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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0일 월요일

윤영미 하이랜드푸드그룹 회장: 위기를 설계로 바꾼 여성 창업가

윤영미 회장, 그는 누구인가

한국인의 밥상이 조용히 바뀌었다. 쌀의 자리를 육류가 대신한 지 오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1인당 육류 소비량이 처음으로 쌀 소비량을 앞질렀고, 격차는 해마다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먹는 고기가 어디서 오는지, 얼마나 많은 변수를 통과해 식탁에 오르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윤영미 하이랜드푸드그룹 회장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공급망'을 20년 넘게 직접 설계하고 운영해온 인물이다. 1999년 창업 이후 하이랜드푸드그룹은 국내 수입육 시장 점유율 약 13%로 업계 1위에 올랐다. 연 매출 1조 2000억 원, 글로벌 20여 개국에서 연 15만 톤의 육류를 수입해 국내 1,700여 개 고객사에 공급하는 중견기업이다.

그러나 이 숫자 뒤에는 창업 초기의 허름한 사무실, 파산 직전의 공포, 창사 이래 첫 적자의 충격이 있다. 그때마다 윤영미 회장은 전략을 추가하는 대신 기본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다. 2024년에는 한국수입협회 55년 역사상 첫 여성 회장으로 취임하며 업계 전반의 공급망 주권을 대변하는 위치에 섰다. 57세의 나이에 그녀가 여전히 현장을 뛰는 이유는 단순하다. 글로벌 공급망은 서류 위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목장과 도축장과 물류창고 현장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창업의 동기와 배경, 그리고 하이랜드푸드 

윤영미 회장은 1990년대 초 무역학을 전공했다. 당시 여성이 무역 실무에 뛰어드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1993년 선배가 운영하는 무역회사에 입사해 매달 해외 출장을 다니며 글로벌 거래의 실전 감각을 쌓았다. 가장 큰 장벽은 언어였다. 영어가 부족했던 그녀는 매일 새벽 6시 학원에서 하루를 시작했고, 중국과의 교역이 확대되자 중국어 과외까지 받았다. 숫자와 계약서보다 사람과 현장을 먼저 보는 습관이 이 시절에 만들어졌다.

전환점은 1997년 IMF 외환위기였다. 환율이 급등하자 소속 회사는 리스크 관리를 이유로 수입 사업을 축소했다. 그러나 윤영미 회장은 이미 현장에서 한국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상태였다. 한국을 유망 시장으로 보던 캐나다 파트너사가 독립을 제안했고,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20만 달러를 빌려 1999년 하이랜드푸드를 독립 법인으로 출범시켰다.

창업 초기 6개월은 중개무역에 집중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외환위기 여파로 환율이 요동치자 국내 거래처들이 대금 지급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중개수수료만으로 이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녀는 곧바로 직수입·직판 체제로 전환했다. 이것이 하이랜드푸드 공급망 내재화의 시작이었다. 초기에는 자본이 부족해 해외 생산자가 먼저 물건을 보내주고 한국에서 판매한 뒤 대금을 정산하는 방식으로 거래를 이어갔다. 그 신뢰가 쌓이며 약 10년이 지나자 하이랜드푸드의 규모가 애초 자금을 빌려준 캐나다 파트너사보다 더 커졌다.

2023년 부산에 수입·통관·보관·가공·배송을 한 곳에서 처리하는 부산센터를 완공했고, 2028년에는 이천 메트로센터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이천 메트로센터는 연면적 약 13만㎡ 규모로, 8만 팰릿 이상의 냉동 물량을 상시 비축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해외 원료육을 한국에서 가공해 다시 해외로 보내는 역수출 모델도 추진 중이다. 미국 소시지 기업과 아시아 생산 전진기지 구축 방안을 논의 중이며, 일본 식품 대기업과도 협업을 검토하고 있다.


세 번의 위기, 세 가지 대응

하이랜드푸드의 성장 서사에서 가장 중요한 챕터는 사실 위기의 순간들이다. 윤영미 회장이 어떤 경영자인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성공의 방식이 아니라 위기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첫 번째 위기: 1997년 IMF와 사업모델 리스크

창업 전부터 찾아온 첫 번째 위기는 외환위기였다. 환율이 급등하자 수입 사업 전반이 흔들렸고, 중간에서 수수료만 받던 중개무역 구조는 대금 미수와 거래 취소 리스크를 그대로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윤영미 회장의 대응은 사업모델 자체를 바꾸는 것이었다. 위기를 버티는 대신, 위기를 만든 구조를 없애버렸다. 중개무역에서 직수입·직판 체제로의 전환은 수익률 방어인 동시에 운영리스크를 내재화하는 선택이었다. 불확실한 외부 변수에 기대는 대신, 공급망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2002년 관리 공백과 내부 리스크

가장 극적인 위기는 2002년에 찾아왔다. 첫아이를 임신하면서 윤영미 회장이 현장을 챙기기 어려워지자, 그 공백이 즉각 조직 내부의 균열로 이어졌다. 일부 직원들이 태업과 부정행위를 일삼으면서 영업이 멈추고 거래대금 수금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상황은 빠르게 악화됐고 은행 대출이 연체되며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만삭의 몸으로 사무실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회고에 당시의 무게가 담겨 있다.

이 위기가 가르쳐준 것은 명확했다. 육류 유통업은 시스템만으로 돌아가는 산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장에서 쌓인 노하우와 거래 관계, 디테일한 관리가 성패를 좌우하며, 핵심 인물의 공백은 그 자체로 경영 리스크가 된다. 윤영미 회장은 이 교훈을 구조로 바꿨다. 원래 가족경영을 지향하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상황을 지켜본 남편이 자신의 커리어를 접고 하이랜드푸드에 합류했다. 이후 회사는 핵심 사업을 가족이 직접 관리하는 구조로 재편됐다. 남편이 국내 영업을 맡고 오너 일가가 가공 공장의 수율관리를 책임지면서 현장 밀착 관리 체계가 강화됐다. 외부 위임의 한계를 내부 책임 구조로 대체한 것이다.

2023~2024년 조직 성장통과 수익성 악화

세 번째 위기는 성공 직후에 찾아왔다. 2022년 창립 23년 만에 매출 1조 원을 돌파하며 독보적인 위치를 확인했지만, 그 직후부터 균열이 시작됐다. 2023년 마진율이 출렁이기 시작하더니 2024년에는 매출이 줄고 일부 계열사에서 영업적자가 발생했다. 윤영미 회장은 이를 창사 이래 처음 맞는 적자라고 표현했고, 27년 경영에서 이처럼 놀란 적이 없었다고 돌아봤다.

그녀는 위기의 원인을 외부 환경이 아닌 내부에서 찾았다. 조직이 빠르게 커지는 과정에서 하이랜드푸드만의 일하는 방식과 가치관이 흐려졌다는 판단이었다. 코카콜라도 광고를 멈추면 1등 자리를 지키기 어렵듯, 기업의 비전과 원칙도 끊임없이 반복하고 강조하지 않으면 조직 안에서 힘을 잃는다는 것이다.

대응 방식은 이번에도 같은 방향이었다. 새로운 전략을 추가하는 대신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윤영미 회장은 2025년을 '리셋의 해'로 선언하고 하이랜드푸드의 업무 원칙 5가지인 '하이파이브(Hi Five)'를 전면 재정비했다. 특히 '일을 일답게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단순히 더 오래 일하는 방식이 아니라, 업무의 질과 집중도를 높여 무너진 기본기를 다시 세우는 것이 목표였다. 동시에 임원진과 직원 모두에게 지시만 하는 보스가 아닌,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가 되길 주문했다. 글로벌 비즈니스는 시차와 변수가 많기 때문에 개개인이 독립된 경영자처럼 판단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의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2024년 하이랜드푸드는 연결 기준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운영리스크 관리 정책: 구조로 굳힌 세 가지 원칙

이 세 번의 위기를 관통하는 하이랜드푸드의 운영리스크 관리 방식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외부 변수를 내부 구조로 흡수하는 수직계열화다. 환율·운임·기후·지정학적 갈등처럼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에 노출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 공급망의 각 단계를 내재화했다. 직접계약(Direct Sourcing)으로 중간 마진을 없애고, 자체 물류·가공 인프라를 통해 외부 충격을 흡수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부산센터의 원스톱 시스템과 이천 메트로센터의 대규모 비축 능력은 이 전략의 물리적 표현이다.

둘째, 핵심 기능에 대한 직접 관리 원칙이다. 2002년 위기 이후 확립된 이 원칙은 핵심 사업일수록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직접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외부 위임이 가져오는 관리 공백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족 경영 체제를 도입했고, 현장 수율관리와 국내 영업을 오너 일가가 직접 챙기는 구조로 재편했다.

셋째, 위기 때마다 작동하는 '기본 원칙 재점검' 메커니즘이다. 하이파이브는 단순한 사훈이 아니라 조직이 흔들릴 때 돌아갈 수 있는 기준점이다. 매출 1조 돌파 이후의 조직 해이가 적자로 이어진 경험은 이 메커니즘의 필요성을 증명했다. 거창한 새 전략 대신 기본을 반복하는 것이 조직 건강성을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리스크 관리 도구라는 것이 그녀의 결론이다.


경영 철학

그녀의 경영 철학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기본으로 돌아가고, 사람을 먼저 읽어라."

글로벌 육류 시장은 통상 판매자 우위로 작동한다. 공장에서 찍어낼 수 없는 것이 농축산물이라 여러 나라가 동시에 같은 상품을 찾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에서 윤영미 회장은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먼저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요즘 어떤 상품을 팔고 싶으세요, 시장 상황은 어때요, 가장 고민되는 건 뭔가요." 상대의 사정을 파악한 다음, 한국 시장의 수요와 공급자의 애로를 연결해 양쪽 모두 돈을 버는 구조를 제안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샤부샤부용 소고기의 가공 방식 혁신이다. 기존에는 10kg 단위로 포장된 대형 부위를 국내로 들여온 뒤 해동·재냉동, 톱 절단, 재포장을 거쳐야 해 인건비와 물류비가 상당했다. 윤 회장은 해외 패커에게 냉장 상태에서 칼로 절단해 간단히 포장할 것을 제안했고, 그 결과 생산자는 더 높은 공급가를, 국내 구매자는 가공 비용 절감을 얻었다. 가격 협상이 아닌 구조 개선을 제안한 것이다.

기술에 대한 시각도 독특하다. IT를 효율 극대화의 수단이 아닌 직원의 불행 요소를 제거하는 도구로 본다. 반복적인 서류 작업, 비효율적인 공정처럼 직원을 지치게 하는 장애물을 기술로 걷어내고, 사람이 창의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녀는 경영의 본질을 직원의 불행 요소를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가장 큰 그림에서 그녀는 하이랜드푸드를 브라질의 JBS처럼 국가 식량 공급망을 책임질 수 있는 기업으로 키우고자 한다.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는 국민이 양질의 단백질을 합리적인 가격에 소비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방어기제라는 것이 그녀의 신념이다. 한국수입협회 회장으로서 '수출은 국력, 수입은 민생'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공급망 주권을 민간 네트워크로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이랜드푸드 본사 벽면에는 '희망이 클수록 사람이 크게 성장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윤영미 회장은 직원들을 '하이랜더'라고 부르고, '한국 식탁의 안녕을 지키는 전사들'이라고 칭한다. 공급망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곧 국민 식탁을 지키는 일이라는 그녀의 사명은, 그 사명에 동참하는 수많은 하이랜더와 함께 현실화하고 있다.


인사이트

수십 년간 세 번의 위기를 통과하며 그녀가 얻은 결론은 복잡하지 않다.

첫째, 위기는 대부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온다. IMF 외환위기도, 2002년의 파산 위기도, 2024년의 적자도 외부 충격이 방아쇠를 당겼을 수 있지만 실제 손실은 내부 구조의 취약점에서 발생했다. 공급망 리스크, 관리 공백 리스크, 조직 문화 희석 리스크. 이 세 가지는 모두 사전에 구조로 대비할 수 있는 것들이다.

둘째, 위기 대응의 핵심은 새로운 전략 추가가 아니라 기본의 복원이다. 성장기에 조직이 방향을 잃을 때 새로운 무언가를 추가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지만, 하이랜드푸드의 경험은 반대를 가리킨다. 거창한 전략보다 기본 원칙을 다시 세우는 것이 조직을 빠르게 회복시켰다.

셋째, 인프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탄탄한 물리적 거점이 있어야만 글로벌 전장에서 가격 조절력을 확보할 수 있다. 부산센터와 이천 메트로센터는 단순한 물류 시설이 아니다. 글로벌 변동성이 아무리 커도 국내 공급을 안정시킬 수 있는 완충장치이자, 운영리스크 관리의 물리적 표현이다.

마지막으로, 비즈니스는 자전거 바퀴와 같다. 굴러가야 앞으로 가는 것이지, 멈추는 순간 끝이다. 변화에 따라가는 회사는 살아남고, 예전에 하던 것만 붙잡고 있으면 결국 사라진다. 그러나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기본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27년간 하이랜드푸드를 움직여온 힘이었다.

윤영미 회장은 지금도 현장에 있다. 그것이 그녀의 가장 큰 메시지다.


2026년 2월 7일 토요일

SM엔터테인먼트, 다음 30년을 설계하는 두 사람

장철혁·탁영준 SM엔터테인먼트 공동대표 - K팝, 새로운 엔진을 켜다

K팝이라는 단어가 하나의 산업을 지칭하게 된 데에는 SM엔터테인먼트의 공이 크다. 단순한 가요 기획사를 넘어, 연습생 육성부터 글로벌 IP 확장까지 오늘날 K팝의 문법을 최초로 정립한 기업이 SM이다. 그 SM이 경영권 분쟁 이후 체질 개선을 선언하며 내세운 것이 'SM 3.0'이었고, 이제는 그 다음 단계인 '넥스트 3.0'을 공개했다. 이 전환의 중심에는 두 명의 공동대표가 있다.


두 리더, 서로 다른 뿌리에서 같은 방향으로

탁영준 대표는 2001년 SM에 매니저로 입사했다. 현장에서 출발한 사람답게 그의 관심은 언제나 아티스트와 제작 현장을 향해 있다. 유닛 시스템과 퍼포먼스 디렉팅 개념을 도입한 것도 그였다. 실험적인 음악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신인 개발에 직접 관여할 만큼 실무에 깊이 관여한다. 그의 철학은 명확하다. 성과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보상이 따라야 하며, 창작의 도전은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장철혁 대표는 CFO 출신이다. 숫자와 구조에서 출발한 그는 전사 전략과 조직 설계를 담당한다. 그가 중요하게 보는 지표는 단순한 매출이 아니다. 신인 데뷔 속도와 IP 생산력, 즉 회사가 얼마나 꾸준히 새로운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지를 핵심으로 여긴다. 향후 5년간 음악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와 M&A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구상도 그의 손에서 나온다.

두 사람은 출발점이 다르지만, 모두 '공정한 평가와 목표 지향의 성과주의'라는 원칙을 공유한다. 현장과 전략이 맞물리는 구조가 이 공동 대표 체제의 본질이다.


SM이 그리는 다음 30년

넥스트 3.0의 핵심은 기존의 멀티 프로덕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아티스트, 크리에이티브, A&R이라는 기능 조직을 통합하는 매트릭스 구조다. 프로덕션마다 존재하는 강점과 약점을 기능 조직이 횡단하며 보완하는 방식으로, 제작 효율과 창작 품질을 동시에 끌어올리겠다는 발상이다.

글로벌 음악 IP 인프라도 주목할 부분이다. 퍼블리싱 자회사 KMR을 통해 370명 이상의 글로벌 작곡가 네트워크와 7000곡 이상의 K팝 카탈로그를 보유하고 있다. 해외 작곡가의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SM의 음악은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다.

카카오와의 협업으로는 웹툰, 웹소설, 멜론 등과의 시너지를 확대하고 있으며, AI 활용에 대한 입장도 분명하다. AI는 데모곡 선별이나 영상 레퍼런스 추출 같은 반복 작업을 줄이는 도구로 활용하되, 인간의 감성을 대체하는 창작 주체로는 바라보지 않는다.

SM이 스스로 내세우는 미션은 단순하면서도 방대하다. "모든 사람이 인생을 관통하는 SM 음악 한 곡을 갖게 하는 것." 아티스트와 팬이 시공간을 넘어 연결되는 지속 가능한 글로벌 창작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그 목표다.


인사이트: 원조의 생존법

SM엔터테인먼트는 K팝이라는 장르를 만든 기업이다. 그러나 장르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영속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원조는 언제나 후발 주자의 추격을 받으며, 자신이 만든 문법 위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진다.

넥스트 3.0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라 구조적 사유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멀티 프로덕션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기능 조직으로 수평적 연결을 만드는 매트릭스 설계는, 창작 조직이 흔히 빠지는 두 가지 함정—중앙집중의 경직성과 분권화의 파편화—을 동시에 피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핑크블러드'라는 팬덤 개념도 의미심장하다. SM은 특정 아티스트의 팬이 아닌, SM이라는 레이블의 음악과 비주얼과 콘셉트의 결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집단을 오래전부터 키워왔다. 이는 단일 아티스트의 인기에 기대지 않고, 기업 자체가 하나의 IP가 되는 구조다. 아티스트가 바뀌어도 팬덤이 이어지는 세대 간 확장성이 여기서 나온다.

결국 SM이 보여주는 것은 '지속 가능한 창작 산업'의 한 모델이다. 효율을 추구하되 감성을 포기하지 않고, 글로벌을 지향하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균형. 그 균형을 30년 넘게 유지해온 기업이 다시 한번 스스로를 재설계하고 있다.


본 글은 포브스코리아 2026년 2월호(호수 202602) 커버스토리 「장철혁·탁영준 SM엔터테인먼트 공동대표 - K팝, 새로운 엔진을 켜다」(이정은 기자)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문 출처: 포브스코리아 forbeskorea.co.kr


2025년 12월 6일 토요일

박종범 영산그룹 회장: 1억 원으로 시작해 17개국을 개척한 기업인

그는 누구인가

박종범은 오스트리아를 거점으로 성장한 글로벌 자동차 부품 기업 영산그룹의 회장이다. 1990년대 후반 오스트리아에서 단돈 1억 원으로 창업해 25년 만에 17개국, 직원 1500명 규모의 기업을 일군 인물로, 동유럽·CIS·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을 한국 완성차 산업과 연결하는 공급망을 개척해왔다.

그는 단순한 사업가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한인경제무역협회(구 월드옥타)의 44년 역사상 첫 연임 회장이자 첫 유럽 출신 회장으로서, 한국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제도적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한인문화회관을 설립하고 빈 필하모닉·빈 심포니 등 세계적 오케스트라의 한국 공연을 유치하는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발자취를 남겼다.

경영 철학의 중심에는 신뢰가 있다. 그는 자본도 인맥도 없이 이국에서 시작한 창업자로서, 약속한 품질과 납기를 지키는 것이 성장의 유일한 기반이었다고 일관되게 강조한다.

창업과 도전의 서사

박종범의 창업은 선택이 아닌 생존에서 비롯되었다. IMF 외환위기 당시 기아자동차가 현대자동차에 인수되면서 오스트리아 주재원 신분을 잃게 된 것이 출발점이었다. 귀국해 재취업을 모색하는 대신, 그는 낯선 땅 오스트리아에 남아 창업의 길을 택했다.

자본도, 인맥도, 현지 언어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도 그는 무너지지 않고 시장을 탐색했다. 초기에는 서유럽 시장을 두드렸지만 한계를 빠르게 인식하고 동유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크라이나에서 제과 포장재를 공급하는 사업으로 첫 성공을 거뒀고, 이를 발판 삼아 자동차 금융 모델을 고안해 현대·기아차의 동유럽 수입을 지원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사업은 점차 제조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2007년부터 자동차 부품 제조에 진입했고, 슬로바키아·체코·튀르키예·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7개국에 법인과 공장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알제리 자동차 조립 공장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1억 원으로 시작한 기업이 매출 1조 원을 넘보는 규모로 성장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20년이었다.

신뢰를 담보로 한 위기 돌파

영산그룹의 초기 성장 과정에서 가장 극적인 위기 대응 사례는 50만 달러 클레임 사건이다. 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대규모 클레임을 회사 차원의 손실로 처리하지 않고, 박종범 회장이 2년에 걸쳐 직접 상환했다. 법적 책임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거래 상대방과의 신뢰를 우선시한 판단이었다. 이 사건은 이후 영산그룹이 동유럽 시장에서 구축한 신용의 원점이 되었다.

이는 단순한 미담이 아닌 리스크 관리 전략으로 해석해야 한다. 자본과 브랜드가 취약한 초기 기업에게 신뢰는 가장 저렴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박 회장은 단기 손실을 감수함으로써 장기적 파트너십의 기반을 마련했고, 그 관계가 시장 확장의 실질적 동력이 되었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사업 구조의 취약성

영산그룹이 직면한 최대 위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러시아 내 4개 공장이 가동을 중단했고, 1조 원에 달하던 매출은 약 2600억 원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는 특정 지역에 집중된 사업 구조가 가진 지정학적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례다.

대응 방식은 신속한 유동성 확보였다. 공장과 부동산 자산을 매각해 현금을 마련하고 조직을 재편했다. 공격적 확장보다 생존 가능한 구조로의 전환을 우선시한 판단이었다.

이 경험은 다변화된 지역 포트폴리오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17개국에 분산된 법인 구조는 단일 지역 리스크를 완충하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각국의 정치·규제 리스크를 복합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부담을 수반한다. 박 회장은 이를 직접 경험한 경영자로서, 리스크 분산과 집중 사이의 균형을 지속적으로 조율해야 하는 현실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문화·사회적 신뢰 자본 축적

팬데믹 시기에 적자를 감수하며 공연을 강행한 결정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단기 수익보다 약속 이행을 선택함으로써 문화 사업 파트너들과의 신뢰를 유지했다. 이는 재무적 판단이 아니라 관계 자산에 대한 장기 투자였다.


인사이트

박종범의 궤적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위기가 사업 방향을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주재원 신분 상실이 창업으로, 서유럽의 벽이 동유럽 개척으로, 러시아 사업 붕괴가 사업 구조 재편으로 이어졌다. 그는 계획된 전략보다 상황에 대한 빠른 재해석과 전환으로 생존했다.

두 번째 인사이트는 신뢰의 경제학이다. 자본이 부족할수록 신뢰는 더 중요한 경쟁 자원이 된다. 50만 달러 클레임 자진 상환은 감정적 결정이 아니라 신용을 기반으로 시장을 확장해야 하는 기업가의 냉정한 선택이었다. 신뢰는 이자 없이 복리로 쌓이는 자산임을 그의 사례는 증명한다.

세 번째는 신흥시장 선점의 논리다. 서유럽처럼 경쟁이 포화된 시장보다, 정보와 인프라가 부족해 진입 장벽이 체계화되지 않은 시장에서 신뢰와 현지 네트워크가 강력한 해자가 된다. 영산그룹의 성장은 이 원리의 실증이다.

마지막으로, 박 회장이 강조하는 "나이는 상관없다, 꿈은 계속 있어야 한다"는 철학은 수사가 아니다. 전쟁으로 사업의 절반을 잃은 후에도 알제리 공장 프로젝트와 문화 사업 확장을 동시에 추진하는 태도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경영자의 지속 가능성은 자산 규모가 아니라 다음 행보를 설계하는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 그것이 그가 남기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무거운 메시지다.


본 글은 포브스코리아 2025년 12월호(호수 202512) 보도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문 기사: 이정은 기자, "박종범 영산그룹 회장 - 25년 신뢰로 개척한 새 시장", 포브스코리아, 2025.11.28 출처: https://www.forbeskorea.co.kr/

2025년 11월 8일 토요일

강진모 회장과 아이티센글로벌: 오해를 이해로 바꾼 20년의 여정

사람을 믿는 사람, 강진모

강진모 회장은 2005년 아이티센글로벌을 창업하기 전까지 평범한 IT업계 직장인이었다. 그가 창업을 결심한 것은 성공에 대한 야망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묵직한 의무감에서 비롯됐다. 화려한 슬로건이나 거창한 비전 선언보다, "내가 이 사람들을 책임지겠다"는 다짐이 그의 출발점이었다.

그래서인지 강 회장의 경영 철학은 처음부터 일관됐다. "기술보다 사람"이라는 원칙이 그것이다. IT 기업의 수장이 기술이 아닌 사람을 먼저 이야기한다는 것은 다소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강 회장에게 사람은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였다. 경청하고, 관계를 쌓고, 그 관계에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그가 20년 동안 지켜온 리더십의 본질이다.


도전과 성공의 서사: 오해 속에서 쌓아온 실적

아이티센글로벌의 성장 경로는 단순하지 않았다. 창업 이후 회사는 소프트센, 굿센, 시큐센, 콤텍시스템 등 20여 개의 기업을 인수·합병하며 빠르게 몸집을 키웠다. 공공 SI(시스템통합) 시장에서 점유율 1위라는 탄탄한 기반도 이 시기에 다져졌다.

그러나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업계 일각에서는 아이티센글로벌을 두고 "무분별한 M&A로 몸집만 키운 눈사람"이라고 비판했다. M&A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인수된 기업들 간의 시너지가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이 오해는 강 회장에게 적잖은 부담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말 대신 숫자로 답했다. 2023년 이후 인수 기업들 간 시너지가 본격적으로 발현되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창립 20주년을 맞은 현재, 매출 5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강 회장이 "20년은 아이티센글로벌의 진면목을 증명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위기는 없었나? 그리고 어떻게 버텼나

물론 20년의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아이티센글로벌이 겪은 가장 큰 시험은 외부의 비판이 아니라 내부의 통합 문제였다. 빠른 속도로 여러 기업을 인수할수록, 조직 문화와 구성원의 정체성이 흔들릴 위험이 컸다.

강 회장은 이 위기를 세 가지 원칙으로 돌파했다.

첫째,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 인수 이후 대규모 인력 감축으로 단기 수익을 높이는 방식을 철저히 거부했다. 사람이 먼저라는 철학이 위기 상황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된 것이다.

둘째, 사명과 CI(기업 아이덴티티)를 성급하게 바꾸지 않는다. 인수된 기업에는 그 회사만의 브랜드와 역사가 있다. 그것을 졸속으로 지우는 것은 그 기업의 구성원들에 대한 무례이자, 축적된 신뢰를 스스로 허무는 행위라고 강 회장은 봤다.

셋째, 충분한 시간을 두고 포트폴리오를 재검토한다. 빠른 성과에 조급해하지 않고, 각 인수 기업이 그룹 내에서 제 역할을 찾을 때까지 기다렸다.

이 세 가지 원칙은 단순한 경영 지침이 아니었다. 그것은 강 회장이 창업 첫날부터 품어온 "사람을 지키겠다"는 다짐의 구체적인 실천이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분기점은 2018년이었다. 그해 아이티센글로벌은 한국금거래소를 인수했다. 순수 IT 기업이 금융 자산을 다루는 회사를 품은 것이다. 이 결정에 대한 의구심도 작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한국금거래소 인수는 이후 디지털 금융, 블록체인, 실물연계자산(RWA) 등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됐다. 하나은행과 협업해 출시한 금 실물 신탁상품은 그 가능성을 시장에서 직접 증명한 사례이기도 하다.


인사이트: 느린 확신이 빠른 결과를 만든다

아이티센글로벌의 20년을 돌아보면 하나의 역설이 눈에 띈다. 겉으로는 빠르게 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는 오히려 느린 확신으로 채워져 있었다는 점이다.

M&A를 할 때마다 즉각적인 통합 대신 충분한 시간을 뒀다. 사람을 자르는 대신 기다렸다. 브랜드를 갈아치우는 대신 존중했다. 이 모든 선택은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처럼 보였지만, 결국 조직의 신뢰와 내부 역량을 단단히 쌓는 힘이 됐다.

강 회장의 글로벌 전략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과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해외에 진출하면서 그가 주목한 것은 최첨단 기술 기업이 아니었다. 오히려 해외의 전통 산업 기업들을 인수해 IT 기술을 접목하면 가치가 폭발적으로 커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기술이 없는 곳에 기술을 가져다놓는 것, 그것이 가장 빠른 성장의 방정식이라는 것을 그는 이미 국내 M&A에서 체득하고 있었다.

2030년까지 자산 10조원 규모의 글로벌 IT 그룹을 목표로 하는 아이티센글로벌. 그 여정이 단순한 숫자 싸움이 아닌 이유는, 그 중심에 "사람을 지키겠다"는 창업자의 첫 다짐이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오해를 이해로 바꾸는 데 20년이 걸렸다. 그러나 그렇게 쌓인 이해는 어떤 화려한 PR보다 오래, 깊이 남는다.


참고: 포브스코리아 2025년 11월호 커버스토리, 강진모 아이티센글로벌 회장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