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3일 월요일

의무는 줄었지만, 공시는 피할 수 없다: 중소기업과 VSME의 부상

EU가 규제를 완화할수록, 시장은 스스로 더 촘촘한 기준을 만들어낸다.


PwC가 최근 비상장 중소기업을 위한 자발적 ESG 공시 기준인 VSME(Voluntary Sustainability Reporting Standard for SMEs)의 실무 가이드를 공개하면서, 중소기업 ESG 공시 지형에 중요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 가이드는 단순한 참고 자료가 아니라, 향후 공급망 참여의 실질적 조건을 규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규제는 후퇴했지만, 시장의 요구는 그대로다

EU는 최근 CSRD(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의 적용 대상을 대폭 축소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그 결과 상당수 중소기업이 법적 공시 의무에서 벗어나게 됐다. 표면적으로 보면 규제 부담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대기업 공급망에 납품하는 협력사나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중소기업이라면, 거래 상대방은 여전히 ESG 데이터를 요구하고 있다. 법적 의무가 없다는 사실이 시장의 요구를 상쇄하지는 못한다. 규제의 후퇴가 곧 공시의 면제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번 상황의 핵심이다.


2. VSME, 사실상의 표준으로 자리 잡다

이러한 맥락에서 VSME가 중소기업 ESG 공시의 사실상 표준(de facto standard)으로 부상하고 있다. EU가 '가치사슬 상한선' 규정을 도입해, 직원 1,000명 이하 기업에 요구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를 VSME 기준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VSME를 공급망 참여의 준거 기준으로 사실상 공인한 셈이다.

공급망에 참여하려는 중소기업으로서는, VSME 기준을 충족하는 것이 협상력을 유지하는 최소 요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자발적 기준이지만, 거래 관계 속에서는 사실상 필수 조건으로 작동한다.


3. ESRS 대비 크게 낮아진 공시 부담

VSME의 실질적 장점은 기존 ESRS와의 부담 격차에 있다. ESRS가 314개의 데이터 포인트를 요구하는 데 반해, VSME는 96개 수준에 그친다. 공시 항목이 약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공시 구조는 두 개의 모듈로 구성된다. 기초 모듈은 온실가스 배출(Scope 1·2), 환경, 인력, 반부패 등 11개 항목으로 이루어지며, 의무 감사나 가치사슬 관련 공시는 포함되지 않는다. 심화 모듈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전환 계획, 가치사슬 내 위반 사례 등 9개 항목을 다룬다. 중소기업이 단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4. 6월 위임법안 이후, 영향력은 더 커진다

현재 VSME는 권고 기준이다. 그러나 오는 6월 위임법안(delegated act)으로 채택될 경우, 협력사에 요구할 수 있는 공식 기준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갖게 된다. 법적 의무 공시는 아니지만, 대기업이 협력사에 VSME 기준의 데이터를 요구하는 근거가 공식화되는 것이다.

CSRD 적용 범위의 변화에 따라 일부 조정 가능성이 남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방향성은 분명하다. 공급망 내 ESG 투명성에 대한 요구는 강화되는 추세이며, VSME는 그 요구에 응하는 표준화된 창구가 되어가고 있다.


인사이트

규제 의무의 축소가 ESG 공시의 종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장은 규제보다 앞서 움직이며, 공급망과 금융 생태계는 이미 VSME를 중소기업 ESG 소통의 공용어로 채택하는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 중소기업 경영자라면 '의무가 없으니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보다, '표준이 정해졌으니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SG공시 #VSME #중소기업ESG #CSRD #지속가능경영 #공급망ESG #ESG경영 #기업지속가능성 #PwC #ESG기준 #가치사슬 #ESG전략


지속가능성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

 

지속가능성은 착한 기업이 하는 일이 아니다. 오래 살아남으려는 기업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요즘 어디서나 들리는 단어다. ESG 보고서, 투자설명회, IR 자료, 기업 홈페이지 첫 화면. 그런데 솔직히 물어보자. 당신의 회사에서 지속가능성은 정말 경영의 언어로 쓰이고 있는가? 아니면 법무팀과 PR팀이 관리하는 문서 속 언어로만 존재하는가?

지금 이 질문에 선뜻 "경영의 언어"라고 답하기 어렵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될 것이다.


1. 지속가능성은 서류 속에 가둬둘 수 없다

많은 기업들이 지속가능성을 두 가지 목적으로만 활용한다. 하나는 규제 대응, 다른 하나는 이해관계자 홍보. EU의 CSRD, 한국의 ESG 공시 의무화, 글로벌 공급망 실사법 등 규제의 압박이 커질수록 기업들은 이에 맞춰 보고서를 만들고 체크리스트를 채운다. 투자자들 앞에서는 ESG 등급을 높이기 위한 전략을 발표하고, 언론에는 탄소중립 선언을 내보낸다.

그러나 이것은 지속가능성의 껍데기다.

진짜 지속가능성은 의사결정의 테이블 위에 있어야 한다. 신사업 진출을 검토할 때, 공급업체를 선정할 때, 새로운 설비에 투자할 때 — 그 순간마다 "이 선택이 10년 후 우리 사업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와야 한다. 지속가능성이 CFO의 스프레드시트와 COO의 운영 회의에 녹아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저 비용이 드는 홍보 활동에 불과하다.

법적 규제는 최소한의 기준일 뿐이다. 규제를 충족하는 것과 지속가능한 기업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2. 글로벌 대기업만 쳐다보지 말고, 변방의 히든챔피언에게 배워라

지속가능성 사례를 공부할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파타고니아, 유니레버, IKEA를 먼저 떠올린다. 물론 이들에게서 배울 점은 많다. 그러나 이 기업들의 사례는 종종 너무 크고, 너무 자원이 풍부하고, 너무 브랜드 파워가 강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 중견·중소기업이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곳은 **히든챔피언(Hidden Champion)**들이다.

독일의 미텔슈탄트(Mittelstand) 기업들, 북유럽의 가족 경영 제조업체들, 혹은 우리 주변의 눈에 띄지 않는 강소기업들. 이들은 화려한 ESG 보고서 없이도 수십 년간 같은 지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같은 협력업체와 신뢰 관계를 유지하며, 환경 부하를 줄이는 것이 결국 원가 절감이라는 것을 몸으로 알고 있다.

이들의 지속가능성은 생존의 지혜에서 나왔다. 거대한 전략 컨설팅 프로젝트의 산물이 아니라, 오랜 시간 현장에서 쌓인 경험이 만들어낸 것이다. 예를 들어:

  • 폐수를 줄이는 공정 혁신이 수질 규제 준수보다 원가 경쟁력 확보가 목적이었던 소재 기업
  • 지역 농가와 장기 계약을 맺는 것이 조달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시작된 식품 기업
  • 직원 이직률을 낮추기 위한 복지 투자가 결국 숙련 인력 유지라는 핵심 경쟁력이 된 정밀 제조사

이 기업들의 이야기는 화려하지 않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더 배울 것이 많다.


3. 운영 리스크 관리가 지속가능성의 진짜 근육이다: BCP와 보험 프로그램

지속가능성을 진지하게 경영에 내재화하고 있는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운영 리스크 관리다.

기후변화로 인한 공급망 붕괴, 팬데믹으로 인한 생산 중단, 사이버 공격으로 인한 데이터 마비,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한 원자재 수급 차질 — 이 모든 것들은 이제 "혹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 아니라 "언젠가 반드시 일어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가지 도구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BCP(Business Continuity Plan, 사업 연속성 계획)**는 위기가 닥쳤을 때 사업이 멈추지 않도록 하는 청사진이다. 핵심 공정이 중단됐을 때 대체 루트는 무엇인가? 주요 거점이 기능을 잃었을 때 의사결정 권한은 어떻게 분산되는가? 데이터와 시스템은 어떻게 복구되는가? BCP가 살아있는 문서로 정기적으로 테스트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차이는 위기가 현실이 됐을 때 비로소 극명하게 드러난다.

보험 프로그램은 단순히 사고 발생 후 손실을 보전하는 도구가 아니다. 제대로 설계된 기업 보험 프로그램은 운영 리스크의 지도를 그리는 과정이다. 어떤 리스크를 자체 흡수할 것인가, 어떤 리스크를 전가할 것인가, 어떤 리스크를 줄일 것인가를 명확히 하는 작업이다. 최근에는 기후 관련 물리적 리스크, 공급망 중단 리스크, 사이버 리스크를 포괄하는 보험 상품들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기업들은 투자자와 금융기관으로부터도 더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

지속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경영자라면, BCP와 보험 프로그램을 "비용 항목"이 아니라 **"사업 생존을 위한 투자"**로 바라봐야 한다.


마치며: 지속가능성은 생존의 문제다

지속가능성은 착한 기업이 하는 일이 아니다. 오래 살아남으려는 기업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서류에서 꺼내 경영의 언어로 만들고, 대기업 사례집을 덮고 가까운 히든챔피언의 현장을 들여다보며, 운영 리스크 관리를 전략의 핵심으로 세워라.

그것이 지속가능성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2026년 3월 21일 토요일

디올, 아르마니, 구찌까지 — '장인 정신'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착취의 실상

8만 원짜리 가방을 380만 원에? 이탈리아 명품업계를 뒤흔든 노동착취 스캔들


전 세계 소비자들이 수백만 원을 지불하며 구매하는 명품 가방. 그 이면에 불법 체류 이주노동자들의 24시간 착취 노동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이탈리아 법원의 판결문을 통해 공식 확인되었다. 디올과 아르마니를 시작으로 구찌, 프라다, 베르사체까지, 이탈리아 명품업계 전반을 강타한 노동착취 스캔들의 전모를 정리한다.

사건의 시작 — 밀라노 법원의 철퇴

2024년 4월, 이탈리아 밀라노 법원은 조르지오 아르마니에 '사법행정 예방 조치'를 내렸다. 공급망 내 하청업체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고 노동착취를 방치했다는 혐의였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6월, LVMH 산하 크리스찬 디올의 이탈리아 법인 '매뉴팩처 디올 SRL'이 동일한 조치와 함께 1년간 법정 관리 명령을 받았다. 밀라노 법원이 공개한 34페이지 분량의 판결문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수치로 보는 착취의 실상

디올의 경우, 하청업체가 납품한 가방 한 개의 원가는 53유로, 우리 돈으로 약 8만 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가방은 디올 매장에서 2,600유로, 약 385만 원에 판매되었다. 마진율로 따지면 약 4,800%에 달하는 수치다. 아르마니의 경우는 더욱 충격적이다. 하청업체 노동자가 10시간을 일하고 받은 임금은 고작 2~3유로, 우리 돈으로 3,000~4,000원에 그쳤다. 그 노동으로 완성된 가방은 매장에서 1,800유로, 약 267만 원에 팔려 나갔다. 실질 시급으로 환산하면 300원 수준이다.

공장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법원 판결문과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 하청 공장의 실태는 참혹했다. 중국과 필리핀 출신 불법 체류 이주노동자들이 고용되었으며, 24시간 공장 가동을 위해 작업장 인근에는 무허가 기숙사가 세워졌다. 야간과 휴일의 구분이 없었고, 일부 공장에서는 주 90시간에 달하는 근무가 이루어졌다. 생산 속도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기계의 안전장치가 제거되었으며, 수사기관의 CCTV에는 단속을 피해 담을 넘어 도망치는 노동자들의 모습까지 포착되었다. 밀라노 법원은 "착취적인 조건"에서 근무가 이루어졌다고 판결문에 명시했으며, 디올이 공급망 내 노동착취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했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 당국의 반격 — 수사 확대

사건은 디올과 아르마니에서 멈추지 않았다. 2024년 7월, 이탈리아 공정거래위원회(AGCM)는 두 브랜드에 대한 추가 조사에 착수했다. AGCM은 성명을 통해 "노동자를 착취해 제품을 생산해 놓고 장인 정신과 우수한 품질을 홍보한 것은 소비자 기만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2025년 말에 이르러 수사는 더욱 광범위하게 확대되었다. 밀라노 검찰은 구찌, 프라다, 베르사체, 돌체앤가바나, 지방시, 입생로랑, 알렉산더 맥퀸, 페라가모 등 13개 하이엔드 패션 기업 본사를 직접 방문해 지배구조, 내부통제, 공급망 관리 관련 문서 일체를 요구했다.

구조적 문제 —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이번 사건은 일부 악덕 공장만의 일탈이 아니다. 이탈리아 명품 산업 전반에 뿌리내린 구조적 문제다. 대형 브랜드가 단가를 극단적으로 낮게 압박하고 정시 납품을 최우선으로 요구하면, 1차 하청업체는 이 조건을 맞추기 위해 중국계 소규모 공장으로 물량을 넘긴다. 이 2, 3차 하청업체는 이주 노동자를 집단 거주시켜 법정 기준을 크게 초과하는 노동시간과 저임금으로 제품을 생산한다. 공식 계약서에는 브랜드와 1차 하청업자만 존재하고, 실제 생산이 이루어지는 공장은 ESG 보고서와 감사의 완전한 사각지대에 놓인다. 이 구조가 수십 년간 고착화된 것이 이번 스캔들의 본질이다.

브랜드들의 반응

디올은 이탈리아 당국의 조사에 협조하겠으며 불법 관행이 드러난 공급업체와의 협력을 중단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르마니는 당국 조사에 전적으로 협조하겠으나 혐의가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하며 조사 후 긍정적인 결과를 확신한다고 발표했다. 두 브랜드 모두 협조와 부인 사이 어딘가에 입장을 두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읽힌다.

이 스캔들이 던지는 질문

'메이드 인 이탈리아'라는 라벨은 오랫동안 전통과 장인 정신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소비자들은 그 라벨을 믿고 수백만 원을 지불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 라벨이 실제로 무엇을 보증하는지, 그리고 소비자가 지불한 수백만 원이 공급망의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정면으로 묻고 있다. 장인 정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시간당 300원짜리 노동에 기대고 있었다는 사실, 이것이 이번 스캔들이 명품 산업 전체에 남긴 가장 불편한 진실이다.


태그: #명품 #이탈리아 #노동착취 #디올 #아르마니 #구찌 #공급망 #패션스캔들 #소비자알권리 #ESG


2026년 3월 20일 금요일

매출의 0.1%로 세계를 바꾼다: '포인트 원' 이니셔티브와 한국 중소·중견기업의 선택

매출의 0.1%는 작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구조화된 금융 레버리지와 만나면 공급망 생존을 결정짓는 전략적 자산이 된다.


1. 새로운 기후금융의 등장

공적개발원조(ODA)가 빠르게 줄어드는 지금, 개발도상국의 에너지 전환을 위한 자금 공백은 구조적 문제로 굳어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까지 연간 2.1조 달러의 재생에너지 투자가 필요하지만, 약 5,000억 달러가 만성적으로 부족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등장한 것이 '포인트 원(Point One)' 이니셔티브다. 중소·중견기업들이 매출의 0.1%를 갹출해 개도국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하는 구조로, 초기 참여 기업 30여 곳이 2030년까지 최소 2억 달러 조성을 목표로 내세웠다.

2. 퍼스트 로스 구조가 작동하는 방식

이 이니셔티브의 핵심은 '퍼스트 로스(First-loss)' 방식에 있다. 기업 자금이 초기 손실을 먼저 흡수함으로써 기관투자자의 위험 노출을 낮추고, 이를 통해 민간 자본의 유입을 유도하는 구조다. 기본 레버리지는 1.5배이나, 위험 완충이 충분히 확보될 경우 최대 15배까지 민간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다. 2억 달러의 기업 기여금이 최대 30억 달러 규모의 투자로 전환될 수 있다는 계산이 여기서 나온다. 단순한 기부나 ESG 선언이 아닌, 금융 레버리지를 설계에 내장한 구조라는 점에서 기존 기업 기후 이니셔티브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3. 왜 지금 중소·중견기업인가

포인트 원이 대기업이 아닌 중소·중견기업을 주축으로 설계된 데는 이유가 있다. 글로애플, 구글, 삼성 등 글로벌 공급망을 주도하는 대기업들이 협력사에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는 기준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소기업 단독으로는 재생에너지 구매 계약이나 직접 투자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현실이다. 매출 기준 비례 기여 방식은 기업 규모에 따라 부담을 조정할 수 있어 참여 장벽을 낮추고, 동시에 공급망 리스크 대응 수단으로도 기능한다.

4. 한국 기업에 주어진 시사점

한국의 중소·중견기업들도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수출 비중이 높은 제조 중견기업일수록 EU 공급망 실사 지침(CSDDD),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해외 규제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인다. 재생에너지 사용 이력이 없는 기업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점차 배제될 위험이 현실화되고 있다. 포인트 원과 같은 집합적 기후금융 모델은 단독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이 공동의 구조 안에서 규제 대응과 투자 기회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경로를 제시한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협력 모델의 설계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할 시점이다.

5. 닫으며

포인트 원은 기후 위기 대응을 자선의 영역에서 금융 구조의 영역으로 옮겨온 시도다. 중소기업의 참여를 단순한 사회적 책임이 아닌 공급망 생존 전략으로 재정의하고, 그 자금을 레버리지의 기반으로 삼는 방식은 앞으로 기업 기후금융의 표준 모델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 기업들이 이 구조를 수동적으로 관망할 것인지, 아니면 선제적으로 참여 경로를 모색할 것인지—그 선택이 수년 내 공급망 내 위상을 가를 수 있다.


#기후금융 #ESG #중소기업ESG #재생에너지투자 #공급망리스크 #포인트원 #민간기후금융 #탄소중립 #지속가능경영 #에너지전환


2026년 3월 14일 토요일

브랜드 신뢰는 공급망에서 무너진다 — 2026 분유 리콜의 해석

글로벌 분유 리콜 사태가 드러낸 것들: 공급망, 신뢰, 그리고 독립성의 가치


2026년 초, 세계 분유 시장에 조용한 충격이 찾아왔다. 네슬레, 다논, 락탈리스 등 수십 년 역사를 지닌 거대 유제품 기업들이 연달아 자사 제품을 자발적으로 회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인은 특정 아라키돈산(ARA) 오일 공급업체로부터 납품받은 원료에서 바실러스 세레우스균이 생성하는 세레울리드(cereulide) 독소가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이 독소는 구토와 설사를 유발하며, 무엇보다 열에 강해 생산 공정 중 살균 처리로도 제거되지 않는다.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식품에서 이런 물질이 발견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사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리콜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번졌다. 네슬레는 37개국 이상에서 영유아용 분유를 자발적으로 회수했고, 다논도 일부 제품의 회수를 발표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170여 개 분유 제품이 회수 대상에 올랐으며, 피해는 60개국 이상으로 확산되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해외 직구로 유입된 리콜 제품이 국내 온라인 마켓에서 유통될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졌고, 소비자원은 구매 전 리콜 여부 확인을 당부했다.

왜 이렇게 넓게 퍼졌는가 — 공급망 집중의 함정

이번 사태의 가장 중요한 경영적 교훈은 '어디서 터졌는가'가 아니라 '왜 이렇게 넓게 퍼졌는가'에 있다. 핵심은 단 하나의 글로벌 공급업체가 여러 대형 제조사에 동일한 원료를 납품했다는 구조적 문제다.

현대 식품 산업에서 아라키돈산 오일 같은 특수 기능성 성분은 소수의 전문 공급업체가 글로벌 시장을 과점하는 경우가 많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품질이 검증된 대형 공급업체에 집중하는 것이 비용 효율적이고 관리가 편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그 논리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공급망이 하나의 노드에 집중될수록, 그 노드의 실패는 산업 전체의 실패가 된다. 네슬레의 문제도, 다논의 문제도, 락탈리스의 문제도 결국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다. 각사가 아무리 자체적인 품질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더라도, 오염된 원료가 들어오는 순간 그 시스템은 무력해진다.

이것이 공급망 리스크의 본질이다. 리스크는 눈에 보이는 자사 공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공급망의 상류에 숨어 있다.

대기업의 품질 관리도 허술해지는 이유

네슬레와 다논은 글로벌 식품 산업에서 품질 관리의 기준점으로 여겨지는 기업들이다. 수백 개의 공장, 수천 명의 품질 관리 인력, ISO 인증과 HACCP 시스템. 이 모든 것을 갖추고도 사태를 막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검사의 사각지대 문제다. 기업이 납품받는 원료의 종류는 수십, 수백 가지에 달한다. 각각의 원료에 대해 모든 가능한 오염 물질을 전수 검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검사 항목은 과거의 사고 이력과 규제 기준을 따라 설계되는데, 세레울리드 독소처럼 상대적으로 드문 오염원은 표준 검사 항목에서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규모가 만드는 역설이다. 기업이 커질수록 공급망은 복잡해지고, 각 공급업체와의 관계는 계약과 인증서 중심으로 관리된다. 실질적인 현장 검증보다 서류 검토가 중심이 되는 구조에서, 공급업체의 실제 생산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파악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대기업의 품질 관리 시스템은 자사 공정을 정밀하게 관리하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협력사의 내부 문제까지 실시간으로 감지하도록 설계되어 있지는 않다.

세 번째는 비용 압력이다. 품질 관리에 쏟는 자원에는 언제나 기회비용이 따른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원가를 줄이고 마진을 지키려는 압력은 공급망 검증의 깊이와 빈도를 갉아먹는다. 이것은 악의적인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인 유인의 결과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 과잉 검증은 낭비처럼 보인다.

HiPP는 왜 살아남았는가 — 독립성의 전략적 가치

이번 사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대목은 독일 HiPP 분유가 리콜을 피했다는 사실이다. HiPP는 독립적인 공급망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HiPP는 유기농 분유 시장에서 오랫동안 독자적인 원료 조달 철학을 고수해 왔다. 글로벌 공급업체가 아닌, 직접 관리하거나 긴밀하게 협력하는 소수의 전문 농가와 생산자 네트워크를 통해 원료를 수급한다. 단기적으로는 비용이 더 들고, 스케일 확장에도 제약이 생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그 선택이 단순한 품질 철학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 전략이었음을 입증했다.

경영학적으로 보면, HiPP의 생존은 '집중화의 효율'과 '분산화의 회복력' 사이의 선택 문제를 다시 제기한다. 글로벌 대기업들은 효율을 위해 집중화된 공급망을 선택했고, HiPP는 회복력을 위해 분산되고 독립적인 공급망을 유지했다. 위기가 없는 시기에는 전자가 우월해 보인다. 그러나 위기가 찾아온 순간, 승자는 후자였다.

이것은 단지 분유 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 원료, 식품 첨가물. 글로벌 공급망의 집중화가 가속화된 모든 산업에서 동일한 구조적 취약성이 잠재해 있다.

이 사태가 경영자에게 던지는 질문

이번 분유 리콜 사태는 단순한 식품 안전 사고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글로벌 공급망 시대의 경영 구조가 가진 근본적 취약성이 표면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우리 공장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말은 이제 충분하지 않다. 진짜 리스크는 종종 내 공장 밖, 협력사의 협력사 어딘가에 있다. 공급망을 단순히 원가와 납기의 문제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리스크의 지형도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어떤 공급업체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그 공급업체가 무너지면 나는 어디까지 함께 무너지는지를 냉정하게 점검해야 한다.

HiPP의 사례는 '느리고 비싼 길'이 때로는 '가장 현명한 길'임을 보여준다. 단기 효율의 극대화가 장기 생존의 리스크를 높이는 아이러니. 그 아이러니를 직시하는 경영자만이, 다음 위기가 찾아왔을 때 살아남는 기업을 만들 수 있다.


알레오 인사이트


① 공급망 집중은 '효율'이 아니라 '부채'다: 단일 공급업체 의존 구조는 평시에는 원가 절감으로 보이지만, 위기 시에는 기업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시스템 리스크로 돌변한다. 이번 사태에서 네슬레·다논·락탈리스가 동시에 무너진 것은 각사의 품질 관리 실패가 아니라, 동일한 공급망 노드를 공유했기 때문이다. 경영전략적으로 공급망 집중도(Supplier Concentration Risk)는 반드시 정량화하고 한도를 설정해야 할 재무 리스크다.

② 품질 관리 시스템은 '내 공장'만 보고 있다: HACCP, ISO 22000, 자체 품질 감사. 대기업들이 갖춘 시스템은 자사 공정(In-house Process)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러나 오염은 공급망의 상류(Upstream)에서 내려온다. 진정한 리스크 관리는 Tier 1 공급업체를 넘어 Tier 2, Tier 3까지 가시성(Visibility)을 확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 공장은 안전하다'는 말은 이제 절반짜리 답변이다.

③ HiPP의 생존은 '운'이 아니라 '구조'였다: 독립 공급망을 유지한 HiPP가 이번 리콜에서 제외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단기 비용 효율을 포기하고 공급망의 다양성과 독립성을 전략적으로 선택한 결과다. 리스크 관리론에서 이를 'Resilience over Efficiency(효율보다 회복력)' 전략이라 부른다. 위기가 없는 시기에는 낭비처럼 보이지만, 위기가 오면 생존의 이유가 된다.

④ 브랜드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지만,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영유아 식품 시장에서 브랜드 신뢰는 가장 강력한 진입장벽이자 핵심 자산이다. 네슬레와 다논은 수십 년간 그 신뢰를 쌓아왔다. 그러나 공급망 한 곳의 오염이 그 자산 전체를 위협했다. 무형자산(브랜드)의 리스크 관리는 결국 유형 공급망의 리스크 관리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이번 사태는 다시 한번 증명했다.

⑤ 규제 대응에서 선제적 자발적 리콜로의 패러다임 전환: 네슬레가 규제 당국의 명령 이전에 자발적 리콜을 선택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단기적 비용과 주가 타격을 감수하면서도 선제적으로 움직인 것은, 규제 리스크보다 브랜드 리스크를 더 크게 판단한 전략적 선택이다. 위기 대응에서 '얼마나 빨리 인정하고 움직이느냐'는 사후 평판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다.


[ 결론 ] 이번 사태의 본질은 식품 안전 문제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 시대의 경영 구조가 가진 구조적 취약성의 노출이다. 효율 극대화를 위해 설계된 공급망은 동시에 리스크 전파 속도를 극대화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경영자라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 공급망에서 하나의 노드가 무너지면, 얼마나 많은 것이 함께 무너지는가?"


2026년 3월 6일 금요일

34년을 버텨온 한 문장, "품질은 타협하지 않는다"

황성옥 JS C&I 대표의 성장 스토리를 사유하며


01. 집을 짓는다는 것의 의미

1992년, 황성옥 대표는 '진성실링'이라는 이름의 작은 회사로 시작했다. 당시 건설 업계는 빠른 납기와 저가 경쟁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다른 질문을 품고 있었다.

"우리가 짓는 집에 누군가의 삶이 들어온다. 그 삶을 우리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장공사의 마감 기준을 정하는 방식이었고, 자재를 선택하는 기준이었으며, 30년 넘게 그가 타협하지 않은 이유가 되었다.

"집 짓는 일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다루는 일입니다. 그 무게를 항상 잊지 않으려 합니다." — 황성옥 JS C&I 대표


02. JS C&I를 성장시킨 세 가지 힘

① 시스템화된 완성도

개인의 감각이 아닌 체계적 기준으로 품질을 관리한다는 것,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JS C&I는 업계 최초로 AI 기반 품질 검사 시스템을 도입해 미세한 결함까지 사전에 식별했다. 또한 '주부의 시선 점검법'이라는 독자적 방식으로 전문가가 놓치는 생활 불편 요소를 실거주자 관점에서 체크했다. 콘센트 위치, 문 개폐 동선, 벽지 이음새 같은 디테일이 그 대상이었다. 그 결과, 1900세대 현장에서 하자 접수 1건이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② 수직 통합의 전략

"좋은 시공의 절반은 자재에서 결정된다." 황 대표는 이 판단을 구조로 옮겼다. 2012년부터 자재 유통을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고, 2014년에는 자회사 한솔데코를 설립해 프리미엄 벽지·바닥재·인조대리석 등 고급 마감재 공급망을 완전히 내재화했다. 항바이러스 벽지(사멸률 99.999%), 미세먼지 85% 차단 방충망, 반려동물 안전 고려 '펫마루'까지 — 기능성 자재 개발로 단순 시공사를 넘어 토털 인테리어 파트너로 인식이 확대됐다.

③ 사람 중심의 조직

"설비와 기술은 바뀌어도, 사람의 철학이 기업을 결정한다." 황 대표는 매월 전 직원이 참여하는 아이디어 제안·토론 문화를 운영해 왔다. 이 제안들은 실제 공정 개선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다수다. 수평적 소통과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한 이 조직 문화는 JS C&I가 30년 넘게 주요 건설사로부터 꾸준히 선택받는 이유 중 하나다.


03. 속도의 시대에 완성도를 고집한 역사

1992년 — 진성실링 창업. 수장공사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하고, 저가 경쟁 대신 책임 기준을 선택했다.

2012년 — 자재 유통 직접 관리 시작. 품질의 시작점을 통제하기 위한 수직 통합의 첫 걸음.

2014년 — 자회사 한솔데코 설립. 프리미엄 마감재 공급망을 완전히 내재화하다.

현재 — AI 기반 하자 분석, 안전관리 문서 자동화, 기능성 자재 개발까지. 시공사에서 토털 인테리어 파트너로 진화 중.


04. 리더십의 특징: 원칙 위의 유연함

황성옥 대표의 리더십은 흔히 '원칙주의'로 읽히지만, 더 정확하게는 원칙 위에서만 유연한 리더십이다. 품질 기준과 약속이라는 불변의 축을 중심으로, 기술·조직·시장 변화에는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해 왔다.

업계 최초 AI 품질 검사 도입도, 주부의 시선으로 현장을 점검하는 방식도, 수평적 아이디어 제안 문화도 — 모두 원칙이라는 토대 위에서 혁신을 실험한 결과다.

"기술 과시가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표준화.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혁신입니다." — 황성옥 JS C&I 대표

많은 경영자들이 혁신을 말할 때 기존의 것을 부수는 데 집중한다. 황 대표는 반대 방향을 택했다. 지킬 것을 먼저 정하고, 그 안에서 혁신할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혁신은 반드시 현장에서 작동해야 했다.


05. 다른 경영자에게 건네는 세 가지 인사이트

첫째, 기준을 타협하는 순간을 조심하라

단기 성과를 얻고 장기 신뢰를 잃는 거래는 생각보다 훨씬 자주 일어난다. JS C&I가 30년 넘게 선택받는 이유는 탁월함이 아니라 일관성이다. 기준은 어렵기 때문에 가치 있다. 쉬운 기준은 차별화가 아니다.

둘째, 좋은 결과의 원인을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라

좋은 결과의 원인을 추적하다 보면, 반드시 아직 통제하지 못한 무언가가 나온다. 황 대표는 그것이 자재라는 것을 일찍 발견했고, 그것을 내재화하는 것이 다음 단계임을 알았다. 수직 통합은 전략이 아니라 철학의 논리적 귀결이었다.

셋째, 빠른 성장과 기억되는 기업을 구분하라

빠른 성장은 기사에 남고, 신뢰와 기준으로 쌓은 기업은 사람의 기억에 남는다. 100년 기업은 후자만이 만들 수 있다. 황 대표가 지키고 싶다고 말한 세 가지 — 사람에 대한 존중, 약속을 지키는 책임감, 현장에서 작동하는 혁신 — 는 모두 기억되는 기업의 언어다.


마치며

34년 전, 황성옥 대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수장공사의 마감 한 줄에서 시작했다. 그 한 줄이 시스템이 되고, 자회사가 되고, AI가 되고, 100년 기업을 향한 비전이 됐다.

경영의 본질은 결국 무엇을 지키겠다고 결심하는 데서 출발한다. 황성옥 대표는 그 결심을 34년 동안 매일 반복했다.

"품질은 타협하지 않는다. 사람의 삶을 짓는다는 마음으로 100년 기업을 만든다."


#품질경영 #사람중심리더십 #수직통합전략 #AI스마트건설 #100년기업 #JSC&I #황성옥


2026년 2월 6일 금요일

그릇 너머를 보는 사람 — 김영목 대표의 성장 이야기

들어가며: 왜 그는 쌀을 팔기 시작했는가

83년 된 도자기 회사가 어느 날 쌀을 출시했다.

외부에서 보면 뜬금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김영목 한국도자기리빙 대표의 말을 듣고 나면, 오히려 이 질문이 떠오른다. "왜 이걸 진작 하지 않았을까?"

"명품 그릇에는 명품 밥이 담겨야 한다."

이 한 문장이 '리한미'의 시작이자, 김영목이라는 경영자를 이해하는 열쇠다.


1. 한국도자기리빙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① 본질에 대한 집요한 질문

한국도자기리빙은 80년 넘게 그릇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김 대표는 어느 시점부터 불편한 질문 하나를 붙들었다.

"우리는 그릇을 완성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담기는지는 왜 신경 쓰지 않았을까?"

리한미는 단순한 신사업이 아니다. 10년간 산지를 탐색하고, 보성 간척지의 미네랄 풍부한 토양을 찾아내고, 3대째 농업을 이어온 보성특수농산과 손을 잡은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단일 품종이 아닌 5종 블렌딩이라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와인과 커피가 그러하듯, 조합으로 풍미를 '설계'한다는 발상이다.

이처럼 한국도자기리빙의 성장 동력은 단순히 좋은 제품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 태도에 있다.

② 위기를 현장으로 돌파한 경험

금융위기 당시, 대형 유통사와의 계약이 끊겼다. 보통의 기업이라면 긴축과 관망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직접 마트 앞에 나가 판매를 시작했다.

이 경험은 단순한 생존 이야기가 아니다. 고객과 직접 맞닥뜨린 그 현장이, 이후 온라인 전환 성공의 감각적 토대가 되었다. 위기는 그에게 약점이 아니라 시장을 읽는 훈련의 장이었다.

③ 브랜드를 '관계'로 확장하는 전략

그릇은 한 번 사면 오래 쓴다. 교체 주기가 길다. 하지만 쌀은 매달, 매주 산다. 리한미의 출시는 단순한 식재료 진출이 아니라, 브랜드와 고객의 반복적 접점을 만드는 구조적 선택이다. 신뢰를 일회성 구매가 아닌 지속적 관계로 전환하는 전략이다.


2. 김영목 대표 리더십의 세 가지 얼굴

첫째, 예술가이자 전략가

순수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경영학 석사를 밟고, 청주 공장에서 7년간 장인들과 함께 일했다. 이 조합은 흔하지 않다.

감각은 있지만 시스템이 없는 사람은 예술가로 머문다. 시스템은 있지만 감각이 없는 사람은 관리자에 그친다. 김 대표는 예술을 시스템으로, 감각을 상품으로 전환하는 법을 몸으로 익혔다. 리한미의 향(香)·청(淸)·담(淡)이라는 라인업 구성도 이 감각과 전략의 결합에서 나온다.

둘째, '매력경영'이라는 철학

그는 직원들을 '리하니언'이라 부른다. 명칭 하나에 정체성과 자부심을 담은 것이다. 직원들과 직접 요리하고, 생일을 챙기고, 사내 커뮤니티를 운영한다.

"좋은 제품은 결국 좋은 사람이 만든다."

이것은 복지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이 문화를 만들고, 문화가 제품의 결을 결정한다는 경영의 인과관계를 그는 믿는다.

셋째, INTEGRITY — 보이지 않는 곳의 원칙

그의 핵심 가치는 **정직함(INTEGRITY)**이다. 기술, 구조, 품질 어느 곳에서도 타협하지 않는다는 원칙. 특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원칙을 지킨다"는 말이 오래 남는다.

리한미가 소용량·진공 포장을 고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장 맛있는 한 끼를 위한 설계. 보이지 않는 디테일이 브랜드의 신뢰를 쌓는다.


3. 다른 경영자들에게 주는 인사이트

"태풍이 불 때 진짜와 가짜가 구분된다"

리빙 시장이 어렵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그런데 김 대표는 이 상황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읽는다. 경기가 좋을 때는 좋은 회사와 그저 그런 회사가 비슷하게 성장한다. 하지만 태풍이 불면,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가 드러난다.

이 통찰이 경영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다.

"지금 우리 회사는 바람이 없어도 서 있을 수 있는가?"

Why? / Why not? / What do I want?

김 대표의 사고 프레임이다. 현상을 받아들이기 전에 먼저 묻는 것, 관행에 "왜 안 되는가?"를 묻는 것, 그리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아는 것. 이 세 가지 질문이 그릇 회사를 식문화 기업으로 바꾸었다.

카테고리의 경계를 허무는 용기

"우리는 그릇 회사다"라는 정의를 고집했다면 리한미는 없었다. 그는 스스로를 그릇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식탁 전체를 설계하는 회사로 재정의했다. 이 재정의가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업의 본질을 제품이 아닌 고객의 경험으로 정의하는 순간, 경쟁의 지형이 달라진다.


마치며: 그릇은 결국 철학을 담는다

83년의 역사를 가진 회사가 쌀을 출시했을 때, 세상은 '왜?'라고 물었다.

김영목 대표의 대답은 단순했다. "그릇에 담기는 것까지 우리가 책임지고 싶어서."

그것이 예술가의 감각이든, 장인의 고집이든, 경영자의 전략이든 — 결국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더 나은 한 끼를 위한 집요한 설계.

어쩌면 경영이란, 좋은 그릇을 만드는 일과 다르지 않다. 보이는 곳도 보이지 않는 곳도, 타협 없이 빚어내는 것.


"실패를 감수하지 않으면 혁신도 없다" — 김영목, 한국도자기리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