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믿는 사람, 강진모
강진모 회장은 2005년 아이티센글로벌을 창업하기 전까지 평범한 IT업계 직장인이었다. 그가 창업을 결심한 것은 성공에 대한 야망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묵직한 의무감에서 비롯됐다. 화려한 슬로건이나 거창한 비전 선언보다, "내가 이 사람들을 책임지겠다"는 다짐이 그의 출발점이었다.
그래서인지 강 회장의 경영 철학은 처음부터 일관됐다. "기술보다 사람"이라는 원칙이 그것이다. IT 기업의 수장이 기술이 아닌 사람을 먼저 이야기한다는 것은 다소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강 회장에게 사람은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였다. 경청하고, 관계를 쌓고, 그 관계에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그가 20년 동안 지켜온 리더십의 본질이다.
도전과 성공의 서사: 오해 속에서 쌓아온 실적
아이티센글로벌의 성장 경로는 단순하지 않았다. 창업 이후 회사는 소프트센, 굿센, 시큐센, 콤텍시스템 등 20여 개의 기업을 인수·합병하며 빠르게 몸집을 키웠다. 공공 SI(시스템통합) 시장에서 점유율 1위라는 탄탄한 기반도 이 시기에 다져졌다.
그러나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업계 일각에서는 아이티센글로벌을 두고 "무분별한 M&A로 몸집만 키운 눈사람"이라고 비판했다. M&A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인수된 기업들 간의 시너지가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이 오해는 강 회장에게 적잖은 부담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말 대신 숫자로 답했다. 2023년 이후 인수 기업들 간 시너지가 본격적으로 발현되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창립 20주년을 맞은 현재, 매출 5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강 회장이 "20년은 아이티센글로벌의 진면목을 증명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위기는 없었나? 그리고 어떻게 버텼나
물론 20년의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아이티센글로벌이 겪은 가장 큰 시험은 외부의 비판이 아니라 내부의 통합 문제였다. 빠른 속도로 여러 기업을 인수할수록, 조직 문화와 구성원의 정체성이 흔들릴 위험이 컸다.
강 회장은 이 위기를 세 가지 원칙으로 돌파했다.
첫째,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 인수 이후 대규모 인력 감축으로 단기 수익을 높이는 방식을 철저히 거부했다. 사람이 먼저라는 철학이 위기 상황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된 것이다.
둘째, 사명과 CI(기업 아이덴티티)를 성급하게 바꾸지 않는다. 인수된 기업에는 그 회사만의 브랜드와 역사가 있다. 그것을 졸속으로 지우는 것은 그 기업의 구성원들에 대한 무례이자, 축적된 신뢰를 스스로 허무는 행위라고 강 회장은 봤다.
셋째, 충분한 시간을 두고 포트폴리오를 재검토한다. 빠른 성과에 조급해하지 않고, 각 인수 기업이 그룹 내에서 제 역할을 찾을 때까지 기다렸다.
이 세 가지 원칙은 단순한 경영 지침이 아니었다. 그것은 강 회장이 창업 첫날부터 품어온 "사람을 지키겠다"는 다짐의 구체적인 실천이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분기점은 2018년이었다. 그해 아이티센글로벌은 한국금거래소를 인수했다. 순수 IT 기업이 금융 자산을 다루는 회사를 품은 것이다. 이 결정에 대한 의구심도 작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한국금거래소 인수는 이후 디지털 금융, 블록체인, 실물연계자산(RWA) 등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됐다. 하나은행과 협업해 출시한 금 실물 신탁상품은 그 가능성을 시장에서 직접 증명한 사례이기도 하다.
인사이트: 느린 확신이 빠른 결과를 만든다
아이티센글로벌의 20년을 돌아보면 하나의 역설이 눈에 띈다. 겉으로는 빠르게 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는 오히려 느린 확신으로 채워져 있었다는 점이다.
M&A를 할 때마다 즉각적인 통합 대신 충분한 시간을 뒀다. 사람을 자르는 대신 기다렸다. 브랜드를 갈아치우는 대신 존중했다. 이 모든 선택은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처럼 보였지만, 결국 조직의 신뢰와 내부 역량을 단단히 쌓는 힘이 됐다.
강 회장의 글로벌 전략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과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해외에 진출하면서 그가 주목한 것은 최첨단 기술 기업이 아니었다. 오히려 해외의 전통 산업 기업들을 인수해 IT 기술을 접목하면 가치가 폭발적으로 커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기술이 없는 곳에 기술을 가져다놓는 것, 그것이 가장 빠른 성장의 방정식이라는 것을 그는 이미 국내 M&A에서 체득하고 있었다.
2030년까지 자산 10조원 규모의 글로벌 IT 그룹을 목표로 하는 아이티센글로벌. 그 여정이 단순한 숫자 싸움이 아닌 이유는, 그 중심에 "사람을 지키겠다"는 창업자의 첫 다짐이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오해를 이해로 바꾸는 데 20년이 걸렸다. 그러나 그렇게 쌓인 이해는 어떤 화려한 PR보다 오래, 깊이 남는다.
참고: 포브스코리아 2025년 11월호 커버스토리, 강진모 아이티센글로벌 회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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