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미 회장, 그는 누구인가
한국인의 밥상이 조용히 바뀌었다. 쌀의 자리를 육류가 대신한 지 오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1인당 육류 소비량이 처음으로 쌀 소비량을 앞질렀고, 격차는 해마다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먹는 고기가 어디서 오는지, 얼마나 많은 변수를 통과해 식탁에 오르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윤영미 하이랜드푸드그룹 회장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공급망'을 20년 넘게 직접 설계하고 운영해온 인물이다. 1999년 창업 이후 하이랜드푸드그룹은 국내 수입육 시장 점유율 약 13%로 업계 1위에 올랐다. 연 매출 1조 2000억 원, 글로벌 20여 개국에서 연 15만 톤의 육류를 수입해 국내 1,700여 개 고객사에 공급하는 중견기업이다.
그러나 이 숫자 뒤에는 창업 초기의 허름한 사무실, 파산 직전의 공포, 창사 이래 첫 적자의 충격이 있다. 그때마다 윤영미 회장은 전략을 추가하는 대신 기본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다. 2024년에는 한국수입협회 55년 역사상 첫 여성 회장으로 취임하며 업계 전반의 공급망 주권을 대변하는 위치에 섰다. 57세의 나이에 그녀가 여전히 현장을 뛰는 이유는 단순하다. 글로벌 공급망은 서류 위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목장과 도축장과 물류창고 현장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창업의 동기와 배경, 그리고 하이랜드푸드
윤영미 회장은 1990년대 초 무역학을 전공했다. 당시 여성이 무역 실무에 뛰어드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1993년 선배가 운영하는 무역회사에 입사해 매달 해외 출장을 다니며 글로벌 거래의 실전 감각을 쌓았다. 가장 큰 장벽은 언어였다. 영어가 부족했던 그녀는 매일 새벽 6시 학원에서 하루를 시작했고, 중국과의 교역이 확대되자 중국어 과외까지 받았다. 숫자와 계약서보다 사람과 현장을 먼저 보는 습관이 이 시절에 만들어졌다.
전환점은 1997년 IMF 외환위기였다. 환율이 급등하자 소속 회사는 리스크 관리를 이유로 수입 사업을 축소했다. 그러나 윤영미 회장은 이미 현장에서 한국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상태였다. 한국을 유망 시장으로 보던 캐나다 파트너사가 독립을 제안했고,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20만 달러를 빌려 1999년 하이랜드푸드를 독립 법인으로 출범시켰다.
창업 초기 6개월은 중개무역에 집중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외환위기 여파로 환율이 요동치자 국내 거래처들이 대금 지급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중개수수료만으로 이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녀는 곧바로 직수입·직판 체제로 전환했다. 이것이 하이랜드푸드 공급망 내재화의 시작이었다. 초기에는 자본이 부족해 해외 생산자가 먼저 물건을 보내주고 한국에서 판매한 뒤 대금을 정산하는 방식으로 거래를 이어갔다. 그 신뢰가 쌓이며 약 10년이 지나자 하이랜드푸드의 규모가 애초 자금을 빌려준 캐나다 파트너사보다 더 커졌다.
2023년 부산에 수입·통관·보관·가공·배송을 한 곳에서 처리하는 부산센터를 완공했고, 2028년에는 이천 메트로센터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이천 메트로센터는 연면적 약 13만㎡ 규모로, 8만 팰릿 이상의 냉동 물량을 상시 비축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해외 원료육을 한국에서 가공해 다시 해외로 보내는 역수출 모델도 추진 중이다. 미국 소시지 기업과 아시아 생산 전진기지 구축 방안을 논의 중이며, 일본 식품 대기업과도 협업을 검토하고 있다.
세 번의 위기, 세 가지 대응
하이랜드푸드의 성장 서사에서 가장 중요한 챕터는 사실 위기의 순간들이다. 윤영미 회장이 어떤 경영자인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성공의 방식이 아니라 위기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첫 번째 위기: 1997년 IMF와 사업모델 리스크
창업 전부터 찾아온 첫 번째 위기는 외환위기였다. 환율이 급등하자 수입 사업 전반이 흔들렸고, 중간에서 수수료만 받던 중개무역 구조는 대금 미수와 거래 취소 리스크를 그대로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윤영미 회장의 대응은 사업모델 자체를 바꾸는 것이었다. 위기를 버티는 대신, 위기를 만든 구조를 없애버렸다. 중개무역에서 직수입·직판 체제로의 전환은 수익률 방어인 동시에 운영리스크를 내재화하는 선택이었다. 불확실한 외부 변수에 기대는 대신, 공급망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2002년 관리 공백과 내부 리스크
가장 극적인 위기는 2002년에 찾아왔다. 첫아이를 임신하면서 윤영미 회장이 현장을 챙기기 어려워지자, 그 공백이 즉각 조직 내부의 균열로 이어졌다. 일부 직원들이 태업과 부정행위를 일삼으면서 영업이 멈추고 거래대금 수금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상황은 빠르게 악화됐고 은행 대출이 연체되며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만삭의 몸으로 사무실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회고에 당시의 무게가 담겨 있다.
이 위기가 가르쳐준 것은 명확했다. 육류 유통업은 시스템만으로 돌아가는 산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장에서 쌓인 노하우와 거래 관계, 디테일한 관리가 성패를 좌우하며, 핵심 인물의 공백은 그 자체로 경영 리스크가 된다. 윤영미 회장은 이 교훈을 구조로 바꿨다. 원래 가족경영을 지향하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상황을 지켜본 남편이 자신의 커리어를 접고 하이랜드푸드에 합류했다. 이후 회사는 핵심 사업을 가족이 직접 관리하는 구조로 재편됐다. 남편이 국내 영업을 맡고 오너 일가가 가공 공장의 수율관리를 책임지면서 현장 밀착 관리 체계가 강화됐다. 외부 위임의 한계를 내부 책임 구조로 대체한 것이다.
2023~2024년 조직 성장통과 수익성 악화
세 번째 위기는 성공 직후에 찾아왔다. 2022년 창립 23년 만에 매출 1조 원을 돌파하며 독보적인 위치를 확인했지만, 그 직후부터 균열이 시작됐다. 2023년 마진율이 출렁이기 시작하더니 2024년에는 매출이 줄고 일부 계열사에서 영업적자가 발생했다. 윤영미 회장은 이를 창사 이래 처음 맞는 적자라고 표현했고, 27년 경영에서 이처럼 놀란 적이 없었다고 돌아봤다.
그녀는 위기의 원인을 외부 환경이 아닌 내부에서 찾았다. 조직이 빠르게 커지는 과정에서 하이랜드푸드만의 일하는 방식과 가치관이 흐려졌다는 판단이었다. 코카콜라도 광고를 멈추면 1등 자리를 지키기 어렵듯, 기업의 비전과 원칙도 끊임없이 반복하고 강조하지 않으면 조직 안에서 힘을 잃는다는 것이다.
대응 방식은 이번에도 같은 방향이었다. 새로운 전략을 추가하는 대신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윤영미 회장은 2025년을 '리셋의 해'로 선언하고 하이랜드푸드의 업무 원칙 5가지인 '하이파이브(Hi Five)'를 전면 재정비했다. 특히 '일을 일답게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단순히 더 오래 일하는 방식이 아니라, 업무의 질과 집중도를 높여 무너진 기본기를 다시 세우는 것이 목표였다. 동시에 임원진과 직원 모두에게 지시만 하는 보스가 아닌,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가 되길 주문했다. 글로벌 비즈니스는 시차와 변수가 많기 때문에 개개인이 독립된 경영자처럼 판단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의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2024년 하이랜드푸드는 연결 기준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운영리스크 관리 정책: 구조로 굳힌 세 가지 원칙
이 세 번의 위기를 관통하는 하이랜드푸드의 운영리스크 관리 방식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외부 변수를 내부 구조로 흡수하는 수직계열화다. 환율·운임·기후·지정학적 갈등처럼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에 노출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 공급망의 각 단계를 내재화했다. 직접계약(Direct Sourcing)으로 중간 마진을 없애고, 자체 물류·가공 인프라를 통해 외부 충격을 흡수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부산센터의 원스톱 시스템과 이천 메트로센터의 대규모 비축 능력은 이 전략의 물리적 표현이다.
둘째, 핵심 기능에 대한 직접 관리 원칙이다. 2002년 위기 이후 확립된 이 원칙은 핵심 사업일수록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직접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외부 위임이 가져오는 관리 공백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족 경영 체제를 도입했고, 현장 수율관리와 국내 영업을 오너 일가가 직접 챙기는 구조로 재편했다.
셋째, 위기 때마다 작동하는 '기본 원칙 재점검' 메커니즘이다. 하이파이브는 단순한 사훈이 아니라 조직이 흔들릴 때 돌아갈 수 있는 기준점이다. 매출 1조 돌파 이후의 조직 해이가 적자로 이어진 경험은 이 메커니즘의 필요성을 증명했다. 거창한 새 전략 대신 기본을 반복하는 것이 조직 건강성을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리스크 관리 도구라는 것이 그녀의 결론이다.
경영 철학
그녀의 경영 철학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기본으로 돌아가고, 사람을 먼저 읽어라."
글로벌 육류 시장은 통상 판매자 우위로 작동한다. 공장에서 찍어낼 수 없는 것이 농축산물이라 여러 나라가 동시에 같은 상품을 찾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에서 윤영미 회장은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먼저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요즘 어떤 상품을 팔고 싶으세요, 시장 상황은 어때요, 가장 고민되는 건 뭔가요." 상대의 사정을 파악한 다음, 한국 시장의 수요와 공급자의 애로를 연결해 양쪽 모두 돈을 버는 구조를 제안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샤부샤부용 소고기의 가공 방식 혁신이다. 기존에는 10kg 단위로 포장된 대형 부위를 국내로 들여온 뒤 해동·재냉동, 톱 절단, 재포장을 거쳐야 해 인건비와 물류비가 상당했다. 윤 회장은 해외 패커에게 냉장 상태에서 칼로 절단해 간단히 포장할 것을 제안했고, 그 결과 생산자는 더 높은 공급가를, 국내 구매자는 가공 비용 절감을 얻었다. 가격 협상이 아닌 구조 개선을 제안한 것이다.
기술에 대한 시각도 독특하다. IT를 효율 극대화의 수단이 아닌 직원의 불행 요소를 제거하는 도구로 본다. 반복적인 서류 작업, 비효율적인 공정처럼 직원을 지치게 하는 장애물을 기술로 걷어내고, 사람이 창의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녀는 경영의 본질을 직원의 불행 요소를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가장 큰 그림에서 그녀는 하이랜드푸드를 브라질의 JBS처럼 국가 식량 공급망을 책임질 수 있는 기업으로 키우고자 한다.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는 국민이 양질의 단백질을 합리적인 가격에 소비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방어기제라는 것이 그녀의 신념이다. 한국수입협회 회장으로서 '수출은 국력, 수입은 민생'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공급망 주권을 민간 네트워크로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이랜드푸드 본사 벽면에는 '희망이 클수록 사람이 크게 성장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윤영미 회장은 직원들을 '하이랜더'라고 부르고, '한국 식탁의 안녕을 지키는 전사들'이라고 칭한다. 공급망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곧 국민 식탁을 지키는 일이라는 그녀의 사명은, 그 사명에 동참하는 수많은 하이랜더와 함께 현실화하고 있다.
인사이트
수십 년간 세 번의 위기를 통과하며 그녀가 얻은 결론은 복잡하지 않다.
첫째, 위기는 대부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온다. IMF 외환위기도, 2002년의 파산 위기도, 2024년의 적자도 외부 충격이 방아쇠를 당겼을 수 있지만 실제 손실은 내부 구조의 취약점에서 발생했다. 공급망 리스크, 관리 공백 리스크, 조직 문화 희석 리스크. 이 세 가지는 모두 사전에 구조로 대비할 수 있는 것들이다.
둘째, 위기 대응의 핵심은 새로운 전략 추가가 아니라 기본의 복원이다. 성장기에 조직이 방향을 잃을 때 새로운 무언가를 추가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지만, 하이랜드푸드의 경험은 반대를 가리킨다. 거창한 전략보다 기본 원칙을 다시 세우는 것이 조직을 빠르게 회복시켰다.
셋째, 인프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탄탄한 물리적 거점이 있어야만 글로벌 전장에서 가격 조절력을 확보할 수 있다. 부산센터와 이천 메트로센터는 단순한 물류 시설이 아니다. 글로벌 변동성이 아무리 커도 국내 공급을 안정시킬 수 있는 완충장치이자, 운영리스크 관리의 물리적 표현이다.
마지막으로, 비즈니스는 자전거 바퀴와 같다. 굴러가야 앞으로 가는 것이지, 멈추는 순간 끝이다. 변화에 따라가는 회사는 살아남고, 예전에 하던 것만 붙잡고 있으면 결국 사라진다. 그러나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기본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27년간 하이랜드푸드를 움직여온 힘이었다.
윤영미 회장은 지금도 현장에 있다. 그것이 그녀의 가장 큰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