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8일 수요일

왜 미국 소비자들은 타겟 참치에 70억을 청구했나

타겟(Target) 참치 소송: 당신이 사는 '착한 참치'는 정말 착한가?


왜 그린워싱인가

"지속가능하게 포획했습니다(Sustainably Caught)."

마트에서 참치 캔을 집어 들 때 이런 문구를 본 적 있는가? 푸른 바다, 건강한 생태계, 책임감 있는 어업. 그 짧은 문구 하나가 소비자의 손을 움직인다. 실제로 많은 소비자들이 친환경 인증이나 문구를 보고 기꺼이 조금 더 비싼 제품을 선택한다.

문제는, 그 문구가 현실과 다를 때다.

미국 유통 대기업 **타겟(Target)**의 자체 PB 브랜드 **굿 앤 개더(Good & Gather)**가 바로 그 지점에서 집단소송에 휘말렸다. 소비자 100명 이상이 원고로 참여한 이 소송의 청구금액은 약 500만 달러(한화 약 70억 원). 핵심 주장은 하나다.

"당신들은 소비자를 속였다."

제품에는 국제 해양관리협의회, MSC(Marine Stewardship Council) 인증 마크까지 붙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 공급업체인 **볼턴 그룹(Bolton Group)**의 어업 방식은 전혀 달랐다.

  • 연승어업(longline fishing):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낚싯줄에 수천 개의 바늘을 달아 바다에 던지는 방식. 바다거북, 상어, 바닷새 등 목표하지 않은 멸종위기종이 대량으로 혼획된다.
  • 선망어업(purse seine fishing): 거대한 그물로 물고기 떼 전체를 포위해 건져 올리는 방식. 물개, 상어, 바다거북이 함께 잡혀 올라온다.

원고 측은 타겟이 공급망의 이 같은 생태 파괴 문제를 알고도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지속가능'이라는 단어를 앞세워 친환경 이미지를 판매했지만, 실제 어업 현장은 그 반대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린워싱(Greenwashing)**이다. 실제보다 환경 친화적으로 보이게 포장하는 마케팅 기법. 소비자의 선의와 신뢰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다.


타겟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산물 그린워싱 소송의 흐름

타겟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수산물을 둘러싼 그린워싱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주요 사례들을 살펴보자.

Gorton's (고튼스) 미국의 대표적인 냉동 수산물 브랜드. '책임감 있는 어업(Responsibly Sourced)'이라는 문구와 MSC 인증을 내세웠지만, 실제 공급망에서의 혼획 문제와 어업 방식이 마케팅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을 받으며 소송에 휘말렸다.

ALDI 독일계 글로벌 할인마트 ALDI의 미국 법인도 자사 수산물 제품의 지속가능성 표시를 두고 유사한 소비자 소송을 경험했다. 저가 전략과 친환경 마케팅이 양립할 수 없다는 소비자 불신이 배경에 깔려 있다.

Mowi (모위) 세계 최대 양식 연어 기업인 노르웨이의 모위(구 Marine Harvest)도 도마에 올랐다. 양식 연어의 항생제 사용, 사료 문제, 해양 생태계 오염 등을 둘러싸고 '지속가능한 양식'이라는 홍보 문구가 과장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Conagra & Bumble Bee 미국 수산물 캔 시장의 대표 주자들인 이 두 기업도 참치 제품의 친환경 인증 및 표시와 관련해 소비자 단체와 법적 분쟁을 겪었다. MSC 인증의 실효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소송도 포함됐다.

Red Lobster (레드 랍스터) 미국 최대 해산물 레스토랑 체인 레드 랍스터 역시 메뉴판에 표기한 지속가능 수산물 관련 문구가 실제와 다르다는 이유로 소송을 받았다. 식당 업계로까지 그린워싱 소송이 번진 사례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소비자의 환경 의식이 높아질수록, 기업의 친환경 주장에 대한 법적 책임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그린워싱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우리는 지금 '착한 소비'의 시대를 살고 있다. 환경을 생각하고, 동물 복지를 고려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소비 결정을 내린다. 그 자체는 분명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 선의(善意)가 기업에게 마케팅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친환경', '지속가능', '자연산', '책임 어업'이라는 단어들은 이제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열쇠가 됐다. 문제는 이 단어들을 검증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MSC 같은 국제 인증도 완벽하지 않다. 인증을 받은 어업 방식이 실제 어장에서 그대로 지켜지는지 감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 문구보다 인증의 내용을 살펴보자. MSC, ASC 등 인증의 의미와 한계를 이해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 브랜드의 공급망 투명성을 확인하자. 어디서, 어떻게 잡혔는지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는 기업인지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 집단적 목소리가 변화를 만든다. 이번 타겟 소송처럼, 소비자의 법적 대응이 기업 행동을 바꾸는 강력한 수단이 되고 있다.

타겟의 참치 캔 한 개의 이야기는 결국 이 질문으로 돌아온다.

당신이 사는 '착한 제품'은 정말 착한가?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그린워싱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2026년 4월 6일 월요일

관리가 잘 되던 회사도 안전이 부실해질 수 있는 이유

수익성 좋은 회사가 왜 — 안전에는 구멍이 있었나

2026년 3월 20일, 대전 대덕구 문평동 · 화재로 인한 참사의 구조적 분석


먼저, 이 회사는 어떤 곳이었나

A자동차부품은 1953년에 설립된, 7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자동차·선박용 엔진 밸브 전문 제조사다. 현대차, 기아차는 물론 미국 크라이슬러,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등 해외 완성차 업체와도 OEM 계약을 맺고 제품을 납품해왔다. 2024년 기준 연매출은 1,351억 원, 직원 364명 규모의 중견기업이다. 국내 최초로 하이브리드 차량용 중공 밸브를 국산화해 연간 1,000억 원 이상을 수출한 공로로, 화재가 나기 불과 얼마 전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이 회사는 '잘 관리되는 기업'의 범주에 속했다. 그렇기에 화재 이후 언론이 일제히 쏟아낸 '안전 불감증', '관리 부실' 같은 보도들이 낯설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수익성이 높고 수출 실적까지 탄탄한 회사가, 정말 안전을 방치하고 있었던 걸까.


화재 이후 보도들이 말한 것

사고 직후 쏟아진 기사들은 공통적으로 세 가지를 지목했다. 화재 확산을 키운 샌드위치 패널 구조, 불법 증축으로 막혀버린 대피로, 그리고 물과 닿으면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금수성 물질인 나트륨의 부적절한 관리였다.

노조 위원장은 화재 이틀 뒤 직접 브리핑에 나서 "집진시설과 공조·배관 등 화재 위험 요소 개선을 산업안전보건회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고 밝혔다. 유증기와 기름 찌꺼기가 천장에 축적될 가능성을 반복해서 지적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방 점검에서는 펌프 압력 미달 지적을 받은 기록도 확인됐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안전을 소홀히 한 회사'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수익성과 안전관리는 같은 축이 아니다

A자동차부품이 70년간 꼼꼼하게 관리해온 것은 '생산 효율'과 '품질'이었다. 현대차 같은 대형 완성차 업체와 OEM 계약을 유지하려면 납기, 불량률, 단가 경쟁력이 핵심이다. 그 축에서는 흔들림이 없었기 때문에 은탑산업훈장까지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안전관리가 그 축과 다른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안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집진시설을 교체하든 안 하든, 내일 당장 공장은 돌아간다. 나트륨 보관 방식을 바꾸지 않아도 수주는 끊기지 않는다. 반면 생산 라인이 하루 멈추면 납기 일정이 어긋나고 거래처와의 관계에 금이 간다. 기업이 어디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는 구태여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이것이 잘 나가는 회사가 안전을 '방치'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실제로는 방치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이며, 그 우선순위가 뒤틀리도록 만든 구조의 문제다.


법 안에 있었다는 것의 역설

이 사고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A자동차부품이 대부분의 문제를 '법적으로 허용된 범위 안에서' 운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공장은 연면적 3만㎡ 기준에 미치지 못해 소방당국의 화재안전 중점관리대상에서 제외돼 있었다. 나트륨이라는 특수 위험물을 취급하는 공장임에도, 관리 기준은 '위험도'가 아닌 '면적'으로 나뉘었다. 소방 점검은 연 2회, 사측이 지정한 민간 업체가 담당했다. 샌드위치 패널은 2021년 이후 신축 건물엔 준불연 자재 사용이 의무화됐지만, 그 이전에 지어진 기존 건물에는 소급 적용이 없었다. A자동차부품의 공장은 그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나트륨 100㎏은 위험물안전관리법상 지정수량인 10㎏의 열 배였다. 전용 소화 설비를 갖춰야 하는 수량이었지만, 이 공장에는 D급 금속화재에 대응할 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소방 당국은 초기에 나트륨 때문에 물을 쓸 수 없었고, 이를 안전 구역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골든타임을 허비해야 했다. 10시간 30분 만에 겨우 불길이 잡혔을 때, 사망자는 14명이었다.


이 사고가 실제로 말하는 것

화재 후 대표이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입건됐다. 책임은 물어야 하고, 수사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 사고를 '한 회사의 안전 불감증'으로만 읽으면, 다음 사고를 막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조는 위험 요소를 반복해서 지적했다. 법이 허용한 구조 안에서 공장은 운영됐다. 민간 점검은 통과했다. 그럼에도 74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이것은 개인의 불찰을 넘어선 무언가를 가리킨다.

위험도가 아닌 면적으로 나뉘는 관리 체계, 민간에 위탁된 형식적인 점검, 구건물에 소급 적용되지 않는 건축 기준, 특수 위험물에 맞지 않는 대응 설비 기준. 이 구조는 A자동차부품 이전에도 있었고, 이번 사고 이후에도 손대지 않으면 그대로 남는다.

2024년 경기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로 23명이 숨졌다. 전문가들이 지목한 구조적 원인은 이번과 거의 같았다. 특수 위험물로 인한 초기 대응 지연, 빠른 연소 확대를 부르는 건물 구조, 형식에 그친 점검 체계. 그리고 2년이 채 되지 않아, 대전에서 14명이 또 같은 방식으로 숨졌다.

비난보다 앞서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같은 구조 안에서 얼마나 더 기다릴 것인가.


알레오 인사이트


"사고가 나면 사건 처리로 끝나고, 구조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연세대 조원철 교수가 이번 화재를 두고 한 말이다. 아리셀 참사 이후에도 같은 말이 나왔고, 그 이전 이천 물류창고 화재 때도 같은 말이 나왔다. 문제는 이 말이 매번 새 사고의 잔해 앞에서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번 화재에서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짚은 지점은 크게 세 가지다.

  1. 첫 번째는 위험물 분류 체계의 불일치다. 나트륨은 소방 분류상 D급 금속 화재에 해당하는 물질로, 물과 접촉하면 수소 가스와 막대한 반응열을 발생시켜 폭발적 연소로 이어진다. 그런데 현장에는 이에 대응할 전용 소화 설비가 없었다. 전문가들은 "금속 화재는 한 번 발생하면 대응 자체가 제한되는 특수 영역"이라고 말한다. 일반 화재와 같은 기준으로 취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험물을 다루는 사업장의 안전 설비 기준이 위험물의 종류가 아닌 보관 면적이나 수량 기준에만 묶여 있는 한, 이런 빈틈은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
  2. 두 번째는 건축 기준의 시간차 문제다. 샌드위치 패널은 1970년대 이후 국내 공장과 창고에 광범위하게 쓰여온 자재다. 화재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수십 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고, 정부도 2021년에야 신축 건물에 준불연 자재 사용을 의무화했다. 문제는 그 이전에 지어진 수많은 건물이다. 소급 적용이 없으니, 노후 산업단지는 여전히 과거 기준의 건물 안에서 오늘의 공정을 돌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면 철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최소한 소방 시설 보강과 점검 횟수 확대라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법 기준을 통과한 건물이라도 위험도 기준으로는 별도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3. 세 번째는 점검 체계의 구조적 허점이다. 현재 많은 사업장의 소방 점검은 사측이 지정한 민간 업체가 연 1~2회 진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구조다. 점검 업체 입장에서는 지적 사항을 최소화하는 것이 재계약에 유리하고, 사업장 입장에서는 점검을 통과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다. 실질적인 위험 탐지보다 서류 완비에 초점이 맞춰지는 이유다. 조원철 교수가 이를 '구조적 방치'라고 표현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결국 이번 사고가 드러낸 것은 세 가지 체계가 동시에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험물 관리 기준, 건축물 안전 기준, 점검 체계. 어느 하나만 제대로 작동했어도 피해의 규모는 달라졌을 수 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면적이나 형식 기준이 아닌 실질 위험도 기준으로의 전환, 위험물 취급 사업장에 대한 전수 점검과 전용 소화 설비 의무화, 노후 산업단지에 대한 소방 안전망의 근본적인 재설계다. 그리고 이 모든 논의가 이번에도 사고 처리로 끝날지, 아니면 구조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지금부터의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2026년 4월 5일 일요일

부활절, 리스크 관리자의 고백 — 신앙인으로서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

 

리스크를 관리하는 사람도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관리할 수 없다 — 부활절은 그 무력함을 은총으로 바꾸는 날이다..


수십 년간 기업의 리스크를 분석하고, 불확실성을 수치화하고,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왔다. 손실 가능성을 계량하고, 보험 프로그램을 설계하며, 조직이 위기 앞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돕는 것이 나의 직업적 소명이었다. 그런데 매년 부활절이 되면, 나는 그 모든 분석의 도구를 내려놓고 전혀 다른 질문 앞에 선다. "나 자신의 내면은 과연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이 글은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오랜 비즈니스 현장에서 인간과 조직의 위기를 목격해온 전문가로서, 부활절 앞에 마음을 새롭게 하는 나의 개인적 성찰이다.

  1. 리스크를 관리하는 사람도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리스크 관리의 본질은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오래 일할수록 하나의 진실이 분명해진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은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평판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치밀하게 설계한 보험 프로그램도 예상치 못한 변수 앞에서 빈틈을 드러낸다. 나는 그 빈틈을 수없이 목격했다.

부활절은 내게 이것을 상기시킨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것 — 죽음과 부활 — 을 하느님은 이미 당신의 손 안에 두셨다는 사실을. 리스크 관리자로서의 나는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도록 훈련되어 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서의 나는 그 불확실성 너머에 섭리가 있음을 믿도록 초대받는다. 부활절마다 나는 이 두 자아 사이의 긴장을 직면하고, 그 긴장 안에서 비로소 진짜 내려놓음을 배운다.

  1. 완고함이라는 내면의 리스크

오랜 직업적 경험은 판단력을 키우지만, 동시에 완고함이라는 내면의 리스크를 키우기도 한다. 수많은 케이스를 다뤄온 전문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이미 알고 있다"는 확신으로 굳어간다. 가정에서도, 신앙 공동체에서도, 그 굳음은 관계의 벽이 된다.

부활절 고해성사는 내게 단순한 의례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쌓아온 전문적 자만심, 오래된 원망, 그리고 변화를 거부하는 내면의 경직성을 하나씩 꺼내 놓는 시간이다. 무덤의 돌이 굴려지려면 먼저 그 돌이 내 안에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부활절은 그 인정을 요청하는 계절이다.

  1. 남은 소명 — 전문성을 넘어선 섬김으로

리스크 관리와 기업 보험 분야에서 쌓아온 경험과 지식은 분명 가치 있는 자산이다. 그러나 부활절이 되면 나는 묻는다. "이 전문성이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를 위한 섬김의 도구인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먼저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셨다. 권위나 지식을 내세우지 않으셨다. 나는 그 모습에서, 내 남은 전문적 여정이 어떤 태도로 걸어가야 하는지를 본다. 더 많은 계약, 더 높은 성과가 아니라 —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내가 자문하는 기업들에게, 그리고 신앙 공동체에게 진심으로 평화를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올 부활절 내가 새롭게 다짐하는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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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4일 토요일

연구실에서 시장으로 — 차미선 대표가 걷는 재생의료의 길

"좋은 기술이 왜 산업으로 이어지지 못하는가." 이 물음 하나가 한 연구자를 창업가로 바꾸었다. 메디팹 차미선 대표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그것은 과학과 시장 사이의 거리를 스스로 좁혀온 퍼스트무버의 사유다.


1. 연구자의 눈으로 시장을 본다는 것

부산대와 서울대에서 연구자로 살아온 차미선 대표에게 창업은 어쩌면 낯선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실험실 안에서 해답을 찾는 대신, 기술이 세상과 만나는 접점을 직접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그 출발점은 단순한 사업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왜 이렇게 좋은 기술이 산업으로 이어지지 못하는가"라는 깊은 문제의식이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키토산과 탈세포기질(dECM)이라는 두 가지 소재였다. 수용성 키토산 플랫폼 키토젠(Chitogen™), 탈세포기질 기반 리젠트릭스(Regentrix™), 두 기술을 결합한 키토제닉스(Chitogenix™)—이 세 가지 핵심 기술 위에 그는 단일 제품이 아니라 '재생 플랫폼'이라는 개념 자체를 설계했다.

"실행이 전략을 이긴다. 시장이 곧 실험실이다." — 차미선, 메디팹 대표

이 원칙은 추상적 구호가 아니었다. 스킨케어 브랜드 레스노베(Lesnove)로 시장에 먼저 진입하고, 두피 재생 의료기기 인증을 획득하며 탈모 시장으로 확장하고, 이제 서울대병원과 함께 골관절염 치료제 국가 과제를 진행하는 —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일관된 플랫폼 전략의 실행이었다.

성장 4단계

  • 1단계: 부산대·서울대 연구 기반, 기술의 산업화 문제의식으로 메디팹 설립
  • 2단계: 키토젠·리젠트릭스·키토제닉스 플랫폼 완성, LTG 기술로 시술 편의성 확대
  • 3단계: 스킨케어→탈모→관절재생까지 플랫폼 확장, 2024년 매출 100억 달성
  • 4단계: 누적 290억 투자 유치(시리즈B 238억 포함), 2027~2028 코스닥 상장 목표

핵심 수치

  • 누적 투자 유치 290억 (시리즈B 238억 포함)
  • 2026년 매출 목표 300억 (2024년 100억 대비 3배 성장)
  • 코스닥 상장 목표 2027~2028년 (임상·인허가 기반 검증 우선)

2. 차미선 대표 리더십의 세 가지 얼굴

차미선 대표의 리더십은 '연구자 출신 CEO'라는 단순한 수식어로 요약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특별함은 연구자의 엄밀함과 창업가의 실행력이 공존한다는 점에 있다.

① 기술-제품-매출-재투자 구조를 직접 설계한다

외부 전략가에게 맡기지 않는다. 핵심 기술에서 시장 진입 전략, 매출 구조, 재투자 사이클까지 — 연구자 출신답게 전체 시스템을 스스로 이해하고 설계한다. 이것이 메디팹이 단일 제품 기업이 아닌 '재생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② 조직의 체질을 바꾸는 리더

연구개발 중심에서 시장 중심 조직으로의 체질 개선 — 이것은 선언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차 대표는 "시장이 곧 실험실"이라는 원칙을 내부 문화로 정착시키며, 속도보다 검증을 우선하는 균형 감각을 유지한다. 상장도 빠른 출구보다 임상·인허가 기반 신뢰 확보를 먼저 선택한 것이 그 증거다.

③ 노화의 패러다임 자체를 재정의한다

경쟁사가 '외형 개선'을 말할 때, 차 대표는 '인체의 재생 능력 활성화'를 말한다. 미용에서 재생으로, 재생에서 치료제로 — 이 방향성 자체가 이미 시장을 창출하는 리더십이다. "100년 가는 글로벌 재생의료·항노화 기업"이라는 비전은 허황된 구호가 아니라 플랫폼 전략의 논리적 귀결이다.


3. 다른 경영자들에게 주는 세 가지 메시지

차미선 대표의 여정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재생의료'라는 업종에 한정되지 않는다. 업종을 초월해 적용 가능한 경영 사유가 그 안에 있다.

A. 문제의식이 곧 비즈니스 모델이다

"좋은 기술이 산업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순수한 문제의식이 창업의 씨앗이 되었다. 많은 경영자가 시장 기회를 찾으려 하지만, 차 대표는 시장의 구조적 결함을 먼저 보았다. 불편함과 모순이 보이는 곳에 진짜 기회가 있다.

B. 플랫폼을 팔아라, 제품을 팔지 마라

메디팹의 경쟁력은 특정 제품이 아니라 키토젠·리젠트릭스라는 재생 플랫폼에서 나온다. 스킨케어, 탈모, 관절 재생 — 세 개의 다른 시장이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된다. 제품을 팔면 시장이 하나지만, 플랫폼을 구축하면 시장이 확장된다.

C. 속도보다 검증, 검증 위에 속도

상장을 서두르지 않고 임상과 인허가로 신뢰 기반을 먼저 쌓는 판단 — 이것이 단기 지표에 쫓기는 경영과 100년 기업을 지향하는 경영의 차이다. 그러나 검증이 완료된 영역에서는 빠르게 확장한다. 균형 감각이 리더십의 핵심이다.


마치며

차미선 대표는 재생의료라는 새로운 언어를 시장에 가르치고 있다. 연구실에서 출발한 문제의식이 290억의 투자로, 세 개의 시장 진입으로, 그리고 글로벌 항노화 기업이라는 비전으로 구체화되는 과정 — 그것은 단순한 창업 성공담이 아니라, 지식과 실행 사이의 거리를 스스로 좁혀온 한 사람의 깊은 사유다.

퍼스트무버는 가장 빠른 사람이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먼저 상상하는 사람이다.


불 꺼진 세상을 걷는 법 —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로 읽는 리스크 관리


생존이란 단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지키기 위해 살아남는가의 문제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 『더 로드』는 문명이 완전히 붕괴된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하늘은 재로 뒤덮여 있고, 식물은 모두 죽었으며, 살아남은 인간들은 서로를 먹이로 삼는다. 그 속에서 한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남쪽을 향해 걷는다. 목적지가 안전하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걷는다.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이것이 단순한 디스토피아 소설이 아님을 직감했다. 이것은 불확실성 속에서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다시 말해, 리스크 관리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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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는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다

소설 속 아버지는 완벽한 안전을 추구하지 않는다. 완벽한 안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모든 선택은 '어느 리스크를 감수하고, 어느 리스크를 피할 것인가'의 연속이다. 식량이 담긴 지하실을 발견했을 때, 그는 덫일 수 있다는 위험을 알면서도 들어간다. 굶어 죽는 리스크가 더 크기 때문이다.

현실의 리스크 관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우리는 항상 두 가지 이상의 리스크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역시 리스크다. 현금만 보유하면 인플레이션 리스크에 노출되고, 투자하면 시장 리스크에 노출된다. 중요한 것은 어느 위험이 자신의 목표와 상황에 더 치명적인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것의 힘

아버지는 항상 최악을 가정한다. 도시에 들어가기 전, 그는 '여기서 포위당하면 어떻게 탈출할까'를 먼저 생각한다. 수중에 총알이 몇 발 남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아들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선택지까지 마음속에 준비해두고 있다. 이것은 비관주의가 아니다. 이것은 스트레스 테스트다.

리스크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 중 하나는 시나리오 분석이다. '모든 것이 잘 풀릴 경우'만 계획하는 사람과, '모든 것이 무너질 경우'까지 대비하는 사람의 생존율은 위기 앞에서 극명하게 갈린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살아남은 기관들은 대부분 미리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유동성을 확보해둔 곳들이었다. 최악을 상상하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준비다.


신뢰의 경제학 — 누구와 함께 걷는가

소설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는 자연재해가 아니다. 다른 인간이다. 아버지는 처음 마주치는 사람을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아들은 아버지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저 사람도 착한 사람이에요?" 아이의 질문은 단순히 감정적이지 않다. 그것은 협력 가능한 파트너를 식별하려는 본능적인 리스크 판별이다.

조직과 비즈니스에서도 파트너 리스크는 종종 가장 과소평가되는 리스크다. 계약서가 완벽해도, 상대방의 신용이나 의지가 흔들리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누구와 일할지, 누구와 자원을 나눌지를 결정하는 것 자체가 핵심적인 리스크 관리 행위다. 공급망 리스크, 파트너십 리스크, 인사 리스크 — 이 모두는 결국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의 문제로 수렴한다.


목적 없는 생존은 지속 불가능하다

소설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버티게 하는 것은 체력이나 식량이 아니다. '불을 운반한다'는 감각이다. 이 불은 인간성의 상징이자, 살아남아야 할 이유다. 아버지는 몸이 무너져가면서도 아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마지막 에너지를 쏟는다.

리스크 관리에서 흔히 간과되는 것이 있다. 바로 '왜 이 리스크를 관리하는가'라는 목적의 명확성이다. 리스크 관리는 손실을 줄이는 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다. 어떤 가치와 목표를 지속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기업이 위기 상황에서 브랜드를 지키려 할 때, 그 이면에는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한다. 그 답이 없으면, 위기가 지나간 후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더 로드』는 희망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무너진 세계에서도 아버지는 아들에게 계속 나아갈 이유를 만들어준다. 리스크 관리도 결국 같은 지점으로 돌아온다. 위험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 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한 것.

당신의 불은 지금도 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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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3일 금요일

Fastenal Company의 안전 우수성을 향한 여정: 준수를 넘어 문화로

안전 문화는 사고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나기 전에 스스로 바꾸는 결단이 만든다.


산업안전 분야에서 가장 흔히 반복되는 실수는 '사고가 나야 바뀐다'는 사후 대응 논리에 갇히는 것이다. 미국 산업용 부품 유통 기업 Fastenal Company는 이 논리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중대 사고가 없었음에도 2013년 스스로 안전 체계를 전면 재검토하며 규제 준수(Compliance) 중심에서 직원 보호 중심의 문화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이 자발적 혁신의 여정은 2021년 미국 산업안전 전문 매체 EHS Today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기업(America's Safest Companies)' 중 하나로 공식 인정받는 결과로 이어졌다. 본 글은 Fastenal의 안전 프로그램 구조와 수상 의미를 분석하고, 한국 건설업이 참고해야 할 실무적 함의를 도출한다.


1. 프로그램의 구조: Big 4 Journey와 국제 표준의 결합

Fastenal 안전 혁신의 핵심은 위험의 우선순위화다. Safety Leadership Conference(SLC) 참여를 계기로 자체 사고 데이터를 심층 분석한 결과, 중대 부상의 대부분이 네 가지 작업 유형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이른바 'Big 4'로 명명된 이 항목은 락아웃/태그아웃(에너지 차단), 고소 작업, 동력 산업용 트럭 운용, 트레일러 고정이다.

2018년 시작된 'Big 4 Journey' 프로그램은 이 네 영역에 자원과 교육을 집중 투입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결과는 명확했다. 중대 부상 건수, 고중증 보험 청구, 규제 위반 사건이 모두 감소했다. 이후 Fastenal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ISO 14001(환경경영시스템)과 ISO 45001(산업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기반으로 내부 EHS(Environment, Health & Safety) 시스템을 체계화했다. 개별 프로그램의 성공을 국제 표준 프레임워크로 제도화함으로써 지속 가능성을 확보한 것이다.


2. 수상의 의미: EHS Today 'America's Safest Companies'

EHS Today의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기업' 인증은 단순한 사고율 통계가 아닌, 안전 문화의 성숙도를 종합 평가하는 기준으로 알려져 있다. Fastenal이 2021년 이 인증을 받은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째, 출발점이 위기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기업이 중대 사고나 규제 제재 이후 안전 투자를 확대하는 반면, Fastenal은 사전적·자발적 전환을 선택했다. 이는 안전을 비용이 아닌 경영 전략으로 내재화했음을 의미한다.

둘째, 수상이 종착점이 아니라는 점이다. Fastenal은 2025년 Safety Leadership Conference에서 지금까지의 여정과 향후 안전 전략을 발표할 예정이다. 외부 인정 이후에도 개선을 지속하는 이 태도 자체가 안전 문화의 본질을 보여준다.


3. 한국 건설업에 대한 함의

한국 건설업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 최상위권에 머물러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2022년) 이후 안전 투자가 늘었으나, 상당수 기업이 법적 리스크 회피 차원의 대응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Fastenal의 사례는 이 지점에서 세 가지 실무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 번째는 위험의 선택과 집중이다. Fastenal이 수천 건의 데이터를 분석해 'Big 4'를 도출했듯, 한국 건설 현장도 기업별·현장별 사고 데이터를 정밀 분석해 핵심 위험 유형을 규명하고 자원을 집중 배분해야 한다. 추락, 끼임, 충돌 등 반복 유형에 대한 선제적 집중 관리가 실질적 효과를 낼 수 있다.

두 번째는 국제 표준의 내재화다. ISO 45001 인증 취득 자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당 프레임워크를 현장 운영 시스템과 연계해 실질적 관리 도구로 작동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세 번째는 문화 전환의 자발성이다. 규제 대응형 안전 투자는 규제가 바뀌면 흔들린다. Fastenal이 보여준 것처럼, 경영진이 사고 발생 이전에 스스로 체계를 점검하고 개선을 선언하는 자발적 리더십이 안전 문화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한다.


참고 자료

본 글은 EHS Today 및 Safety Leadership Conference(SLC)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Fastenal Company의 공식 ESG·EHS 보고 내용을 참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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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현장의 안전 패러다임 전환: 스마트 PPE에서 클라우드 EHS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시대에 건설 안전의 경쟁력은 장비의 수준이 아니라 데이터를 생산하고 입증하는 체계의 완결성에서 결정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대의 건설 안전: 기술이 '사후 대응'을 끝낸다

AWP Safety EHS 부사장 라이언 도빈스(Ryan Dobbins)가 미국 EHS 전문 매체 EHS Today에 기고한 분석(2025)은, 스마트 PPE부터 클라우드 기반 EHS 플랫폼까지 5가지 핵심 기술이 건설 현장의 안전 패러다임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실무 관점에서 정리한다. 도빈스는 미국 33개 주와 캐나다 4개 주에서 연간 100만 개 이상의 작업 구역을 관리하는 AWP Safety의 안전 총괄로서, 이 글에 현장 기반의 높은 신뢰도를 부여한다. 한국 건설 산업은 지금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강력한 규제 압박 아래에 있다. 이 5가지 기술은 단순한 장비 도입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 의무 이행과 실질적 사고 예방을 동시에 달성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읽혀야 한다.

  1. 중대재해처벌법이 요구하는 것: '경영자 책임'의 입증 구조

2022년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건설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핵심은 처벌 자체보다 '안전 의무 이행의 사전 입증'에 있다. 법원과 고용노동부는 기업이 위험을 인지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그에 대응한 체계적 조치를 취했는가를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이 지점에서 기술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직관과 경험에 의존한 구두 안전 관리는 법적 증거 능력이 없다. 반면 데이터로 기록되고 클라우드에 저장된 안전 관리 이력은, 기업이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음을 입증하는 실질적 근거가 된다.

  1. 5가지 기술의 전략적 재해석: 규제 대응 도구로서의 가치

도빈스가 제시한 5가지 기술 각각은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맥락에서 구체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스마트 PPE(헬멧, 조끼, 웨어러블 센서)는 GPS·근접 센서·생체신호 모니터링을 통합해 제한구역 무단 접근, 장비 충돌 위험, 낙상·열사병 징후를 실시간으로 감지한다. 한국 건설 현장의 현실을 고려하면 이 기술의 의미는 더욱 선명해진다. 60대 이상 고령 작업자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웨어러블 기반 열사병·낙상 조기 경보는 인명 보호와 경영자 의무 이행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충족한다. 고용노동부가 스마트 안전장비 도입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 방향과도 자연스럽게 연계된다.

코칭 가능한 카메라(대시캠·장비 카메라)는 급제동, 과속, 산만 운전 등 위험 행동을 자동 감지하고 영상 기반 피드백을 생성한다. 한국 건설의 구조적 문제인 다단계 하도급 환경에서 이 기술의 가치는 특히 크다. 하도급별 안전 수준 편차를 "누가 교육했는가"가 아닌 "무엇이 실제로 발생했는가"라는 객관적 데이터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시 원청사의 관리·감독 의무 이행 여부를 입증하는 증거 자료로도 기능한다.

연결된 콘·바리케이드(Connected Cones)는 충돌·이동·속도 초과 등 현장 통제 장비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도심지 도로점용 공사나 지하철 인근 공사처럼 차량·보행자·장비가 동시에 얽히는 고밀도 환경에서 특히 적합하다. 위험 발생 즉시 알림을 전송해 현장 관리자가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든다.

클라우드 기반 EHS 플랫폼은 점검, 근접 사고, 교육, 시정조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통합·공유한다.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에서 이 플랫폼이 갖는 의미는 결정적이다. 전국 혹은 해외에 분산된 복수 현장을 동시에 운영하는 한국 대형 건설사에게,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통합은 본사 경영책임자가 각 현장의 안전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지시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조를 실현한다. 종이 보고서의 지연과 은폐 가능성을 제거하고, 안전 관리 체계의 작동 여부를 언제든지 입증 가능한 형태로 유지한다.

현장 마이크로러닝(3~5분 모바일 교육 모듈)은 공기 단축 압박이 심한 한국 건설 현장에서 현실적인 교육 대안이다. 장시간 집합 교육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작업 전 안전회의(TBM)와 자연스럽게 결합할 수 있으며, 날씨 변화나 신규 하도급 투입처럼 당일 발생하는 위험에 즉각 대응하는 교육을 제공한다. 한국 건설 현장에서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다국어 콘텐츠 제공도 가능하다.

  1. 데이터가 없으면 면책도 없다: 기술 도입의 본질적 의미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한국 건설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딜레마가 있다. 안전 관리를 강화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무엇을 갖춰야 법적으로 충분한지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이 5가지 기술은 그 불명확성을 해소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공통점은 하나다. 모두 데이터를 생산하고 기록하며 공유한다. 안전 의무 이행의 핵심이 '사전 인지와 체계적 대응'에 있다면, 그 증거는 결국 데이터에서 나온다. 기술 도입은 장비의 문제가 아니라 증거 생산 체계의 구축이다. 스마트 PPE가 감지한 위험 데이터, 카메라가 기록한 행동 이력, 클라우드 플랫폼에 저장된 점검·교육·시정조치 내역은 모두 법정에서 제출 가능한 자료가 된다.

  1. 전략적 우선순위: 한국 건설사의 도입 경로

모든 기술을 동시에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규제 대응과 사고 예방 효과를 동시에 극대화하는 순서를 설정해야 한다. 우선 클라우드 기반 EHS 플랫폼의 도입이 기반이 된다. 나머지 기술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수렴하고 분석하는 플랫폼 없이는, 개별 장비의 효과가 파편화된 채 법적 증거 능력을 갖추기 어렵다. 그 위에 고령 인력 비중이 높은 현장에는 스마트 PPE를, 하도급 구조가 복잡한 현장에는 코칭 카메라를 우선 배치하는 방식이 효율적이다. 마이크로러닝은 어느 현장에서도 즉시 실행 가능한 낮은 진입 비용의 수단으로, 초기 교육 체계 구축에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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