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6일 토요일

박종범 영산그룹 회장: 1억 원으로 시작해 17개국을 개척한 기업인

그는 누구인가

박종범은 오스트리아를 거점으로 성장한 글로벌 자동차 부품 기업 영산그룹의 회장이다. 1990년대 후반 오스트리아에서 단돈 1억 원으로 창업해 25년 만에 17개국, 직원 1500명 규모의 기업을 일군 인물로, 동유럽·CIS·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을 한국 완성차 산업과 연결하는 공급망을 개척해왔다.

그는 단순한 사업가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한인경제무역협회(구 월드옥타)의 44년 역사상 첫 연임 회장이자 첫 유럽 출신 회장으로서, 한국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제도적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한인문화회관을 설립하고 빈 필하모닉·빈 심포니 등 세계적 오케스트라의 한국 공연을 유치하는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발자취를 남겼다.

경영 철학의 중심에는 신뢰가 있다. 그는 자본도 인맥도 없이 이국에서 시작한 창업자로서, 약속한 품질과 납기를 지키는 것이 성장의 유일한 기반이었다고 일관되게 강조한다.

창업과 도전의 서사

박종범의 창업은 선택이 아닌 생존에서 비롯되었다. IMF 외환위기 당시 기아자동차가 현대자동차에 인수되면서 오스트리아 주재원 신분을 잃게 된 것이 출발점이었다. 귀국해 재취업을 모색하는 대신, 그는 낯선 땅 오스트리아에 남아 창업의 길을 택했다.

자본도, 인맥도, 현지 언어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도 그는 무너지지 않고 시장을 탐색했다. 초기에는 서유럽 시장을 두드렸지만 한계를 빠르게 인식하고 동유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크라이나에서 제과 포장재를 공급하는 사업으로 첫 성공을 거뒀고, 이를 발판 삼아 자동차 금융 모델을 고안해 현대·기아차의 동유럽 수입을 지원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사업은 점차 제조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2007년부터 자동차 부품 제조에 진입했고, 슬로바키아·체코·튀르키예·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7개국에 법인과 공장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알제리 자동차 조립 공장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1억 원으로 시작한 기업이 매출 1조 원을 넘보는 규모로 성장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20년이었다.

신뢰를 담보로 한 위기 돌파

영산그룹의 초기 성장 과정에서 가장 극적인 위기 대응 사례는 50만 달러 클레임 사건이다. 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대규모 클레임을 회사 차원의 손실로 처리하지 않고, 박종범 회장이 2년에 걸쳐 직접 상환했다. 법적 책임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거래 상대방과의 신뢰를 우선시한 판단이었다. 이 사건은 이후 영산그룹이 동유럽 시장에서 구축한 신용의 원점이 되었다.

이는 단순한 미담이 아닌 리스크 관리 전략으로 해석해야 한다. 자본과 브랜드가 취약한 초기 기업에게 신뢰는 가장 저렴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박 회장은 단기 손실을 감수함으로써 장기적 파트너십의 기반을 마련했고, 그 관계가 시장 확장의 실질적 동력이 되었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사업 구조의 취약성

영산그룹이 직면한 최대 위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러시아 내 4개 공장이 가동을 중단했고, 1조 원에 달하던 매출은 약 2600억 원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는 특정 지역에 집중된 사업 구조가 가진 지정학적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례다.

대응 방식은 신속한 유동성 확보였다. 공장과 부동산 자산을 매각해 현금을 마련하고 조직을 재편했다. 공격적 확장보다 생존 가능한 구조로의 전환을 우선시한 판단이었다.

이 경험은 다변화된 지역 포트폴리오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17개국에 분산된 법인 구조는 단일 지역 리스크를 완충하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각국의 정치·규제 리스크를 복합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부담을 수반한다. 박 회장은 이를 직접 경험한 경영자로서, 리스크 분산과 집중 사이의 균형을 지속적으로 조율해야 하는 현실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문화·사회적 신뢰 자본 축적

팬데믹 시기에 적자를 감수하며 공연을 강행한 결정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단기 수익보다 약속 이행을 선택함으로써 문화 사업 파트너들과의 신뢰를 유지했다. 이는 재무적 판단이 아니라 관계 자산에 대한 장기 투자였다.


인사이트

박종범의 궤적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위기가 사업 방향을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주재원 신분 상실이 창업으로, 서유럽의 벽이 동유럽 개척으로, 러시아 사업 붕괴가 사업 구조 재편으로 이어졌다. 그는 계획된 전략보다 상황에 대한 빠른 재해석과 전환으로 생존했다.

두 번째 인사이트는 신뢰의 경제학이다. 자본이 부족할수록 신뢰는 더 중요한 경쟁 자원이 된다. 50만 달러 클레임 자진 상환은 감정적 결정이 아니라 신용을 기반으로 시장을 확장해야 하는 기업가의 냉정한 선택이었다. 신뢰는 이자 없이 복리로 쌓이는 자산임을 그의 사례는 증명한다.

세 번째는 신흥시장 선점의 논리다. 서유럽처럼 경쟁이 포화된 시장보다, 정보와 인프라가 부족해 진입 장벽이 체계화되지 않은 시장에서 신뢰와 현지 네트워크가 강력한 해자가 된다. 영산그룹의 성장은 이 원리의 실증이다.

마지막으로, 박 회장이 강조하는 "나이는 상관없다, 꿈은 계속 있어야 한다"는 철학은 수사가 아니다. 전쟁으로 사업의 절반을 잃은 후에도 알제리 공장 프로젝트와 문화 사업 확장을 동시에 추진하는 태도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경영자의 지속 가능성은 자산 규모가 아니라 다음 행보를 설계하는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 그것이 그가 남기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무거운 메시지다.


본 글은 포브스코리아 2025년 12월호(호수 202512) 보도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문 기사: 이정은 기자, "박종범 영산그룹 회장 - 25년 신뢰로 개척한 새 시장", 포브스코리아, 2025.11.28 출처: https://www.forbeskorea.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