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일 토요일

품질에 타협하지 않는 자가 시장을 이긴다 — 파르팜 김현창 대표의 성장 공식

품질에 타협하지 않는 자가 시장을 이긴다 — 파르팜 김현창 대표의 성장 공식


2025년 12월 30일, 월간 CEO&는 「품질 프리미엄은 타협하지 않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라는 제목으로 파르팜 김현창 대표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식품 업계에서 15년 넘게 '비타협적 품질'이라는 단 하나의 원칙을 붙들고 성장한 기업의 이야기는, 숫자보다 철학이 먼저인 경영의 실체를 보여준다.


시장이 아니라 기준을 먼저 세웠다

파르팜의 성장을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성장 정체기에 무엇을 지켰는가.

김현창 대표는 보존제, 향신료, 발색제 등 식품 업계에서 관행처럼 사용하는 첨가물을 창업 초기부터 완전히 배제했다. 매출이 정체되던 시기에도 품질 스펙을 낮추자는 유혹에 응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코로나19 이후 명확하게 드러났다. 위생과 안전에 대한 소비자 기준이 급격히 높아지던 그 시점에, 파르팜은 이미 그 기준을 충족한 상태였다. 시장이 따라온 것이 아니라, 시장이 파르팜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이 파르팜 성장의 출발점이다. 시장 트렌드를 쫓아 기준을 조정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준이 결국 시장의 기준이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15년을 버텼다. 단기 실적보다 장기 신뢰를 선택한 결과가 지금의 파르팜을 만들었다.


급식 시장이라는 가장 혹독한 검증대

흥미로운 점은 파르팜이 가격 경쟁이 가장 치열한 시장 중 하나인 급식 시장을 '테스트 마켓'으로 활용했다는 사실이다.

급식 시장에서 대부분의 기업이 원가 절감과 가격 인하로 경쟁할 때, 파르팜은 반대 방향을 택했다. 프리미엄 전략으로 정면 돌파했고, 그 과정에서 영양교사라는 전문가 집단의 까다로운 검증을 통과했다. 이 과정이 단순한 시장 점유율 확보를 넘어 브랜드 신뢰의 기반을 형성했다.

급식 시장에서 쌓은 전문가 집단의 신뢰는 이후 B2C 시장 확장의 발판이 됐다. 가장 엄격한 검증자를 먼저 설득한 브랜드는 일반 소비자에게도 다르게 인식된다. 파르팜은 이 구조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사람이 아니라 프로세스가 움직이는 조직

김현창 대표가 강조하는 두 번째 축은 조직 설계다. 창업 초기부터 대기업 수준의 조직 구조와 프로세스를 구축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은 창업자의 판단과 의사결정이 조직 전체를 이끄는 구조에 의존하기 쉽다. 파르팜은 의도적으로 그 의존도를 낮췄다.

제품 기획에서 생산, 영업, 물류, 재무에 이르는 전 과정을 시스템화했고, 부서장이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체계를 일찍부터 만들었다. 식품 기업의 고질적 난제인 재고 관리 역시 프로세스로 해결했다. 이는 CEO 한 명의 역량이 아니라 조직 자체의 역량으로 성장하는 구조를 의미한다.

확장성 있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창업자의 탁월함이 아니라 시스템의 탁월함이 필요하다. 파르팜은 이를 조직 설계 단계에서부터 내재화했다.


'권한은 주되 책임은 지우지 않는다'는 리더십

조직 문화에 관한 김현창 대표의 철학은 독특하다. "권한은 주되 책임은 지우지 않는다"는 원칙이 그 핵심이다.

실패가 발생했을 때 개인에게 책임을 귀속시키지 않는 문화는 심리적 안전감을 만든다. 이 안전감이 혁신과 도전을 촉진하는 토양이 된다. 구성원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조직은 더 빠르게 실험하고 더 빠르게 학습한다.

파르팜이 업계 최저 수준의 이직률을 유지한다는 사실은 이 문화의 실효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좋은 인재를 유지하는 것이 채용보다 더 어렵고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낮은 이직률은 경쟁력의 핵심 요소다. 외부 교육을 의무화하며 인재 성장에 투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을 자원이 아니라 장기 투자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 있다.


'상상하라'는 경영 철학의 실체

김현창 대표가 강조하는 '상상하라'는 가치는 단순한 창의성 장려가 아니다. 5년, 10년 뒤를 기준으로 현재의 판단을 내리는 책임 있는 사고방식이다.

단기 매출 압박 앞에서 장기적 기준을 유지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상상은 그 어려운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조직의 방향타 역할을 한다. 글로벌 시장 진출에서도 이 철학은 그대로 작동한다. 일본과 호주에서 테스트 마케팅을 진행하면서도 무리한 확장보다 현지화와 품질 유지의 균형을 우선한다. 건강기능식품, HMR, 어린이 식품 등 신뢰가 특히 중요한 식품군 중심으로 확장 방향을 설정한 것도 같은 이유다.


다른 경영자들에게 주는 메시지

파르팜의 사례는 특정 산업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기준을 지키는 것의 경제적 가치에 관한 보편적 명제를 담고 있다.

많은 기업이 성장 정체기에 기준을 낮추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원가를 줄이고, 품질 스펙을 조정하고, 단기 매출을 확보하는 선택이다. 단기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준을 낮춘 기업은 시장이 그 기준에 적응하는 순간, 더 이상 차별점을 갖지 못한다.

반대로 기준을 지킨 기업은 시장이 그 기준을 필요로 하는 순간, 이미 준비된 상태가 된다. 파르팜이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급증한 것은 운이 아니다. 기준을 지킨 기간이 쌓여 만들어진 구조적 결과다.

조직 설계와 인재 문화에 관한 메시지도 명확하다. 사람이 아니라 프로세스가 움직이는 조직을 만드는 것, 실패에 대한 심리적 안전감을 확보하는 것, 장기적 관점으로 인재에 투자하는 것. 이 세 가지는 기업의 규모와 무관하게 적용 가능한 원칙이다.

결국 파르팜 김현창 대표의 성장 공식은 단순하지만 실행하기 어렵다. 타협하지 않는 기준 × 프로세스 기반 조직 × 심리적 안전감 × 장기적 상상력. 이 조합이 신뢰 기반 경쟁력을 만들고, 신뢰 기반 경쟁력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만든다. 어떤 시장에서도, 어떤 규모의 기업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이다.


2026년 1월 2일 금요일

300달러로 시작해 3만 5천 명을 품다 — 송창근 회장의 35년

300달러의 사람 — 송창근 회장과 휴먼터치 경영의 35년

KMK글로벌스포츠그룹 · 성장 스토리 에세이


들어가며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진짜 글로벌 기업이 된다." — 송창근, KMK글로벌스포츠그룹 회장

198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한 청년이 손에 쥔 것이라곤 300달러뿐이었다. 언어도 낯설고, 연줄도 없고, 보장된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른 종류의 자본이 있었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기꺼이 걷는 용기, 그리고 사람을 향한 진심이었다.

35년이 지난 지금, 그 청년은 6개 계열사, 직원 3만 5천 명의 글로벌 그룹 KMK의 회장이 되었다. 나이키·컨버스·헌터 등 세계 최정상 브랜드들이 인정한 파트너. 인도네시아에서 '신발왕'으로 불리는 사람. 바로 송창근 회장의 이야기다.


1. 300달러, 그리고 용기라는 자본

300달러는 돈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걸겠다는 선언이었다.

송창근 회장은 신발 부자재 영업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아무도 선뜻 맡으려 하지 않던 베이비화 생산을 자청하며, 작고 어려운 일부터 성실하게 해냈다. 스스로를 "Crazy Korean"이라 부를 만큼 그의 선택은 늘 비주류였다.

그러나 바로 그 비주류의 길이 KMK의 초석이 되었다.

역사상 위대한 창업 스토리들은 대개 결핍에서 시작된다. 결핍이 창의성을 낳고, 절박함이 진정성을 만들기 때문이다. 남들이 기피하는 일을 자청한다는 것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다. 그것은 신뢰를 쌓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2. KMK의 성장 요인 — 위기마다 증명된 신뢰

기업의 진짜 가치는 호황이 아니라 위기에서 드러난다. KMK는 여러 번의 절체절명의 순간을 겪었다. 그때마다 송창근 회장의 선택은 한결같았다. 도망가지 않는 것이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 인도네시아 폭동 한국 기업들이 철수를 서두르던 그 순간, 송 회장은 공장 문을 닫지 않았다. 직원들과 함께 버텼고, 그 선택이 훗날 돌아올 수 없는 신뢰의 자산이 되었다.

나이키 주문 중단의 위기 거래가 끊길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미국 본사를 직접 찾아갔다. 숫자와 논리가 아니라, 3만 명 직원들의 진심을 전했다. 결국 나이키는 거래를 재개했다. 사람의 이야기가 계약서보다 강했다.

이 두 사건은 KMK 성장의 핵심 비결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위기 앞에서 함께한다는 것, 그것이 어떤 마케팅보다 강력한 브랜딩이었다.


3. 경영 철학 — 휴먼터치 매니지먼트

송창근 회장의 경영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직원이 기뻐하는 일을 해주는 사람이 CEO다."

그는 이것을 말로만 하지 않았다. 25년 넘게 직원 가정을 직접 방문하는 '캄풍 비짓(Kampung Visit)'을 이어왔다. 사내 병원, 이발소, 복지관, 대규모 구내식당을 갖추었고, 직원 가족에게도 무료 의료를 제공했다.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이 투자들이 3만 5천 명의 마음을 붙들었다. 직원들이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다.

악수 한 번, 눈맞춤 한 번, 웃음 한 번. 그 작은 행동의 축적이 조직 문화를 바꾼다고 그는 믿는다. 그리고 35년의 역사가 그 믿음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4. 리더십의 특징 — 착한 CEO가 성공한다

송창근 회장의 리더십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권위를 버린 자리에 진정성을 채웠다는 점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말한다. "회사에 충성하지 말고, 자신에게 충성하라." 직원의 성장과 행복이 결국 회사의 성장이라는 믿음에서 나온 말이다.

그가 강조하는 리더십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현장에 있을 것. 위기일수록 리더가 보여야 한다. 인도네시아 폭동 당시 공장을 지킨 것이 그 상징이다.

둘째, 진심으로 말할 것. 나이키 본사에 숫자 대신 사람의 이야기를 가져간 것처럼, 진심은 어떤 논리보다 강하다.

셋째, 작은 것을 귀히 여길 것. 악수, 눈맞춤, 가정 방문. 거창한 복지제도보다 이 소소한 관심이 조직의 심장을 뛰게 한다.


5. 다른 경영자들에게 주는 인사이트

송창근 회장의 이야기는 단지 한 사람의 성공 신화가 아니다. 오늘날 경영자들이 마주한 가장 본질적인 질문에 답을 건넨다.

"효율과 사람,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가?"

KMK의 35년은 이 질문에 단호하게 답한다. 아니다. 사람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경영이다.

글로벌 브랜드들이 KMK를 선택하는 이유는 단가가 아니었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생산 안정성, 그리고 그 안정성을 만드는 직원들의 헌신이었다. 그 헌신은 급여가 아니라 신뢰에서 나왔다.

스타트업이든 대기업이든, 국내 기업이든 글로벌 기업이든, 이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리더가 시장을 얻는다.


나가며 — 300달러가 남긴 것

300달러로 시작한 청년은 이제 차세대 경영 승계를 준비하며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내 길을 따르지 말고, 너의 길을 가라."

이 한 마디가 그의 경영 철학의 완성이다. 자신의 성공 방정식을 강요하지 않는 것. 사람마다 고유한 길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 그것이 35년간 3만 5천 명의 다양한 삶을 품어온 리더의 마지막 가르침이다.

착한 CEO가 성공한다. 송창근 회장의 이야기는 그 명제가 이상이 아닌 현실임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증거다.



2025년 12월 19일 금요일

안나 카레니나가 가르쳐 준 것들 — 리스크 관리의 철학


위험을 감수하는 것과 위험에 무너지는 것, 그 경계에 관하여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처음 집어 든 것은 순전히 문학적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서, 나는 뜻밖의 자문을 받은 기분이었다 — 리스크 관리에 관한 자문. 1,000페이지가 넘는 이 대하소설은 단순한 불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선택하고, 어떻게 위험을 받아들이거나 외면하고, 결국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가에 관한 촘촘한 탐구다.

소설은 이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각이다." 이 첫 문장은 리스크의 속성을 꿰뚫는다. 성공(행복)의 경로는 수렴하지만, 실패(불행)의 경로는 발산한다. 리스크 관리론에서 말하는 '꼬리 위험(tail risk)'이 여기에 있다. 잘못될 수 있는 방식은 무한히 다양하고, 각각은 완전히 고유한 이유를 가진다. 톨스토이는 이 진실을 소설의 첫 줄에서 이미 선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 안나의 비극 — 리스크를 '계산'하지 않은 결정

안나 카레니나는 지성적이고 아름다우며, 사회적으로도 높은 위치에 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브론스키와의 사랑을 선택할 때 무엇을 잃게 되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는 것과 '충분히 평가했다'는 것은 다르다. 여기에 리스크 관리의 핵심 개념이 등장한다. 바로 리스크 인지(risk perception)와 리스크 평가(risk assessment)의 괴리다.

안나는 아들과의 이별, 사회적 추방, 법적 이혼 불가능이라는 구체적인 손실을 '이해'했지만, 그 손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의 심리를 어떻게 갉아먹을지는 충분히 '시뮬레이션'하지 못했다. 리스크 관리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위험의 존재를 모를 때가 아니라, 그 위험의 장기적 복리 효과(compounding effect)를 과소평가할 때다. 안나는 사랑이라는 강렬한 현재의 감각 앞에서 미래의 비용을 할인했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현재 편향(present bias)'의 교과서적 사례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네 인물, 네 가지 리스크 전략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은 각각 전혀 다른 리스크 태도를 보여주며, 마치 조직 내 서로 다른 의사결정자처럼 기능한다.

안나는 고위험 감수형이다. 감정에 이끌려 리스크를 전면 수용했고, 출구 전략이 없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단일 포지션에 집중 투자한 셈이었고, 그 포지션 — 브론스키의 사랑 — 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전체 시스템이 무너졌다. 포트폴리오를 분산하지 않은 투자자의 최후와 닮아 있다.

브론스키는 리스크 과신형이다. 그는 자신의 매력과 사회적 지위를 지나치게 믿었다. 안나와의 관계가 자신에게 미치는 장기적 비용을 계속해서 과소평가했고, '나는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하는 오버컨피던스(overconfidence)는 리스크 관리의 고전적 함정이다.

카레닌은 리스크 회피형이다. 그는 감정적 위험을 철저히 억압하고, 제도와 절차 뒤에 숨어 실질적 위험과의 직면을 계속 미뤘다. 그 결과 위험이 외부에서 강제로 터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이했다. 리스크를 회피하는 것이 리스크를 없애는 것이 아님을 카레닌은 몸소 증명한다.

레빈은 점진적 리스크 관리형이다. 그는 의심과 불안을 품으면서도 단계적으로 검증하며 나아갔다. 키티에게 구혼했다가 거절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재시도했으며, 농업 개혁에 실패해도 방향을 수정했다. 불확실성을 제거하려 하지 않고 분산하며 함께 걸어간 인물이다. 그리고 소설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의미를 찾는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 시스템 리스크 — 개인이 아닌 구조의 문제

현대 리스크 관리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이 '시스템 리스크(systemic risk)'다. 개별 주체의 결함이 아니라, 구조 자체가 특정 위험을 내재화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19세기 러시아 귀족 사회는 바로 그런 구조였다. 여성에게 불균형적으로 가혹한 시스템 리스크가 사회 전체에 내포되어 있었다.

안나와 브론스키는 같은 선택을 했다. 그러나 브론스키는 사회 안에서 어느 정도 회복 가능성을 유지한 반면, 안나는 즉각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추방을 경험했다. 이것은 안나 개인의 리스크 관리 실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성에게 훨씬 높은 위험 비용을 부과하는 구조의 실패이기도 하다. 오늘날 조직 내 리스크 관리자들이 개인의 행동뿐 아니라 구조적 취약성을 함께 진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일한 행동이라도 행위자가 놓인 구조적 위치에 따라 리스크의 크기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 질투와 확증 편향 — 리스크 인식의 왜곡

소설 후반부, 안나의 질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녀는 브론스키의 모든 행동에서 배신의 신호를 읽어내기 시작한다. 이것은 리스크 관리에서 말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의 극단적 사례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수집하고 해석하는 현상. 위험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할 바로 그 순간, 인식이 가장 심하게 왜곡되는 것이다.

안나가 마침내 기차역 플랫폼에 선 순간, 그녀의 내면은 이미 현실을 왜곡된 렌즈로 보고 있었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인간의 리스크 판단이 얼마나 심각하게 손상될 수 있는지를 톨스토이는 놀라운 정밀함으로 그려낸다. 위기 상황일수록 냉정한 외부 시각과 검증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 이것이 현대 리스크 거버넌스가 '이중 통제 원칙(four-eyes principle)'을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레빈의 길 —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

레빈은 안나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그는 농업 개혁을 시도하고 실패하고, 키티에게 구혼하다 거절당하고, 철학적 의심 속에서 신앙을 잃었다가 다시 찾는다. 그의 삶은 불확실하고 때로 굴욕적이지만, 그는 그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현대 리스크 관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자세다. 리스크를 완전히 없애려는 시도는 또 다른 리스크를 만든다. 목표는 위험의 제거가 아니라 위험과의 현명한 공존, 즉 리스크 내성(risk tolerance)의 확립이다. 레빈은 그것을 삶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 살아남고, 의미를 찾는다.

■ 마치며

『안나 카레니나』는 결국 이런 질문을 남긴다. 당신은 자신의 리스크를 충분히 평가하고 있는가? 그리고 불확실성 앞에서, 당신은 안나인가, 레빈인가?

위대한 소설이 위대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새로운 렌즈로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그 렌즈를 리스크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그것은 분명 리스크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1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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