 시스템 리스크가 사회 전체에 내포되어 있었다.

안나와 브론스키는 같은 선택을 했다. 그러나 브론스키는 사회 안에서 어느 정도 회복 가능성을 유지한 반면, 안나는 즉각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추방을 경험했다. 이것은 안나 개인의 리스크 관리 실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성에게 훨씬 높은 위험 비용을 부과하는 구조의 실패이기도 하다. 오늘날 조직 내 리스크 관리자들이 개인의 행동뿐 아니라 구조적 취약성을 함께 진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일한 행동이라도 행위자가 놓인 구조적 위치에 따라 리스크의 크기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 질투와 확증 편향 — 리스크 인식의 왜곡

소설 후반부, 안나의 질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녀는 브론스키의 모든 행동에서 배신의 신호를 읽어내기 시작한다. 이것은 리스크 관리에서 말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의 극단적 사례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수집하고 해석하는 현상. 위험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할 바로 그 순간, 인식이 가장 심하게 왜곡되는 것이다.

안나가 마침내 기차역 플랫폼에 선 순간, 그녀의 내면은 이미 현실을 왜곡된 렌즈로 보고 있었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인간의 리스크 판단이 얼마나 심각하게 손상될 수 있는지를 톨스토이는 놀라운 정밀함으로 그려낸다. 위기 상황일수록 냉정한 외부 시각과 검증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 이것이 현대 리스크 거버넌스가 '이중 통제 원칙(four-eyes principle)'을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레빈의 길 —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

레빈은 안나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그는 농업 개혁을 시도하고 실패하고, 키티에게 구혼하다 거절당하고, 철학적 의심 속에서 신앙을 잃었다가 다시 찾는다. 그의 삶은 불확실하고 때로 굴욕적이지만, 그는 그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현대 리스크 관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자세다. 리스크를 완전히 없애려는 시도는 또 다른 리스크를 만든다. 목표는 위험의 제거가 아니라 위험과의 현명한 공존, 즉 리스크 내성(risk tolerance)의 확립이다. 레빈은 그것을 삶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 살아남고, 의미를 찾는다.

■ 마치며

『안나 카레니나』는 결국 이런 질문을 남긴다. 당신은 자신의 리스크를 충분히 평가하고 있는가? 그리고 불확실성 앞에서, 당신은 안나인가, 레빈인가?

위대한 소설이 위대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새로운 렌즈로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그 렌즈를 리스크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그것은 분명 리스크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1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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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2일 금요일

악마는 잠들지 않는다 — 줄리엣 카이엠의 위기관리 철학



완벽한 예방의 환상을 버리고, 복원력의 현실을 선택하는 것 — 그것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경영하는 자의 진짜 책임이다.


줄리엣 카이엠은 누구인가

줄리엣 카이엠(Juliette Kayyem)은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이자 미국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토안보부 차관보를 역임한 위기관리 전문가다. 테러리즘, 재난 대응, 국가 안보 분야에서 실무와 학문을 동시에 경험한 몇 안 되는 인물로, CNN 안보 분석가로도 활동하며 대중과 소통해왔다.

그녀의 이력에서 눈여겨볼 점은 단순한 이론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2010년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 9·11 이후 미국 본토 안보 재편 등 실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의사결정의 최전선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 경험이 이 책의 밑바탕을 이룬다.


"언제"의 문제로 재난을 바라보라

《악마는 잠들지 않는다(The Devil Never Sleeps)》의 핵심 명제는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재난은 막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회복하느냐다.

카이엠은 우리가 오랫동안 재난을 "만약(if) 발생한다면"의 문제로 인식해왔다고 지적한다. 예방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예방에 실패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는 취약한 구조다. 그녀는 이 인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재난은 "언제(when) 발생하는가"의 문제다.

이 전환은 단순한 표현의 차이가 아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예방 중심 사고는 완벽한 방어를 전제로 한다. 한 곳이 뚫리면 전체가 붕괴한다. 반면 복원력(Resilience) 중심 사고는 불완전한 현실을 전제로 한다. 일부가 무너져도 전체는 살아남고, 빠르게 재건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한다.

책은 이를 위한 구체적 원칙들을 제시한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사전 설계, 위기 발생 시 신속한 대응 체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 회복의 속도와 방향을 결정하는 리더십의 역할.


사유하기

1. 완벽한 예방이라는 환상을 버려라

많은 기업이 위기관리를 "위기가 오지 않도록 막는 것"으로 정의한다.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고, 컴플라이언스를 강화하고, 리스크 매트릭스를 정교하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이 가치 있는 활동이지만, 여기에만 집중하는 조직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현실의 위기는 예측의 바깥에서 온다.

코로나19는 팬데믹 매뉴얼이 있던 조직도, 없던 조직도 동시에 덮쳤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 핵심 인재의 갑작스러운 이탈, 주력 시장의 규제 변화 — 이것들은 예방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경영자가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이 위기가 왔을 때, 우리 조직은 얼마나 빨리 일어설 수 있는가?"

2. 복원력은 전략이 아니라 구조다

카이엠이 강조하는 복원력(Resilience)은 단순한 위기 대응 매뉴얼이 아니다. 조직의 DNA에 내재된 구조적 특성이다.

경영적으로 번역하면 이렇다.

복원력 있는 조직은 의사결정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는다. 핵심 프로세스가 특정 개인이나 단일 채널에 의존하지 않는다. 위기 상황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최소 기능 단위가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패를 빠르게 인정하고 방향을 전환하는 문화가 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 발화 사태 때 신속하게 전 세계 리콜을 결정한 것, 존슨앤드존슨이 1982년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에서 즉각 제품을 수거한 것 — 이 사례들이 오래도록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히 "잘 대응해서"가 아니다. 그 조직들이 복원력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그 결정이 가능했다.

3. "언제"를 상정한 경영 시나리오를 설계하라

카이엠의 논리를 경영 현장에 직접 적용하면, 시나리오 플래닝의 방식이 달라진다.

기존의 시나리오 플래닝은 종종 낙관, 중립, 비관의 세 가지 미래를 그린다. 그런데 이 방식의 함정은 "비관 시나리오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는 점이다.

카이엠의 방식은 다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반드시 온다는 전제 아래, 그때 우리는 무엇을 어떤 순서로 해야 하는가를 미리 결정해두는 것이다. 위기가 닥쳤을 때 처음으로 논의를 시작하는 조직과, 이미 답을 가지고 실행만 하면 되는 조직의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전환 훨씬 이전부터 DVD 사업의 소멸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그때 우리는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를 준비했다. 이것이 "언제"를 상정한 경영이다.

4. 리더는 완벽한 정보를 기다리지 않는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통찰 중 하나는 위기 상황에서의 리더십에 관한 것이다. 카이엠은 위기 대응의 최대 적은 "더 많은 정보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재난 현장에서, 그리고 경영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정보는 오지 않는다. 정보가 완벽해질 때쯤이면 이미 골든타임이 지나있다.

훌륭한 위기 리더는 70%의 정보로 결정을 내린다.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정하고, 피드백을 받아 빠르게 수정한다. 이것이 카이엠이 말하는 "복원력 있는 의사결정"이다.

이는 실리콘밸리의 "Move fast and break things"와 비슷해 보이지만 본질이 다르다. 무모하게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인정한 위에서 책임 있게 행동하는 것이다.

5. 위기 이후의 서사를 준비하라

카이엠이 책의 후반부에서 강조하는 것이 있다. 위기 이후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즉 회복의 서사(Narrative of Recovery)다.

경영적으로 이것은 단순한 홍보(PR) 전략이 아니다. 조직 내부 구성원에게, 고객에게, 투자자에게 — "우리는 이 위기를 통해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를 겪은 조직이 오히려 더 강해지는 경우가 있다. 반드시 기술적 우위나 자본력 때문만은 아니다. 위기 이후의 서사를 잘 설계하고, 그것을 실제 행동으로 뒷받침한 조직들이다.


마치며

《악마는 잠들지 않는다》는 재난 전문가가 쓴 책이지만, 그 메시지는 경영자에게 더 절실하게 읽힌다.

악마는 잠들지 않는다. 위기는 반드시 온다. 그렇다면 경영자가 해야 할 일은 위기를 막는 것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 아니라, 위기가 왔을 때 흔들리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완벽한 예방의 환상을 버리고, 복원력의 현실을 선택하는 것 — 그것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경영하는 자의 진짜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