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0일 금요일

모건 하우절 《불변의 법칙》으로 읽는 리스크 관리의 본질

 

변하지 않는 것들이 리스크를 만든다

— 모건 하우절 《불변의 법칙》으로 읽는 리스크 관리의 본질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예측하려 애쓴다. 금리는 언제 내릴까, AI는 어떤 산업을 무너뜨릴까, 다음 위기는 어디서 시작될까. 그런데 《돈의 심리학》으로 전 세계 독자를 사로잡은 모건 하우절은 신작 《불변의 법칙(Same as Ever)》에서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은 계속 바뀌지만, 인간의 본성과 행동 패턴은 수천 년 동안 놀랍도록 일정하게 반복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불변의 패턴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가장 큰 리스크의 원천이 된다. 하우절은 이 책에서 23가지 이야기를 통해 그 패턴들을 하나씩 해부한다.

■ 리스크는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온다

하우절이 책에서 가장 먼저 강조하는 통찰은 간결하지만 불편하다. 진짜 위험은 항상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찾아온다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고, 2020년 팬데믹을 모델링한 기관도 실제 규모와 파급력을 맞추지 못했다. 하우절은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리스크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위험이 아니라, 아무도 논의하지 않는 위험에서 온다고.

이것이 리스크 관리의 첫 번째 역설이다. 우리가 준비하는 위험은 이미 시장 가격에 반영되어 있다. 진짜 충격은 우리의 상상 밖에서 온다. 그렇다면 리스크 관리란 결국 무엇인가. 특정 위기를 예측하는 능력이 아니라, 어떤 충격이 와도 버틸 수 있는 구조적 여유를 미리 만들어 두는 것이다. 하우절이 "룸(room)"이라고 부르는 이 여유가, 예측 모델보다 훨씬 강력한 방어막이 된다.

■ 과신: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위험한 불변의 법칙

인간의 과신(overconfidence)은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은 가장 위험한 특성 중 하나다.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을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투자자들은 자신의 판단을 지나치게 신뢰하며, 기업들은 새로운 프로젝트의 비용과 완료 시간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한다. 이 패턴은 고대 로마에서도, 17세기 튤립 버블에서도, 2021년 밈 주식 열풍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었다.

리스크 관리의 관점에서 이 통찰은 매우 실용적인 함의를 가진다. 우리가 가장 확신하는 순간이 종종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포트폴리오를 지나치게 한 자산에 집중시키거나, 레버리지를 과도하게 사용하거나, "이번에는 다르다"고 믿을 때가 바로 과신이 극에 달한 시점이다. 하우절은 이를 단순한 심리적 결함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 본성의 일부이며, 따라서 언제나 반복될 수밖에 없는 불변의 패턴이다.

■ 23가지 통찰이 수렴하는 하나의 진리

하우절이 책에서 펼쳐내는 23가지 이야기들은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지만, 결국 하나의 방향을 향한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이야기에 반응하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에의 반응이 만들어내는 패턴들이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몇 가지 통찰은 리스크 관리와 특히 깊이 맞닿아 있다.

첫째, 꼬리가 세상을 움직인다. 역사적 수익률의 대부분은 극소수의 매우 드문 사건에서 온다. 아마존의 성공, 애플의 아이폰, 2009년 이후의 장기 강세장—이 "꼬리 사건"들이 평균을 만든다. 리스크 관리는 이 꼬리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꼬리가 올 때까지 게임에 남아 있는 것이다.

둘째, 과거는 미래의 안내서가 아니다. 인간은 경험에서 배우지만, 경험은 항상 과거의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위험은 과거 데이터로는 포착되지 않는다. 백테스팅이 완벽해도 미래는 다르게 펼쳐진다. 이것이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역사만 믿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셋째, 행복의 기준선은 항상 올라간다. 기대치는 결과보다 빠르게 상승한다. 이는 개인의 심리뿐 아니라 기업과 시장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실적이 좋아도 기대에 못 미치면 실망이 된다. 리스크는 절대적인 숫자가 아니라, 기대와 현실의 괴리에서 발생한다. 시장의 공황은 종종 나쁜 결과가 아니라 기대했던 것보다 나쁜 결과에서 시작된다.

넷째, 이야기의 힘은 숫자보다 강하다. 시장은 데이터가 아니라 내러티브에 의해 움직인다. 같은 경제 지표도 어떤 이야기 속에 놓이느냐에 따라 시장의 반응이 완전히 달라진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퍼질 때 군중이 형성되고, 군중이 형성될 때 리스크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쌓인다. 버블은 항상 좋은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다섯째, 인센티브가 사고를 왜곡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인센티브에 유리한 방향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부동산 중개인은 항상 "지금이 살 때"라고 말하고, 펀드매니저는 자신의 전략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리스크를 평가할 때, 조언자의 인센티브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여섯째, 복리는 직관에 반한다. 인간의 뇌는 지수적 성장을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장기 투자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이고, 작은 비용이나 수수료가 장기적으로 막대한 리스크가 되는 이유다. 복리는 자산에도, 부채에도, 실수에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 살아남을 여유를 확보하라

하우절의 통찰들을 리스크 관리에 연결했을 때 도달하는 결론은 놀랍도록 단순하다. 불확실성은 제거할 수 없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치명적으로 작용하지 못하도록 구조를 만들 수는 있다.

그는 이를 "충분한 여유(enough room to err)"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예측이 틀렸을 때도, 타이밍이 어긋났을 때도, 생각지 못한 충격이 왔을 때도 게임을 계속할 수 있는 재정적, 심리적 여유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현금을 많이 보유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레버리지를 줄이고, 단기적인 손실을 강요받지 않는 구조를 만들며, 자신의 심리적 한계를 솔직하게 인식하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

시장이 급락할 때 패닉에 빠져 팔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계획이 특별히 좋은 사람이 아니다. 팔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미리 만들어 놓은 사람이다. 이것이 하우절이 말하는 "이 게임은 살아남는 자들의 것"이라는 문장의 진짜 의미다.

■ 변하지 않는 것에 투자하라

하우절이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려는 에너지를 줄이고, 변하지 않는 것들—인간의 탐욕과 공포, 과신의 패턴, 이야기에 반응하는 본능, 기대치의 끊임없는 상승—을 깊이 이해하는 데 투자하라. 그 이해를 바탕으로 한 리스크 관리는 어떤 예측 모델보다 강력하다.

결국 좋은 투자자와 그렇지 않은 투자자의 차이는 미래를 더 잘 예측하는 능력에 있지 않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그에 맞게 자신의 행동 패턴과 포트폴리오 구조를 설계했느냐에 달려 있다.

《불변의 법칙》은 바로 그 설계를 위한 지도다. 그리고 그 지도가 안내하는 목적지는 화려한 수익률이 아니라, 어떤 폭풍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자리—게임에서 퇴장당하지 않는 자리—다.


공급망 인권, 기업이 몰라서 당하는 리스크 4가지

"우리 직원 잘 대우하면 그만 아닌가요?" — ESG 시대, 기업이 알아야 할 인권 리스크의 4가지 얼굴

얼마 전 세계 최대 전기차 제조사 중 하나인 BYD가 브라질에서 '강제노동' 기업으로 낙인찍히며 국영 은행 대출이 전면 차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많은 경영자들이 이 뉴스를 접하고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직원들한테 잘 하고 있으니 괜찮겠지." 그런데 과연 그럴까? 오늘날 ESG 경영에서 '사람 리스크'는 내 회사 직원을 잘 대우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되었다. 기업이 반드시 이해해야 할 인권 리스크의 네 가지 층위를 하나씩 짚어보자.

첫 번째 층위: 인권실사 — 모든 관리의 출발점

인권실사(Human Rights Due Diligence)는 특정 사건이나 피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기업이 자신의 사업 활동 전반과 공급망에서 인권 침해가 발생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문제를 발견하면 이를 방지하거나 완화하고, 그 과정을 외부에 투명하게 공시하는 일련의 절차 자체를 뜻한다.

쉽게 말하면 '우리 회사가 인권을 지키고 있다'는 주장을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조사하고 증명하라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이를 법으로 강제하는 공급망 실사 지침(CSDDD)을 이미 입법화했다. EU 시장에 접근하고 싶은 기업이라면 자사 공급망 전체에 대한 인권 실사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수출 제한이나 거액의 과징금이 따른다. 인권실사는 선한 의도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 시장 접근 자격의 문제가 된 것이다.

두 번째 층위: 강제노동·아동노동 — 공급망 전체를 뒤흔드는 결격 사유

네 가지 리스크 중 가장 파괴력이 크고 즉각적인 제재로 이어지는 것이 바로 강제노동과 아동노동이다. 강제노동이라고 하면 흔히 물리적 감금이나 폭력을 떠올리지만, 국제노동기구(ILO)의 정의는 훨씬 넓다. 채무로 노동자를 옭아매거나, 현실적으로 퇴직이 불가능한 구조적 압박을 가하거나, 신분증을 압수하는 행위 모두 강제노동의 범주에 들어간다. BYD의 브라질 협력공장에서 포착된 것도 바로 이 회색지대의 관행들이었다.

아동노동 역시 마찬가지다. 법적 근로 가능 연령 미만의 아동을 고용해 교육 기회를 박탈하는 행위는 국제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제재를 불러오는 인권 침해 중 하나다. 코코아, 코발트, 면화 등 특정 원자재 산업에서는 아직도 이 문제가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그 원자재를 사용하는 최종 제품 기업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핵심은 '직접 고용 여부'가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회사가 직접 고용하지 않은 3차, 4차 협력업체에서 강제노동이 발견되더라도, 그 부품이나 원자재가 우리 제품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도 동일한 책임을 지게 된다. 미국의 위구르 강제노동 방지법(UFLPA)은 이 논리를 법으로 구현한 대표적인 사례다.

세 번째 층위: 소셜 워싱 — 착한 척의 대가

환경 분야에 그린워싱이 있다면, 인권·고용 분야에는 소셜 워싱(Social Washing)이 있다. 실제로는 열악한 노동 환경을 방치하거나 차별적인 고용 관행을 유지하면서, 겉으로는 '여성이 일하기 좋은 기업', '인권 존중 경영'을 내세우는 기만 행위다.

소셜 워싱이 무서운 이유는 그 피해가 단순한 이미지 손상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ESG 정보를 허위로 공시한 것이 드러나면 소비자 불매운동은 물론, 허위 공시를 믿고 투자한 기관 투자자들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수 있다. 최근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기업의 ESG 보고서를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 데이터와 교차 검증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착한 척'의 비용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네 번째 층위: 노동 관행 리스크 — 가장 가까이 있는 위험

앞서 소개한 세 가지 리스크가 공급망과 대외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것이라면, 노동 관행 리스크는 기업 내부에서 매일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산업 현장의 안전사고와 직결되는 중대재해처벌법 리스크, 채용과 승진 과정에서의 성별·인종·종교 차별, 노동조합 설립을 방해하는 행위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이 리스크는 상대적으로 가시적이고 관리 가능한 영역처럼 보이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국내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경영자 형사 처벌 사례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으며,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차별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될 경우 기업 이미지와 채용 경쟁력에 즉각적인 타격을 입힌다.

결론: 나사 하나까지 책임져야 하는 시대

네 가지 층위를 통틀어 보면 하나의 공통된 흐름이 보인다. 기업의 책임 범위가 눈에 보이는 울타리 안에서 공급망 전체, 나아가 원자재 산지까지 끝없이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기업은 '우리 직원에게 월급을 제때 주는 것'을 넘어, 우리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 하나를 만드는 해외 하청업체 노동자가 강제로 일하고 있지는 않은지까지 직접 조사하고 증명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BYD의 브라질 사태는 이 현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최근의 사례다. 그 교훈은 단순하다. 공급망 인권 경영은 착한 기업이 되기 위한 선택 사항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계속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공급망 어딘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강제노동 한 줄이 날린 것들 — BYD 브라질 금융 제재 전말

BYD 브라질 강제노동 사태: 공급망 인권 경영, 이제는 생존의 문제다

세계 최대 전기차 제조사 중 하나인 중국의 BYD(비야디)가 브라질에서 전례 없는 경영 위기를 맞이했다. 브라질 노동고용부가 운영하는 이른바 '더티 리스트(Dirty List)'에 BYD 브라질 법인이 공식 등재된 것이다. 단순한 벌금이나 경고장 수준의 행정 처분이 아니다. 국영 은행 대출 전면 차단, 민간 금융권의 거래 기피, 공공 입찰 자격 박탈이라는 삼중의 금융 제재가 동시에 작동하기 시작했다. 브랜드 이미지의 타격을 넘어, 기업의 생존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국면으로 접어든 것이다.

"강제노동"이라는 딱지, 어떻게 붙었나

BYD의 브라질 법인에 제기된 혐의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과도한 노동 시간이다. 태양광 패널 및 전기차 부품 생산 시설에서 법정 한도를 초과하는 장시간 노동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둘째는 안전 규정의 조직적 위반이다. 작업 현장의 기본적인 안전 장비와 환경이 국제 기준에 크게 미달했다는 점이 현장 조사에서 드러났다. 셋째, 그리고 가장 심각한 혐의는 강제노동에 준하는 고용 형태다.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이직하거나 계약을 해지하기 어려운 구조적 환경 속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 브라질 당국의 판단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제노동'이라는 개념의 범위다. 흔히 강제노동이라 하면 물리적 감금이나 폭력을 떠올리기 쉽지만, 국제노동기구(ILO)와 각국의 노동법은 훨씬 넓은 의미로 이를 정의한다. 채무 구속, 과도한 위약금 조항, 여권이나 신분증 압수, 그리고 현실적으로 퇴직이 불가능한 경제적 압박 구조 역시 강제노동의 범주에 포함된다. BYD의 브라질 협력 공장에서 포착된 것은 바로 이 회색지대의 관행들이었다.

문제는 BYD 본사가 이 시설들을 직접 운영하지 않았다는 점을 방패삼아 왔다는 데 있다. 생산의 일부를 현지 협력업체에 위탁했고, 그 협력업체의 노동 관행은 자신들의 책임 범위 밖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브라질 당국은 이 논리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공급망의 최상단에 위치한 원청 기업이 하청 단계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에 대해 실질적 책임을 진다는 원칙이 브라질 노동법의 핵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BYD는 왜 이 신호를 무시했나

돌이켜보면, 경고 신호는 여러 차례 있었다. 브라질 노동 감독관들이 해당 시설을 방문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며, 현지 노동조합과 시민사회 단체들은 수개월 전부터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럼에도 BYD의 대응은 늦었고, 소극적이었다.

그 배경에는 몇 가지 구조적 요인이 자리한다. 우선, 속도에 대한 집착이다. BYD는 포드가 철수한 바이아주 카마사리 공장을 인수해 남미 최대의 전기차 생산 기지로 전환하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 중이었다. 이 과정에서 공장 가동 일정과 생산 목표를 맞추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고, 협력업체의 노동 환경에 대한 실사는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렸다.

다음으로는 본사와 현지 법인 사이의 거버넌스 공백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 빠르게 진출할 때 흔히 발생하는 문제로, 본사의 ESG 정책이 현지 공급망 말단까지 실질적으로 작동하는지를 검증하는 시스템이 미비했다. 선언은 있었으나 집행이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신흥 시장에 대한 과소평가다. 일부 글로벌 기업들은 여전히 신흥국 시장에서의 노동 규제를 선진국에 비해 덜 엄격하게 취급하는 관성을 가지고 있다. 브라질이 룰라 행정부 출범 이후 ESG 기준을 빠르게 강화하고 있다는 변화의 흐름을 BYD가 충분히 읽지 못했거나, 읽었더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가 더티 리스트 등재와 금융 제재라는 값비싼 청구서로 돌아왔다.

한국 기업들은 타산지석으로 삼고 있는가

BYD의 사례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브라질, 미국, 유럽연합 등 주요 시장들이 공급망 인권 실사를 법제화하는 흐름 속에서, 해외 생산 거점을 적극적으로 운영하는 한국 기업들 역시 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실제로 한국은 반도체, 배터리, 철강, 의류 등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고리 곳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공급망의 하단에는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노동 인권 취약 지역의 협력업체들이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의 위구르 강제노동 방지법(UFLPA)이 한국 배터리 소재 공급망을 조준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현실이 된 리스크다. 신장산 원자재가 공급망 어딘가에 섞여 들어왔다는 의혹만으로도 미국 세관은 화물 통관을 거부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런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공급망 실사 지침(CSDDD) 역시 한국 기업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EU 시장에 제품을 수출하거나 EU 기업과 거래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은 자사 공급망 전반에 걸친 인권·환경 실사 의무를 지게 된다. 종이 위의 윤리 선언이 아니라, 실제로 공급망을 추적하고 문제를 발견하면 시정하는 행동을 입증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 기업들의 현실은 어떤가.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ESG 경영 보고서 발간과 공급망 행동규범 제정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공급망 말단의 실제 노동 현장까지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1차 협력업체 관리는 어느 정도 이루어지더라도, 2차·3차로 내려갈수록 실사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것이 업계의 솔직한 실상이다.

BYD가 브라질에서 당한 것은 결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공급망 인권 경영을 형식적 컴플라이언스가 아닌 실질적 경영 전략으로 내재화하지 못한 기업이라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위기다. 금융 제재, 시장 퇴출, 브랜드 붕괴라는 결말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씨앗은 오래전부터 공급망 어딘가에 뿌려져 있었다.

이제 공급망 인권 경영은 착한 기업이 되기 위한 덕목이 아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되었다. BYD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로 삼아, 지금 당장 자사 공급망의 어느 고리가 취약한지를 들여다봐야 할 때다.


2026년 4월 8일 수요일

왜 미국 소비자들은 타겟 참치에 70억을 청구했나

타겟(Target) 참치 소송: 당신이 사는 '착한 참치'는 정말 착한가?


왜 그린워싱인가

"지속가능하게 포획했습니다(Sustainably Caught)."

마트에서 참치 캔을 집어 들 때 이런 문구를 본 적 있는가? 푸른 바다, 건강한 생태계, 책임감 있는 어업. 그 짧은 문구 하나가 소비자의 손을 움직인다. 실제로 많은 소비자들이 친환경 인증이나 문구를 보고 기꺼이 조금 더 비싼 제품을 선택한다.

문제는, 그 문구가 현실과 다를 때다.

미국 유통 대기업 **타겟(Target)**의 자체 PB 브랜드 **굿 앤 개더(Good & Gather)**가 바로 그 지점에서 집단소송에 휘말렸다. 소비자 100명 이상이 원고로 참여한 이 소송의 청구금액은 약 500만 달러(한화 약 70억 원). 핵심 주장은 하나다.

"당신들은 소비자를 속였다."

제품에는 국제 해양관리협의회, MSC(Marine Stewardship Council) 인증 마크까지 붙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 공급업체인 **볼턴 그룹(Bolton Group)**의 어업 방식은 전혀 달랐다.

  • 연승어업(longline fishing):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낚싯줄에 수천 개의 바늘을 달아 바다에 던지는 방식. 바다거북, 상어, 바닷새 등 목표하지 않은 멸종위기종이 대량으로 혼획된다.
  • 선망어업(purse seine fishing): 거대한 그물로 물고기 떼 전체를 포위해 건져 올리는 방식. 물개, 상어, 바다거북이 함께 잡혀 올라온다.

원고 측은 타겟이 공급망의 이 같은 생태 파괴 문제를 알고도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지속가능'이라는 단어를 앞세워 친환경 이미지를 판매했지만, 실제 어업 현장은 그 반대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린워싱(Greenwashing)**이다. 실제보다 환경 친화적으로 보이게 포장하는 마케팅 기법. 소비자의 선의와 신뢰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다.


타겟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산물 그린워싱 소송의 흐름

타겟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수산물을 둘러싼 그린워싱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주요 사례들을 살펴보자.

Gorton's (고튼스) 미국의 대표적인 냉동 수산물 브랜드. '책임감 있는 어업(Responsibly Sourced)'이라는 문구와 MSC 인증을 내세웠지만, 실제 공급망에서의 혼획 문제와 어업 방식이 마케팅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을 받으며 소송에 휘말렸다.

ALDI 독일계 글로벌 할인마트 ALDI의 미국 법인도 자사 수산물 제품의 지속가능성 표시를 두고 유사한 소비자 소송을 경험했다. 저가 전략과 친환경 마케팅이 양립할 수 없다는 소비자 불신이 배경에 깔려 있다.

Mowi (모위) 세계 최대 양식 연어 기업인 노르웨이의 모위(구 Marine Harvest)도 도마에 올랐다. 양식 연어의 항생제 사용, 사료 문제, 해양 생태계 오염 등을 둘러싸고 '지속가능한 양식'이라는 홍보 문구가 과장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Conagra & Bumble Bee 미국 수산물 캔 시장의 대표 주자들인 이 두 기업도 참치 제품의 친환경 인증 및 표시와 관련해 소비자 단체와 법적 분쟁을 겪었다. MSC 인증의 실효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소송도 포함됐다.

Red Lobster (레드 랍스터) 미국 최대 해산물 레스토랑 체인 레드 랍스터 역시 메뉴판에 표기한 지속가능 수산물 관련 문구가 실제와 다르다는 이유로 소송을 받았다. 식당 업계로까지 그린워싱 소송이 번진 사례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소비자의 환경 의식이 높아질수록, 기업의 친환경 주장에 대한 법적 책임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그린워싱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우리는 지금 '착한 소비'의 시대를 살고 있다. 환경을 생각하고, 동물 복지를 고려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소비 결정을 내린다. 그 자체는 분명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 선의(善意)가 기업에게 마케팅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친환경', '지속가능', '자연산', '책임 어업'이라는 단어들은 이제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열쇠가 됐다. 문제는 이 단어들을 검증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MSC 같은 국제 인증도 완벽하지 않다. 인증을 받은 어업 방식이 실제 어장에서 그대로 지켜지는지 감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 문구보다 인증의 내용을 살펴보자. MSC, ASC 등 인증의 의미와 한계를 이해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 브랜드의 공급망 투명성을 확인하자. 어디서, 어떻게 잡혔는지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는 기업인지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 집단적 목소리가 변화를 만든다. 이번 타겟 소송처럼, 소비자의 법적 대응이 기업 행동을 바꾸는 강력한 수단이 되고 있다.

타겟의 참치 캔 한 개의 이야기는 결국 이 질문으로 돌아온다.

당신이 사는 '착한 제품'은 정말 착한가?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그린워싱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2026년 4월 6일 월요일

관리가 잘 되던 회사도 안전이 부실해질 수 있는 이유

수익성 좋은 회사가 왜 — 안전에는 구멍이 있었나

2026년 3월 20일, 대전 대덕구 문평동 · 화재로 인한 참사의 구조적 분석


먼저, 이 회사는 어떤 곳이었나

A자동차부품은 1953년에 설립된, 7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자동차·선박용 엔진 밸브 전문 제조사다. 현대차, 기아차는 물론 미국 크라이슬러,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등 해외 완성차 업체와도 OEM 계약을 맺고 제품을 납품해왔다. 2024년 기준 연매출은 1,351억 원, 직원 364명 규모의 중견기업이다. 국내 최초로 하이브리드 차량용 중공 밸브를 국산화해 연간 1,000억 원 이상을 수출한 공로로, 화재가 나기 불과 얼마 전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이 회사는 '잘 관리되는 기업'의 범주에 속했다. 그렇기에 화재 이후 언론이 일제히 쏟아낸 '안전 불감증', '관리 부실' 같은 보도들이 낯설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수익성이 높고 수출 실적까지 탄탄한 회사가, 정말 안전을 방치하고 있었던 걸까.


화재 이후 보도들이 말한 것

사고 직후 쏟아진 기사들은 공통적으로 세 가지를 지목했다. 화재 확산을 키운 샌드위치 패널 구조, 불법 증축으로 막혀버린 대피로, 그리고 물과 닿으면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금수성 물질인 나트륨의 부적절한 관리였다.

노조 위원장은 화재 이틀 뒤 직접 브리핑에 나서 "집진시설과 공조·배관 등 화재 위험 요소 개선을 산업안전보건회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고 밝혔다. 유증기와 기름 찌꺼기가 천장에 축적될 가능성을 반복해서 지적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방 점검에서는 펌프 압력 미달 지적을 받은 기록도 확인됐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안전을 소홀히 한 회사'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수익성과 안전관리는 같은 축이 아니다

A자동차부품이 70년간 꼼꼼하게 관리해온 것은 '생산 효율'과 '품질'이었다. 현대차 같은 대형 완성차 업체와 OEM 계약을 유지하려면 납기, 불량률, 단가 경쟁력이 핵심이다. 그 축에서는 흔들림이 없었기 때문에 은탑산업훈장까지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안전관리가 그 축과 다른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안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집진시설을 교체하든 안 하든, 내일 당장 공장은 돌아간다. 나트륨 보관 방식을 바꾸지 않아도 수주는 끊기지 않는다. 반면 생산 라인이 하루 멈추면 납기 일정이 어긋나고 거래처와의 관계에 금이 간다. 기업이 어디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는 구태여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이것이 잘 나가는 회사가 안전을 '방치'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실제로는 방치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이며, 그 우선순위가 뒤틀리도록 만든 구조의 문제다.


법 안에 있었다는 것의 역설

이 사고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A자동차부품이 대부분의 문제를 '법적으로 허용된 범위 안에서' 운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공장은 연면적 3만㎡ 기준에 미치지 못해 소방당국의 화재안전 중점관리대상에서 제외돼 있었다. 나트륨이라는 특수 위험물을 취급하는 공장임에도, 관리 기준은 '위험도'가 아닌 '면적'으로 나뉘었다. 소방 점검은 연 2회, 사측이 지정한 민간 업체가 담당했다. 샌드위치 패널은 2021년 이후 신축 건물엔 준불연 자재 사용이 의무화됐지만, 그 이전에 지어진 기존 건물에는 소급 적용이 없었다. A자동차부품의 공장은 그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나트륨 100㎏은 위험물안전관리법상 지정수량인 10㎏의 열 배였다. 전용 소화 설비를 갖춰야 하는 수량이었지만, 이 공장에는 D급 금속화재에 대응할 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소방 당국은 초기에 나트륨 때문에 물을 쓸 수 없었고, 이를 안전 구역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골든타임을 허비해야 했다. 10시간 30분 만에 겨우 불길이 잡혔을 때, 사망자는 14명이었다.


이 사고가 실제로 말하는 것

화재 후 대표이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입건됐다. 책임은 물어야 하고, 수사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 사고를 '한 회사의 안전 불감증'으로만 읽으면, 다음 사고를 막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조는 위험 요소를 반복해서 지적했다. 법이 허용한 구조 안에서 공장은 운영됐다. 민간 점검은 통과했다. 그럼에도 74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이것은 개인의 불찰을 넘어선 무언가를 가리킨다.

위험도가 아닌 면적으로 나뉘는 관리 체계, 민간에 위탁된 형식적인 점검, 구건물에 소급 적용되지 않는 건축 기준, 특수 위험물에 맞지 않는 대응 설비 기준. 이 구조는 A자동차부품 이전에도 있었고, 이번 사고 이후에도 손대지 않으면 그대로 남는다.

2024년 경기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로 23명이 숨졌다. 전문가들이 지목한 구조적 원인은 이번과 거의 같았다. 특수 위험물로 인한 초기 대응 지연, 빠른 연소 확대를 부르는 건물 구조, 형식에 그친 점검 체계. 그리고 2년이 채 되지 않아, 대전에서 14명이 또 같은 방식으로 숨졌다.

비난보다 앞서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같은 구조 안에서 얼마나 더 기다릴 것인가.


알레오 인사이트


"사고가 나면 사건 처리로 끝나고, 구조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연세대 조원철 교수가 이번 화재를 두고 한 말이다. 아리셀 참사 이후에도 같은 말이 나왔고, 그 이전 이천 물류창고 화재 때도 같은 말이 나왔다. 문제는 이 말이 매번 새 사고의 잔해 앞에서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번 화재에서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짚은 지점은 크게 세 가지다.

  1. 첫 번째는 위험물 분류 체계의 불일치다. 나트륨은 소방 분류상 D급 금속 화재에 해당하는 물질로, 물과 접촉하면 수소 가스와 막대한 반응열을 발생시켜 폭발적 연소로 이어진다. 그런데 현장에는 이에 대응할 전용 소화 설비가 없었다. 전문가들은 "금속 화재는 한 번 발생하면 대응 자체가 제한되는 특수 영역"이라고 말한다. 일반 화재와 같은 기준으로 취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험물을 다루는 사업장의 안전 설비 기준이 위험물의 종류가 아닌 보관 면적이나 수량 기준에만 묶여 있는 한, 이런 빈틈은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
  2. 두 번째는 건축 기준의 시간차 문제다. 샌드위치 패널은 1970년대 이후 국내 공장과 창고에 광범위하게 쓰여온 자재다. 화재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수십 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고, 정부도 2021년에야 신축 건물에 준불연 자재 사용을 의무화했다. 문제는 그 이전에 지어진 수많은 건물이다. 소급 적용이 없으니, 노후 산업단지는 여전히 과거 기준의 건물 안에서 오늘의 공정을 돌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면 철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최소한 소방 시설 보강과 점검 횟수 확대라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법 기준을 통과한 건물이라도 위험도 기준으로는 별도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3. 세 번째는 점검 체계의 구조적 허점이다. 현재 많은 사업장의 소방 점검은 사측이 지정한 민간 업체가 연 1~2회 진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구조다. 점검 업체 입장에서는 지적 사항을 최소화하는 것이 재계약에 유리하고, 사업장 입장에서는 점검을 통과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다. 실질적인 위험 탐지보다 서류 완비에 초점이 맞춰지는 이유다. 조원철 교수가 이를 '구조적 방치'라고 표현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결국 이번 사고가 드러낸 것은 세 가지 체계가 동시에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험물 관리 기준, 건축물 안전 기준, 점검 체계. 어느 하나만 제대로 작동했어도 피해의 규모는 달라졌을 수 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면적이나 형식 기준이 아닌 실질 위험도 기준으로의 전환, 위험물 취급 사업장에 대한 전수 점검과 전용 소화 설비 의무화, 노후 산업단지에 대한 소방 안전망의 근본적인 재설계다. 그리고 이 모든 논의가 이번에도 사고 처리로 끝날지, 아니면 구조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지금부터의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2026년 4월 5일 일요일

부활절, 리스크 관리자의 고백 — 신앙인으로서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

 

리스크를 관리하는 사람도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관리할 수 없다 — 부활절은 그 무력함을 은총으로 바꾸는 날이다..


수십 년간 기업의 리스크를 분석하고, 불확실성을 수치화하고,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왔다. 손실 가능성을 계량하고, 보험 프로그램을 설계하며, 조직이 위기 앞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돕는 것이 나의 직업적 소명이었다. 그런데 매년 부활절이 되면, 나는 그 모든 분석의 도구를 내려놓고 전혀 다른 질문 앞에 선다. "나 자신의 내면은 과연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이 글은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오랜 비즈니스 현장에서 인간과 조직의 위기를 목격해온 전문가로서, 부활절 앞에 마음을 새롭게 하는 나의 개인적 성찰이다.

  1. 리스크를 관리하는 사람도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리스크 관리의 본질은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오래 일할수록 하나의 진실이 분명해진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은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평판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치밀하게 설계한 보험 프로그램도 예상치 못한 변수 앞에서 빈틈을 드러낸다. 나는 그 빈틈을 수없이 목격했다.

부활절은 내게 이것을 상기시킨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것 — 죽음과 부활 — 을 하느님은 이미 당신의 손 안에 두셨다는 사실을. 리스크 관리자로서의 나는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도록 훈련되어 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서의 나는 그 불확실성 너머에 섭리가 있음을 믿도록 초대받는다. 부활절마다 나는 이 두 자아 사이의 긴장을 직면하고, 그 긴장 안에서 비로소 진짜 내려놓음을 배운다.

  1. 완고함이라는 내면의 리스크

오랜 직업적 경험은 판단력을 키우지만, 동시에 완고함이라는 내면의 리스크를 키우기도 한다. 수많은 케이스를 다뤄온 전문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이미 알고 있다"는 확신으로 굳어간다. 가정에서도, 신앙 공동체에서도, 그 굳음은 관계의 벽이 된다.

부활절 고해성사는 내게 단순한 의례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쌓아온 전문적 자만심, 오래된 원망, 그리고 변화를 거부하는 내면의 경직성을 하나씩 꺼내 놓는 시간이다. 무덤의 돌이 굴려지려면 먼저 그 돌이 내 안에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부활절은 그 인정을 요청하는 계절이다.

  1. 남은 소명 — 전문성을 넘어선 섬김으로

리스크 관리와 기업 보험 분야에서 쌓아온 경험과 지식은 분명 가치 있는 자산이다. 그러나 부활절이 되면 나는 묻는다. "이 전문성이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를 위한 섬김의 도구인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먼저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셨다. 권위나 지식을 내세우지 않으셨다. 나는 그 모습에서, 내 남은 전문적 여정이 어떤 태도로 걸어가야 하는지를 본다. 더 많은 계약, 더 높은 성과가 아니라 —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내가 자문하는 기업들에게, 그리고 신앙 공동체에게 진심으로 평화를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올 부활절 내가 새롭게 다짐하는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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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4일 토요일

연구실에서 시장으로 — 차미선 대표가 걷는 재생의료의 길

"좋은 기술이 왜 산업으로 이어지지 못하는가." 이 물음 하나가 한 연구자를 창업가로 바꾸었다. 메디팹 차미선 대표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그것은 과학과 시장 사이의 거리를 스스로 좁혀온 퍼스트무버의 사유다.


1. 연구자의 눈으로 시장을 본다는 것

부산대와 서울대에서 연구자로 살아온 차미선 대표에게 창업은 어쩌면 낯선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실험실 안에서 해답을 찾는 대신, 기술이 세상과 만나는 접점을 직접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그 출발점은 단순한 사업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왜 이렇게 좋은 기술이 산업으로 이어지지 못하는가"라는 깊은 문제의식이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키토산과 탈세포기질(dECM)이라는 두 가지 소재였다. 수용성 키토산 플랫폼 키토젠(Chitogen™), 탈세포기질 기반 리젠트릭스(Regentrix™), 두 기술을 결합한 키토제닉스(Chitogenix™)—이 세 가지 핵심 기술 위에 그는 단일 제품이 아니라 '재생 플랫폼'이라는 개념 자체를 설계했다.

"실행이 전략을 이긴다. 시장이 곧 실험실이다." — 차미선, 메디팹 대표

이 원칙은 추상적 구호가 아니었다. 스킨케어 브랜드 레스노베(Lesnove)로 시장에 먼저 진입하고, 두피 재생 의료기기 인증을 획득하며 탈모 시장으로 확장하고, 이제 서울대병원과 함께 골관절염 치료제 국가 과제를 진행하는 —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일관된 플랫폼 전략의 실행이었다.

성장 4단계

  • 1단계: 부산대·서울대 연구 기반, 기술의 산업화 문제의식으로 메디팹 설립
  • 2단계: 키토젠·리젠트릭스·키토제닉스 플랫폼 완성, LTG 기술로 시술 편의성 확대
  • 3단계: 스킨케어→탈모→관절재생까지 플랫폼 확장, 2024년 매출 100억 달성
  • 4단계: 누적 290억 투자 유치(시리즈B 238억 포함), 2027~2028 코스닥 상장 목표

핵심 수치

  • 누적 투자 유치 290억 (시리즈B 238억 포함)
  • 2026년 매출 목표 300억 (2024년 100억 대비 3배 성장)
  • 코스닥 상장 목표 2027~2028년 (임상·인허가 기반 검증 우선)

2. 차미선 대표 리더십의 세 가지 얼굴

차미선 대표의 리더십은 '연구자 출신 CEO'라는 단순한 수식어로 요약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특별함은 연구자의 엄밀함과 창업가의 실행력이 공존한다는 점에 있다.

① 기술-제품-매출-재투자 구조를 직접 설계한다

외부 전략가에게 맡기지 않는다. 핵심 기술에서 시장 진입 전략, 매출 구조, 재투자 사이클까지 — 연구자 출신답게 전체 시스템을 스스로 이해하고 설계한다. 이것이 메디팹이 단일 제품 기업이 아닌 '재생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② 조직의 체질을 바꾸는 리더

연구개발 중심에서 시장 중심 조직으로의 체질 개선 — 이것은 선언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차 대표는 "시장이 곧 실험실"이라는 원칙을 내부 문화로 정착시키며, 속도보다 검증을 우선하는 균형 감각을 유지한다. 상장도 빠른 출구보다 임상·인허가 기반 신뢰 확보를 먼저 선택한 것이 그 증거다.

③ 노화의 패러다임 자체를 재정의한다

경쟁사가 '외형 개선'을 말할 때, 차 대표는 '인체의 재생 능력 활성화'를 말한다. 미용에서 재생으로, 재생에서 치료제로 — 이 방향성 자체가 이미 시장을 창출하는 리더십이다. "100년 가는 글로벌 재생의료·항노화 기업"이라는 비전은 허황된 구호가 아니라 플랫폼 전략의 논리적 귀결이다.


3. 다른 경영자들에게 주는 세 가지 메시지

차미선 대표의 여정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재생의료'라는 업종에 한정되지 않는다. 업종을 초월해 적용 가능한 경영 사유가 그 안에 있다.

A. 문제의식이 곧 비즈니스 모델이다

"좋은 기술이 산업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순수한 문제의식이 창업의 씨앗이 되었다. 많은 경영자가 시장 기회를 찾으려 하지만, 차 대표는 시장의 구조적 결함을 먼저 보았다. 불편함과 모순이 보이는 곳에 진짜 기회가 있다.

B. 플랫폼을 팔아라, 제품을 팔지 마라

메디팹의 경쟁력은 특정 제품이 아니라 키토젠·리젠트릭스라는 재생 플랫폼에서 나온다. 스킨케어, 탈모, 관절 재생 — 세 개의 다른 시장이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된다. 제품을 팔면 시장이 하나지만, 플랫폼을 구축하면 시장이 확장된다.

C. 속도보다 검증, 검증 위에 속도

상장을 서두르지 않고 임상과 인허가로 신뢰 기반을 먼저 쌓는 판단 — 이것이 단기 지표에 쫓기는 경영과 100년 기업을 지향하는 경영의 차이다. 그러나 검증이 완료된 영역에서는 빠르게 확장한다. 균형 감각이 리더십의 핵심이다.


마치며

차미선 대표는 재생의료라는 새로운 언어를 시장에 가르치고 있다. 연구실에서 출발한 문제의식이 290억의 투자로, 세 개의 시장 진입으로, 그리고 글로벌 항노화 기업이라는 비전으로 구체화되는 과정 — 그것은 단순한 창업 성공담이 아니라, 지식과 실행 사이의 거리를 스스로 좁혀온 한 사람의 깊은 사유다.

퍼스트무버는 가장 빠른 사람이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먼저 상상하는 사람이다.